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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한 꿈 (화집)

2012년 1월 9일 오늘의 책

거창한 꿈 (화집)

장 자끄 상뻬 | 열린책들 | 2010.01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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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에서 어른이 되기까지

 

호기심을 갖고 다른 달팽이들한테도 가야 해. (51쪽)

 

이 문장을 잠언으로 여기던 때가 있었다. 달팽이. 같은 제목의 노래를 부른 가수 때문이었는지 몰라도, 내가 꽂힌 단어였다. 좋아했다, 라고 회상할 수도 있겠지만 당시 느낌을 고스란히 전한다면 꽂혔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상뻬를 안 것은 중학교 삼 학년 때다.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좀머 씨 이야기》를 읽었는데, 그 소설의 삽화를 그린 사람이었다. 얼마 안 가 서점에서 《거창한 꿈》을 찾아냈고, 그 속에서 달팽이 두 마리를 만났다. ‘다른 달팽이들’이라고는 둘 외에 없는 너른 수풀 그림. ‘거창한 꿈’이라고 이를만한 그들의 목소리가 덜 자란 나를 툭 하고 건드렸다. 진동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나는 상뻬의 글과 그림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지난 일을 돌이켜 볼 때 상처받는 건 무엇보다 내 자존심이야. 자전거의 벨을 힘껏 울려 대며 기운차게 도착할 때면 내 모습도 꽤 근사했거든. (57쪽)

 

그래. 그게 열정이라는 건 분명해. 하지만 그게 정말로 사랑이라는 확신이 드나? (60쪽)

 

전에는 벌떡 몸을 일으켜 곧장 뭔가를 계획하곤 했지. 요즘은 한없이 뭉그적거리며 이불 속에서 몸을 빼내고 있어. 그렇게 시간을 질질 끌며 생각을 거듭하고 머뭇거리다가 다시금 벌렁 누워 버린다네. (99쪽)

 

모든 걸 다시 해야 한다면 난 예전과 아주 똑같이 할거요. (102쪽)

 

일련의 글귀는 막연하게만 다가왔고, 더불어 그림까지도 무슨 뜻일까 싶은 데가 있었다. 특히 (달팽이가 아니라) 사람이 주가 되는 장면에서 몇 번이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프랑스의 정서가 나에게는 이해 불가의 영역이라고 여길 뿐이었다. 그로부터 십 년 후, 그러니까 작년의 일이다. 우연한 기회로 상뻬 특별전을 보게 되었다. 벽에 걸린 원화들을 마주하고 있자니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듯 했다. 집으로 돌아와 책장 구석에 있는 《거창한 꿈》을 꺼냈다. 체득할 수 없었던 글귀들이 비로소 와 닿았다. 이해의 벽을 국적으로 단정한 것은 섣부른 판단이었다. 상뻬와 처음 만났을 때는 단지 어렸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이제 나는 ‘거창한 꿈’의 힘으로 하루하루 견디는 이들에게 공감하는 어른이다. 말하자면, 달팽이의 시절을 지나온 것이다.

 

"Mes personnages ne sont pas minuscules, c'est le monde qui est grand."
"제 인물들이 작은 것이 아니라, 세상이 너무 큰 것입니다." (장 자끄 상뻬)

 

<거창한 꿈>은 각기 다른 인물의 개인사로부터 비롯된 이야기의 모음이다. 일상의 한 순간을 포착하는 상뻬의 시선은 말한다. 꿈은 시간이 지날수록 변모한다는 것. 이따금 끝맺지 못한 형태로 일상에 존재한다는 것. 이 불완전 또한 삶의 일부라는 것. 상뻬의 인물들이 퍼즐처럼 조그맣게 그려지는 것은 그래서일까. 그 풍경 속에는 잘 아는 사람도 있다. 한때는 ‘호기심을 갖고 다른 달팽이들한테도 가야’ 한다는 다짐에 꽂혔고, 지금은 ‘모든 걸 다시 해야 한다면’이라며 지난 삶을 가정할 수 있는 나 자신 말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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