2008년 10월 9일 오늘의 책
전아리 | 문학동네 | 2008.05
분류 : 소설
- 정가
- $18.00
- 판매가
- $9.90 (45%↓)
- 적립금
- $0.20 (2%P)
스물셋, “전설의 그녀”가 왔다! 전아리의 이름과 소설은 청소년들에게 여전히 ‘전설적’이다. 문학사상사 청소년문학상 대상, 푸른작가 청소년문학상, 대산청소년문학상 금상, 최명희청년문학상…… 중고교 재학 시절 웬만한 문학상은 죄다 휩쓸면서 문학청소년들 사이에서 ‘그녀를 모르면 간첩’이란 말까지 나왔다._동아일보 2007년 6월 7일자 ‘21세기 신천재론’ 1986년생, 스물세 살, 책 한 권 내지 않고도 ‘문학천재’로 불리며 수년간 언...
한 문학도 친구 E로부터 전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중고등학생 때부터 웬만한 문학상을 다 휩쓴 친구가 있다고, 그래서 문학 하는 사람 중에는 그를 모르는 이가 없다고, 남들이 입으로만 문학을 하고 흥청망청 놀 때도 계속 글을 써온 대단한 친구라고. E는 내가 당연히 그를 알고 있으려니 생각했던 모양이에요. 그러나 그의 이야기를 들은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문학을 전공했고 문학상 주변을 몇 번인가 얼쩡거린 적도 있는, 나름 문학도임에도 말이죠.
기사를 찾아보니 전아리의 이름 앞에는 어김없이 ‘문학 천재’니 ‘청소년문학의 전설’ 같은 수식어가 붙더군요. 솔직히 저는 그만저만했습니다. 그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문학의 테두리 안에서 용인될 뿐이지 독서 대중 전체에 천재나 전설로 다가가는 건 아니잖아요. 곰곰 생각하게 되더군요. 꼭 그렇게 거창하고 엄숙한 수식어를 붙여야 할까. 좀 더 친근하고 자연스러운 방법은 없을까. 어쨌든 처음으로 전아리의 작품을 읽게 됐고, 나와 있는 세 권의 책 중에서 먼저 고른 것은 <시계탑>이었습니다.
<시계탑>에 손이 간 이유는 표지 때문입니다. 슬픈 표정의 소녀 옆에 날개를 들어 올린 까만 새가 있죠. 그 새는 우리의 인식체계에 둥지를 튼 흉조의 모습도, 혹은 길조의 모습도 아닙니다. 단지 소녀의 가장 가까운 친구 양 바로 뒤에 오도카니 서 있는 ‘존재’일 뿐이죠. 저는 대학 시절에 쓴 시 속의 까마귀를 떠올렸답니다. 언니 까마귀와 동생 까마귀가 있었는데, 언니 까마귀가 먼 곳으로 떠나버려서 동생 까마귀는 하염없이 그를 기다렸다는 내용의 시. 그때 담았던 상실감과 기다림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이 책을, 저는 집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책은 상실감만 다루고 있진 않았습니다. 잃어버린 것과 새로이 얻은 것, 떠나보낸 것과 맞아들인 것을 동시에 이야기하는 성장소설이었죠. 주인공 ‘연’은 갖고 싶은 건 훔쳐서라도 가져야 직성이 풀리는 아이입니다. 혼자 훔치기 힘들 땐 단짝 ‘병욱’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말이에요. 그렇게 하면 동네 미용실 언니의 스타킹이나 부잣집 반장의 은시계쯤은 쉽게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에서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는 일은, 아무리 원해도 가질 수 없는 것이 있으며 그런 것들은 놓아두거나 보내주어야 함을 깨닫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중심에는 ‘엄마’가 있었죠.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으나 집을 나가버린 엄마. 시계탑 앞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던, 끝내 도망치듯 죽어버린 엄마. 그러나 연은 많이 슬퍼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위해서도 과장하거나 포장하지 않아요. 늦은 밤, 시계 침 소리를 흘려보내는 아이처럼 담담하고 덤덤할 뿐.
연은 그래서 더욱 마음이 가는 아이입니다. 되바라진 언행에 혀를 차다가도, 그 되바라짐 뒤에 숨은 풋풋함과 성숙함이 비죽 튀어나올 때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죠. 아이는 이런 이야기에 반색은커녕 “됐거든요. 간지럽고 거추장스러워요!”라고 말할 것 같지만, 우리 같이 머리 한 번 거칠게 쓰다듬고 관심 있게 봐주기로 해요.
우선, 미용실 언니의 임신 소식을 듣고 우주의 물고기떼를 연상하는 감수성이 여간 아닙니다.
“외발자전거를 타고 달의 가장자리를 맴돌다가 지루해질 때면, 우주를 헤엄쳐가는 은빛 물고기떼를 바라본다. 살빛이 맑아서 비늘 너머로 어렴풋이 뼈가 비치는 물고기떼. ‘뭐, 다 그런 거지.’ 나는 외발자전거를 멈추고, 눈부신 물고기떼가 전부 지나가기를 기다리며 혼자 중얼거린다.” (p.122)
상처를 논하면서 ‘갑각류’를 끌어오는 재기발랄함도 있구요.
“나는 가슴속에 갑각류를 여러 마리 기른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 낌새가 보이면, 그중 한 마리가 재빨리 단단한 등껍질을 내밀어 그것을 튕겨낼 준비를 한다. 튕겨내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녀석들은 더욱 단단해진다. 아주, 귀여운 녀석들이다.” (p.136)
포장마차 차릴 돈을 잃어버리고 우는 아버지를 보며, 열아홉 인생에 어퍼컷을 날리는 투지도 있지요.
“나는 조용히 옥상으로 나와, 내 짧은 열아홉 인생을 샌드백처럼 세웠다. 그리고 왜 이렇게 부족한 게 많으냐고 소리치며 어퍼컷을 날렸다. 이어 훅, 잽까지. 그러자 열아홉 인생은 시무룩하게 입을 열었다. ‘내 잘못이 아니잖아.’ 나는 녀석이 가엾어졌다. 그래서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옥상 난간에 기대어 선 채로 생일의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p.155)
무엇보다 인생을 다 산 것 같은 어조로 세상의 비루함과 신산함을 표현하는 능력이 일품입니다. 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있으면 이런 환각에 사로잡히죠. 낮은 골목을 돌아다니다 웬 반지하 집을 지나치는데, 그 집에서 수상한 소리가 흘러나와 들여다보니 까마귀 한 마리가 푸드덕 하고 날아가는 풍경. 그리고 갑자기 커지는 시계 침 소리. 대체 무슨 관계일까요, 소녀와 까마귀와 시계는. <시계탑>은 그 답을 얻을 때까지 놓을 수 없는 소설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마냥 어리다고만 할 수 없는 작가 전아리의 능력임을 부인할 수 없네요.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시계탑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고. 그 시계의 탑이 보이고 시계 침 소리가 들리는 건, 우리의 마음이 한 치씩 도톰해져서 상실감과 기다림에 초연해지는 순간이라고. 갖고 싶은 걸 가졌을 때나 못 가졌을 때나, 사랑하는 사람을 맞았을 때나 보냈을 때나 시계는 쉬지 않고 간다는 걸 이미 알고 계셨나요. 이제 마음 속에 귀 기울여봅니다. 아, 들리는군요. 째깍, 째깍, 째깍.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