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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고르듯 살고 싶다

2018년 9월 5일 오늘의 책

빵 고르듯 살고 싶다

임진아 | 휴머니스트 | 2018.06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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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빵, 하셨나요?” 일러스트레이터 임진아가 일상에서 발견한 행복의 조각들. 우리는 지금 고소한 냄새가 풍기는 빵집에 들어섰습니다. 빈 쟁반에 새하얀 유산지를 깔고, 조금은 비장한 표정으로 설렘을 품고 빵 집게를 쥐어요. 그리고 빵들 앞에 섭니다. 식빵, 크림빵, 치아바타, 소보로빵부터 예쁘고 화려한 케이크까지 다양한 빵들이 나를 보고 있습니다. 나는 어떤 빵을 좋아할까요? 오늘의 나는 어떤 빵을 먹고 싶은 걸까요?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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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냄새가 솔솔 나는 책

제목에서부터 솔솔 빵 굽는 냄새가 나는 것 같다. 배고플 때 맛있는 빵집에서 무슨 빵을 먹을까 고르는 행위의 즐거움, 지금 당장 딱 끌리는 맛을 골라서 와구와구 먹어주겠어! 하는 설레는 마음이 담긴 제목이다. 50권 한정 제작된, 그것도 작가가 직접 그린 손 그림이 소소하게 그려져 있는 가제본을 먼저 만났다. 50권 중 27번째 책, 왠지 돈 주고 산 책보다 특별한 느낌이었다.

그 사람의 특별한 매력이 잘 드러나는 에세이를 좋아한다. 인위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스러운 글 안에 그 사람의 생각 회로가 눈에 보일 듯이 잘 드러난 글을 읽고 나면 왠지 친한 친구랑 몇 시간 동안 신나게 수다를 떨고 난 느낌이다. 얇은 가제본이라 일하다 중간에 쉬면서 별생각 없이 펼쳐보다가 결국은 후루룩 다 읽고 말았다. 자기만의 뚜렷한 인생관이 있는 사람이구나, 별것 아닌 일상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쩍 미소가 지어진다.

친구가 만들어준 명란 파스타와 매실 에이드를 먹고 나서 드립 백 커피를 내리며 케이크 박스를 열었다. 친구들의 뜨거운 반응에 역시 사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그만 이렇게 말해버렸다.
“그냥 지각한 사람보다 케이크와 함께 지각한 사람이 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늦었지만 사 왔어!”
친구는 곧바로 “잘했어!”라고 말했고 마치 하이파이브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략)
나쁜 일로 하루를 망쳤다고 생각하는 마음에 작은 좋은 행동 하나를 더하는 방법. ‘나쁜 일 - 나쁜 일 = 나쁜 일 없음’은 인간이 이룰 수 없는 공식이지만 ‘나쁜 일 + 좋은 일 = 나빴지만 좋은 일’은 인간이기에 가능한 공식이다.” (38~39쪽)


친구와의 약속에 늦어서 헐레벌떡 속상했던 날, 나쁜 일을 나쁜 일로 놔두지 않고 좋은 일 하나를 더해 나빴지만 좋은 일로 만들 수 있는 센스, 이건 자신의 삶을 사랑하는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
책을 읽다가 저자가 빵 고르듯 살고 싶다고 말하는 이유에 대한 단서를 찾아냈다.

“자 이제 골라.”
교보문고에 도착하면 엄마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면 나에겐 30분가량의 시간이 주어졌다. 엄마와 찢어져서는 평소에 갖고 싶었던 시디나 책을 한참 구경한 뒤 오늘 가장 사고 싶은 것을 두 손에 꽉 쥐고 엄마에게 가져가면 그걸 사주셨다. 어느 날은 살 것이 이미 정해져 있어서 엄마의 한마디에 바로 튀어가 후다닥 집어 들고는 다음에 고를 것들을 찬찬히 구경하다가 엄마에게 가져가기도 했다. “골랐어? 오늘은 이거야?”라며 엄마는 자신이 고른 책 한 권과 함께 계산을 해주셨다. 내가 고른 것에 대해 한 번도 왜 이런 걸 사느냐며 찡그린 적이 없었다. (58쪽)


무조건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나 골라서 살 수 있는 시간, 그 선택에 대해 누구도 “왜 이런 걸 사!” 하며 나무라지 않는 시간, 그런 시간을 겪으면서 저자 임진아는 내가 좋아하는 것, 내가 원하는 삶을 선택하고 고르는 법을 배운 걸까.

그렇게 차근차근 내가 원하는 것을 고르는 마음과 시간을 엄마에게서 배웠다. 그 덕에 지금 이렇게 ‘좀 골라본 사람’이 된 것이다.
지금도 가끔 환기가 필요할 때면 무엇이든 고르는 곳으로 나 자신을 데려간다. 그러곤 ‘자 뭐든 골라보자’ 하는 기분으로 천천히 눈을 두며 걷는다. 꼭 무언가를 사지 않더라도 이 시간만으로도 충분히 기분 전환이 된다. 꼭 원하는 것을 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여러 시간 중에서도 고르는 시간을 고르는 것 또한 좀 골라본 사람의 선택인 것이다. (60~61쪽)


내가 원하는 것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잘 고르는 사람, 거기다 그런 시간 자체를 의식적으로 즐긴다는 개념에 대해 처음 생각해봤다. 나는 사실 선택 장애가 좀 있는 편이라 많은 물건이 있는 가운데 마음에 꼭 드는 하나를 잘 고르지 못하는 편이다. 차라리 선택 없이 알아서 주어지는 것이 더 마음 편할 때도 많다. 생각해보면 먹고 싶은 빵을 고르고, 사고 싶은 것을 고르는 행위 자체가 나를 위하는 굉장히 적극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원하는 삶은 내가 충분히 생각해보고 원하는 대로 고르겠다는 것, 그게 당연한 것 같으면서도 생각만큼 쉽지 않다는 걸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심지어 물건을 고를 때도 옆에서 점원이 자꾸 말을 시키면 거기에 말려들어 내가 원하는 것과 다른 것을 충동적으로 고르게 되기도 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직원이 말 시키는 오프라인 매장은 별로 찾지 않게 되었다. 이건 너무 소심한 건가?) 나를 위한 시간, 나를 위한 선택에 충분한 시간을 들일 줄 알고, 그 작은 순간순간들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이 글 속에 골고루 녹아있어서 참 따뜻한 시간이었다. 책 뒤쪽에 사적인 서점 대표가 쓴 추천사에 쓰인 말이 인상적이다.

서점을 열고 고속 열차에 탄 사람처럼 살았습니다. ……고개를 들어 옆을 보았더니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즐기고 있는 진아 님이 보였습니다. 들리는 역마다 정차하느라 속도는 더딜지 몰라도, 매일의 날씨와 풍경을 만끽하며 ‘나를 위한 순간들’을 잊지 않고 챙기는 모습이 근사해 보였습니다. 모두가 목적지만 바라보며 ‘빨리 가야 해’ 하고 서두를 때, ‘자기만의 속도로 가도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어요’라고 말해주는 사람. 나를 아끼고 사랑하는 건 이렇게 하는 거구나, 그녀를 보며 배웁니다. 이제 열차를 갈아탈 시간이에요. -추천사 중

나도 이제 열차를 갈아탈 시간이다.
나를 위한 순간들을 잊지 않고 사는 것, 그래서 나를 돌보는 동시에 타인까지 배려할 줄 아는 것.
이 사람, 참 예쁘게 사는 사람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dahyun0630'님은?
조용하고 한가롭게, 그러나 주관있는 삶을 살고자 합니다. 그래봤자 냥이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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