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2월 7일 오늘의 책
보후밀 흐라발 | 문학동네 | 2016.07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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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실에 스스로를 감금한 한 남자의 끝없는 노동과 고뇌 소설의 화자인 한탸는 삼십오 년간 폐지 압축공으로 일해온 인물이다. 그는 어두침침하고 더러운 지하실에서 맨손으로 압축기를 다루며 끊임없이 쏟아져들어오는 폐지를 압축한다. 천장에는 뚜껑문이 있고 그곳에서는 매일 인류가 쌓은 지식과 교양이 가득 담긴 책들이 쏟아져내린다. 니체와 괴테, 실러와 횔덜린 등의 빛나는 문학작품들은 물론, 미로슬라프 루테나 카렐 엥겔뮐러가 쓴 극평들이 들어 있는 잡...
자신이 살아온 시간의 무게를 온전히 견딜 수 있는 사람.
사실 내 독서는 딱히 읽는 행위라고 말할 수 없다. 나는 근사한 문장을 통째로 쪼아 사탕처럼 빨아 먹고, 작은 잔에 든 리큐어처럼 홀짝대며 음미한다. 사상이 내 안에 알코올처럼 녹아들 때까지. 문장은 천천히 스며들어 나의 뇌와 심장을 적실 뿐 아니라 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온다. 그런 식으로 나는 단 한 달 만에 2톤의 책을 압축한다. (9쪽)
단순히 책의 제목에 호기심을 갖게 되었던 『너무 시끄러운 고독』은 한 늙은 노동자의 독백으로 진행되는 이야기다. 35년을 폐지를 압축하며 살아온 그의 낙은 폐지더미 속에서 책을 찾아내는 것이고, 그런 종이들을 압축하면서 나름의 기준이 있어 필요한 사람들에게 책을 주기도 하고 자신의 집에도 꽤 많은 책을 쌓아두기도 했다. 책의 첫 장부터 주인공인 한탸의 독백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자신의 독서를 딱히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가 이야기하는 책 속의 문장을 대하는 모습은 어떤 애독가보다도 애정이 넘치는 문장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책을 읽고 있더라? 읽어 치우다시피 하는 책 읽기가 대부분이지 않았을까? 때론 책의 문장에서 내 마음을 대신할 글을 찾기 위해 뒤적이고 또 뒤적이진 않았을까? 과연 그동안 읽은 책 속의 문장들이 내겐 얼마나 남아있을까? 한탸의 이야기처럼 문장이 천천히 스며들어 뇌와 심장혈관 깊숙이 모세혈관까지 비집고 들어오는 독서란 어떤 것일까? 이것이 책을 읽는 행위가 아니라면 무엇이란 말일까?
하늘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을 나는 책을 통해, 책에서 배워 안다. 사고하는 인간 역시 인간적이지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도,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사고라는 행위 자체가 상식과 충돌하기 때문이다. 내 손 밑에서, 내 압축기 안에서 희귀한 책들이 죽어가지만 그 흐름을 막을 길이 없다. 나는 상냥한 도살자에 불과하다. (12쪽)
꽉 찬 내 압축통 안에서는 수평 나사 밑에서 생쥐들이 잔인한 수고양이의 노리개가 되었을 때처럼 외마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풀죽이 되어갔다. 자비로운 자연이 공포를 열어 보이는 순간, 그때까지 안전하다고 여겨졌던 모든 것이 자취를 감춘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 고통보다 더 끔찍한 공포가 인간을 덮친다. 이 모두가 나를 망연자실하게 만들었다. 그렇게나 시끄러운 내 고독 속에서 이 모든 걸 온 몸과 마음으로 보고 경험했는데도 미치지 않을 수 있었다니, 문득 스스로가 대견하고 성스럽게 느껴졌다. (75쪽)
폐지 더미 속에서 희귀한 서적의 책등과 표지를 발견하는 그 놀라운 순간이 내게는 언제나 축제나 다름없었는데 말이다. 그 즉시 책을 집어 들지는 않았다. 플란넬 헝겊을 집어 들고 우선 내 압축기의 굴대를 닦은 뒤 내 힘을 다스리며 종이 더미를 흘끗 바라보았다. 그러고 나서야 그 멋진 책을 펼쳐 들면, 제대 앞에 선 신부의 부케처럼 책이 내 손가락 사이에서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88쪽)
쉬는 날도 없이 책을 압축해왔고, 아파서 일을 하지 못한 날이면 그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더 열심히 일했다. 때론 폐지더미 속에서 책을 찾아내기 위해 자신의 근무시간 외의 시간 투자를 마다치 않기도 했다. 언젠가 자신이 모은 돈으로 자신의 집 마당에 자신과 함께 했던 폐지 압축기를 놓고 평생을 함께할 거로 생각했지만, 현대적 시설을 갖춘 폐지처리장을 방문해서 목격한 광경은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거대한 기계, 비인간적인 컨베이어 작업을 보며 자신의 압축작업장을 떠나 새로운 작업장에서 백지를 꾸려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 과정들을 읽으며 왜 그의 마음이 이해 가는 건지, 왜 그의 마지막이 당연히 그런 선택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지….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한 노동자의 독백 같은 고백. 이야기는 책을 읽고 대하는 그리고 책을 읽는 나의 오늘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된다. 꽤 얇은 책인데도 쉽게 읽을 수 없고 생각이 많아졌던 책. 직접 읽고 경험해보시길 추천하고 싶다.
저 거대한 압축기가 다른 모든 압축기에 치명타를 가할 것이고, 내가 몸담고 있는 직업에도 상이한 유형의 사람들과 작업 방식으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었다. 실수로 그곳에 버려진 책들과 사소한 기쁨도 끝이었다!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게 된 나처럼 늙은 압축공들이 누렸던 좋은 시절도 끝이 나고 만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게 되었으니까. 매 꾸러미에서 책을 한 권씩 골라 보너스로 준다 해도 나는 거기서 끝장이었고, 내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책 속에서 근본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찾겠다는 열망으로 우리가 종이 더미에서 구해낸 장서들도 모두 끝장이었다. (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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