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책오늘의책
  • 미디어 & 기관 추천책미디어 & 기관 추천책
  • 문학상수상작문학상수상작
  • 이럴때이런책이럴때이런책

9번의 일 (양장본)

2020년 4월 8일 오늘의 책

9번의 일 (양장본)

김혜진 | 한겨레 | 2019.10

분류 : 소설

정가
$28.00
판매가
$15.40 (45%↓)
적립금
$0.31 (2%P)

추천사 나는 왜 일하는가. 살면서 자꾸 놓치는 물음이다. 소설가 김혜진은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다’는 생계의 논리에 결박된 인물을 내세워 노동을 통해 사람이 변형되고 왜소해지는 과정을 날렵한 필치로 그려낸다. 이는 자기 일에 ‘중지’ 버튼을 눌러본 적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으로부터 가장 먼 존재가 되는지에 대한 고찰이자, 남들처럼 살고픈 욕망이 강할수록 남들에게 등 돌리게 하는 자본 시스템에 대한 고발이다. 생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일하지...

상세보기 >

버텨내야만 하는 일

 

인간은 살면서 많은 고비를 겪고 살아간다. 입시, 입사, 결혼, 육아, 죽음 등 인간은 자신만의 방법으로 산을 넘으며 각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중에서 ‘일’은 인간이 살아가면서 넘어야 하는 큰 산이며 성취되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진다. 인간에게 ‘일’은 단순히 일상생활을 유지하게 하는 수단 그 이상의 의미이다. 이 작품은 일이란 무엇이고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작품은 퇴직을 앞둔 중년 남성의 시점에서 서술된다. ‘그’는 수리와 설치, 보수 업무를 담당하는 통신회사 현장팀에서 일해왔다. 그는 회사에서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계속해서 재교육을 받으며 간신히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퇴직금을 받으면 오피스텔을 하나 살 수 있다’, ‘이만하면 나쁘지 않은 조건이다’ ‘남아있는 다른 사람들도 생각해야 된다’라는 말들을 들으며 퇴사를 종용당한다.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이유가 다만 경제적 어려움 하나뿐이라고 생각하는지, 26년간 회사와 자신을 이어주던 게 겨우 얄팍한 월급 통장 하나뿐이라고 여기는지 그는 되묻고 싶었다.

 

하지만 위의 인용에서 알 수 있듯이 ‘나’는 자발적으로 퇴사할 마음이 없다. 그것을 경제적 어려움 때문만이 아닌 듯 보인다. 그에게 일이란 곧 정체성을 의미하며 삶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는 요인이다.

 

그러나 일을 하는 동안 그는 오히려 점점 자신의 정체성을 잃어간다. 주체적이지 않은, 철저하게 소외된 일을 하기 때문이다. 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그는 저성과자로 분류되어 끊임없이 재교육을 받는다. 그곳에서 받는 교육이란 자기 계발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읽고 보고서를 제출하는 형식적인 것들이다. 또한 교육에 얼마나 늦었고, 어떤 자세로 교육을 받았는지 상세하게 기록되는 일종의 감시이기도 하다. 과연 이러한 교육들이 ‘그’가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고 다시 좋은 성과를 내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런 일련의 과정들은 그저 ‘그’가 자발적으로 회사에서 나가주기를 바라는 합법적인 협박에 불과했다.

 

팀장에게 건네받은 것들을 조수석에 내려놓고 시동을 걸었을 때야 그는 이 일이 그에게 새로운 업무를 부여하는 게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는 의미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마침내 자신이 회사가 만들어놓은 시험장 한가운데로 들어오게 되었다는 걸 직감하게 된 거였다.

 

그는 교육을 받고 새로운 자리에 발령 나지만 이는 새로운 업무를 주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업무도 주지 않겠다고 한 것이었다. 평생을 설비 일만 해온 ‘그’에게 무작정 일정 구역을 주고 그곳에서 영업을 하게 한 것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가 맡은 영업 구역에서 자잘한 수리 업무를 도와주기도 하고 그렇게 신뢰가 쌓여 인터넷 상품을 팔기도 한다.

