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7일 오늘의 책
김중혁 | 문학동네 | 2015.07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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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다가올 시간을 가늠해보는 일, 그게 사랑의 시작일 것이다.” 김중혁 네번째 단편소설집, 첫번째 연애소설집 소설가 가운데 이이만큼 ‘잡(雜)’한 자 또 있을까. 좋은 걸 좋게 볼 줄 아는 타고난 심미안의 소유자니 그간의 삶이 꽤나 피곤했을 거라 짐작도 해보거니와 동시에 그가 전력에 도통 바닥이란 게 나지 않는 무한한 호기심의 별에서 왔을 거란 확신도 해본다. 그렇다고 뭐, 그가 ‘어른’ ‘왕자’란 얘기는 아니다. 어쩌면 “평범하고 ...
우리 집 장독대 옆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있다. 그 아래 상사화 꽃이 해마다 무성하다. 잎이 돋을 때는 모른다. 꽃이 피고 나서야 작년에도 저 자리에 상사화가 피었었지 한다. 잎과 꽃이 서로 만나지 못해 붙여진 이름 상사화. 꽃은 환하지만 꽃을 있게 한 잎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하는 식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모습이 상사화를 닮았다.
이 세계가 지금까지 존재하고 있는 커다란 이유는 사랑이 있어서가 아닐까. 사랑, 참 흔하디흔한 감정 같은데 이게 또 아무나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8편의 단편이 실린 이 소설집은 실패한 연애 이야기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만 하지 않는다면 괜찮은 연애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연애하고 싶은데 사랑이 찾아오지 않는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이 읽는다면 그 원인을 찾아볼 만한 책일 수도 있다. 혹은 실패한 사랑 때문에 자신을 부숴버리고 싶은 감정에 몸부림치고 있는 중이라면 이 책을 읽다가 돌연히 일어나 달콤한 롤 케이크 한 조각 먹으러 나갈 만한 책 같기도 하다.
사랑을 맞이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약간의 무모함과 책임감이 아닐까. 가령 이 소설집의 첫 번째 이야기인 「상황과 비율」에 나오는 차양준은 사랑이 오기 힘든 타입이다. 아니, 사랑이 오기는 하지만 자신의 가슴안에 받아들이기는 어려워 보인다. 모든 일에 적절한 상황과 비율을 만들어 거기에 맞춰갔기에 동종업계(포르노 영화사업) 사람들이 부러워할 만큼 성공을 거두고 있는 차양준. 그런데 사랑은 참 묘해서 이렇게 계산적인 사람에게는 곁을 잘 내주지 않는 습성이 있다. ‘난데없이 탁구공 하나가 가슴 속으로 쑥 들어오는 것처럼’ 느닷없이 찾아오는 것이 사랑인데 차양준 같은 사람은 그 어긋난 상황과 비율을 용인하지 못하고 지그시 눌러버리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상사화처럼 사랑이 앉을 자리가 없다.
상대방에게 자신을 책임져 달라고 보채기만 하는 남자에게도 사랑은 먼 곳에 있는 산이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의 규호는 헤어진 연인을 불러내어 술을 마신다. 자신의 처지를 누군가 이해해주고 따뜻하게 보듬어주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으니 헤어진 애인에게 치근대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상대방의 탓으로만 돌리는 규호에게 사랑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무지개다. 규호가 그 사랑을 잡기 위해서는 버려진 폐가처럼 황폐해진 자신부터 잘 보살펴야 한다. 사랑도 맞춤한 자리가 있어야 눌러 앉는다.
사랑은 일상의 균열에서 찾아온다. 「픽 포켓」에서는 실종된 가수 기민지를 통해 일상의 안녕이 어떻게 한순간에 사라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기민지는 나른한 일상이 흔들리는 순간의 달콤씁쓸함을 느끼지만 결국 돌아가야 한다는 걸 안다.「종이 위의 욕조」에 나오는 정용철은 미요라는 화가가 조금씩 다가오는 것이 싫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점점 커지는 관심을 키울 생각도 없다.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관심사가 같고 서로에게 호감이 있지만 무모한 행동을 하기보다는 감정의 싹을 누르는 쪽을 택한다. 현재라는 부메랑에 잡혀 있는 사람들에게도 사랑이 들어올 틈은 좁기만 하다.
「뱀들이 있어」의 정민철은 고향 친구인 김우재와 류영선의 연애를 질투 가득한 시선으로 보다가 그곳을 떠나온다. 애써 외면해오던 고향 땅이 지진으로 황폐해졌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간 그곳에는 남편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겁에 질린 류영선이 떨고 있다. 정민철은 땅속에서 화가 난 뱀들이 몸부림쳐서 지진이 생긴다는 할머니의 옛날이야기를 떠올리며 자신의 마음속에 들끓는 감정에 몸부림친다. 정민철처럼 남의 불행에 자신의 이기심을 채우려는 사람에게도 사랑은 이름을 빌려주지 않을 것 같다. 「힘과 가속도의 법칙」에 나오는 현수는 교통사고 보험사기단의 일원이다. 자신과 사귀는 중에 다른 남자를 만나 자신을 떠난 여자 친구를 잊지 못해 고통 속에 헤매고 있다. 고통에 자신의 비겁을 묻어버리려는 남자의 자해가 안타깝지만 먼저 그 결과를 만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해야 한다.
마지막 작품인 「요요」는 단편소설의 정석을 보여주는 내용이었다. 차선재는 늘 자신이 관계를 부수고 고리를 끊는 사람이며 자신이 있는 자리가 폐허라고 생각한다.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자신 때문에 결혼한 부모가 결국 이혼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지게 된 생각이다. 늘 자신이 타인과의 관계를 잘 이어가지 못한다고 생각하던 차선재에게도 사랑이 찾아온다. 하지만 둘은 어쩐 일인지 어긋나고, 차선재는 적극적으로 그 사랑을 찾아가지 못한다. 수영을 배우고 싶었지만 자신을 믿지 못해 물에 뜨지 못하는 사람 같았다.
이 책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자신에게 불행의 옷을 입혀놓은 뒤 자신들의 고통을 알아봐 주기를 바라는 듯하다. 마치 넘어진 아이가 울 듯 말 듯 망설이며 주위를 둘러보고 있는 모습이다. 몸은 어른이 되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칭얼대는 이들에게 사랑이 와락 달려들 수 있을까. 사랑이라는 가면 뒤에 숨은 모성이라면 가능하겠지만 이 역시 우울한 결말을 예측하게 만들 뿐이다.
오늘날까지 인류를 지탱해 오게 만든 힘이 사랑이라고 믿을 때 다른 가치보다 사랑에 몸을 맡겨보는 것이 의미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몸에 힘을 빼지 않으면 절대로 물에 뜨지 않는 것처럼 사랑하려면 사랑에 온전히 몸을 맡겨야한다. 상사화 꽃은 며칠 화사하다가 금방 추레해졌다. 사랑은 함께할 때 가장 아름다운가 보다. 사랑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권해주고 싶은 책이다.
책 읽고 서평 쓰는 일의 즐거움을 안지 5년차 되는 평범한 사무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