 

하지만 그가 사람들에게 건넨 호의는 지역 수리 기사들에게 눈총을 사게 되고 그는 회사에서 질책을 당한다. 그 과정에서 주민 사람들과 쌓은 신뢰가 무너지면서 그는 더 이상 그곳에서 영업을 할 수 없게 된다.

 

그는 첫 번째 유배지에서 쫓겨나 두 번째 유배지로 향하게 된다. 첫 번째 공간에서 그는 여전히 인간성을 놓지 않았다. 여전히 현장 업무를 하던 자신이 왜 영업 업무를 하게 되었는지 이해할 수 없고 그 속에서 회의를 느끼지만 떠나는 순간에도 주민에게 통신 단자함을 관리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는 점점 자신 안에 있는 감정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자아를 상실해간다.

 

두 번째 공간에서는 수리, 보수 및 설치 업무를 맡게 된다. 이곳에서 황 여사라는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녀는 그와 마찬가지로 퇴직하지 않으려고 버티는 중이다. 그녀는 30여 년간 상담 업무를 해왔는데 이곳에서 설치와 수리 업무를 맡게 되었다. 이런 황 여사를 위해 그는 무엇이든 알려주고 기다려준다. 하지만 회사의 여러 이해관계로 인해 황 여사는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며 회사를 떠난다.

 

“그동안 사람을 개 취급하고 무시하고 병신 만들어서 좋지? 사람을 본 척만 하고 유령 취급하고 여기 있는 너희 다 똑같아. 여자라고 만만하게 보고. 너희만 가장이야? 나도 가장이야. 왜 너희는 남아야 하고 나는 쫓겨나도 되는데! 밤마다 내가 여기 와서 얼마나 불을 지르고 싶었는지 알아? 그냥 확 불 지르고 다 같이 죽어버리는 건데. 너희가 그러고도 인간이야?” 부끄러운 줄 알아. 너희들은 회사보다 더 나빠. 짐승보다 못한 새끼들.”

 

황 여사와 마찬가지로 그 역시도 곧 두 번째 직장을 떠나게 되는데, 그 이유는 노조였던 친구 장례식에 참여했다는 것이었다. 출퇴근 명부에서 자신의 이름이 삭제된 것을 보며 그는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감정이라고 할 만한 건 느껴지지 않았다. 고요히 차오르고 일렁거리며 자신에게로 혹은 타인에게로 흐르던 마음의 움직임 같은 것을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는 자신과 타인에 대한 연민과 동정을 그만두었다.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이나 가능성마저 폐기하고 나자 내내 마음속에 들끓던 감정들도 잦아들었다.

 

감정을 잃어가는 것이다. 감정을 잃어간다는 건 내가 마주하는 세상과의 현실성을 잃어간다는 것이다. 곧 세계와의 접촉에 둔해진다는 것은 나 자신을 구성하는 요인을 잃어간다는 것이고 결국 나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작품은 자아로부터 소외된 일을 하는 주인공의 자아가 어떻게 무너지는가에 대해 그리고 있다. 그가 세 번째 공간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그는 비로소 텅 빈 인간이 된다. 세 번째 장소에서는 통신탑을 설치하는 일을 맡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의 일도 녹록지 않다. 노인들만 사는 작은 마을에 사람들의 허락도 없이 고주파를 흐르게 한다는 것이 마을 사람들에게 용납이 안 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통신탑 설치에 반대하는 사람들과 정면으로 맞서 싸우며 오직 통신탑 설치에만 몰두하며 살아간다.

 

다만 그는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이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는지, 그래서 마침내 닿게 되는 곳이 어디인지.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 거기까지 이르러야만 이 기이한 집착과 이상한 오기를 모두 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통신탑 설치에 대한 그의 믿음은 맹목적인 것이었다. 그건 집착이었고 오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 그를 지탱하게 했고 그가 확인해야 하는 무언가였다. 그 끝이 무엇인가 확인하기 위한 과정은 참혹했다.

 

그 일이 있은 후 마을 사람들 사이에서 그는 아주 몹쓸 인간이 되었다. 누구도 더 이상 그에게 인간적인 배려나 호의를 기대하지 않았으므로 그로선 차라리 아주 마음이 편했다. 3번과 7번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 일이 있은 후 3번은 그와 눈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그가 무슨 말만 하면 겁에 질려 반사적으로 움직였고 때로는 그보다 훨씬 더 거칠게 주민들을 몰아붙였다.

 

그렇게 바닥을 확인하기 위해 자신을 점점 잃어가는 동안 거대한 통신탑이 굳건하게 세워진다. 작품의 마지막 부분에서 아들이 대학에 합격했다는 전화를 들으며 주인공은 철탑을 보며 그것을 쌓아 올린 과정을 생각한다. 그는 힘겹게 쌓아 올린 철탑에서 작은 나사 하나에 자신의 전부를 건 사람처럼 하나씩 천천히 구조물을 붕괴한다.

 

작품은 그가 직장을 옮겨가는 서사와 동시에 가족과의 크고 작은 갈등, 노조와 회사의 갈등을 다층적으로 다루고 있다. 일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다루면서 동시에 노조 문제, 거대 회사의 횡포, 인간 개인적 삶의 허무함을 다루면서 인간 전체적인 삶과 일의 관계를 생각하게 한다.

 

작품을 읽으면서 어딘가 모를 허무함이 느껴졌는데 소설 마지막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작품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간들은 모두 ‘소외된 일’을 하고 있다. 소설의 인물들은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위에서 시켜서 한다. 나도 죽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는데 여기서 대부분의 일은 그저 회사의 부속품으로서 기능하게 하는, 모든 가치판단과 주체성에서 멀어지게 하는 행위일 뿐이다. 다만 작품에서 이들과 다른 모습을 보이는 인물이 있는데 주인공의 아들 준오다.

 

준오의 ‘일’은 아직 ‘꿈’의 형태에 있다. 동물의 친구가 되겠다고 하던 준오의 꿈이 사육사, 수의사, 구조활동가로 구체화되면서 그는 동물자원학부에 입학한다. 그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다르게 자신의 정체성이 명확하고 그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줄 만한 직업을 고른다. 하지만 준오가 그의 아빠처럼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캄캄한 산길을 오르는 동안 그는 아이를 생각했다. 몇 년 뒷면 준오도 자신의 일을 갖게 될 거였다. 그러니까 자신도 모르게 이끌리는 어떤 일을 발견하게 될 거였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일이 되는 순간, 얼마나 많은 것들이 달라지는지 알게 될 거였다. 그 일을 지속하기 위해 바라지도 않고 원하지도 않는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바뀌어버리는지 깨닫게 될 거였다.

 

누구나 젊었을 때는 꿈을 갖고 그것을 실현해 줄 일을 찾지만 결국 거대한 무언가에 의해 그저 일은 살아내야만 하는, 버텨야만 하는 것으로 전락하게 된다. 만약 그가 조금 더 열심히 새로운 일을 찾아 적극적으로 행동했다면 달라졌을까. 아니면 일찌감치 회사에서 나와 자신의 현실을 마주했으면 덜 비참했을까. 이런 의문에 무색하게도 결국 준오가 나아가는 방향이 그의 아버지의 삶과 맞닿아 있을 거 같아 허무해진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han048395'님은?
텅 비고 허무한 바깥세상의 공허한 들판과 하늘에 화사한 꽃과 별들을, 아름다운 날에 그랬던 것처럼 뿌리기 위해 글을 씁니다.

오늘의 책 메일링 서비스

오늘의 책을 친구에게 추천하기

싸이월드 공감 미투데이로 보내기 요즘으로 보내기

덧글 [ 0 ]

등록하기

오늘의 책 전체보기

이전이전

2 0 2 6 1 0

다음다음

2026년 10월 오늘의 책 입니다.

GO

월요일 화요일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

28

29

30

1


일상의 유토피아

2


평생 월급을 만드는 저수지 투자법

3


그곳에 아이는 없었다

4


슬픈 행성

5


은둔

6


한국 교회 트렌드 2027

7


루미너스

8


그리고 다시, 우리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1

미디어&관련기관추천미디어&관련기관추천

more

문학상추천문학상추천

more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