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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랄프 로렌

2017년 9월 5일 오늘의 책

디어 랄프 로렌

손보미 | 문학동네 | 2017.04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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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젊은작가상 대상,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가 손보미 첫 장편소설 손보미의 첫 장편을 기다린 사람이 나만은 아닐 것이다. 예상대로 근사하고 예상보다 다정하다. _정이현(소설가) 단 한 권의 소설집 『그들에게 린디합을』(문학동네, 2013)로 “지나치게 능숙해서 가끔 의심스럽다는 비평가의 불평을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건 아니다”(문학평론가 신형철)라는 평과 함께 문단과 독자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온 젊은 작가의 기수 손보미의 첫 장편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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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친밀하고 따뜻한 노크 소리


“그 친구는 내가 학교에 안 나간 후부터 내 집 문을 두드렸어요. 노크 말이에요. 누군가 내 집 문을 노크해줬죠. 섀넌, 나는 그걸 계속 비웃었지만, 이제는 비웃는 걸 그만해야 할까봐요. 섀넌, 이 세상의 누군가는 당신의 문을 두드리고 있을 거예요. 그냥 잘 들으려고 노력만 하면 돼요. 그냥 당신은 귀를 기울이기만 하면 돼요.” (본문 중)

「폭우」라는 단편을 계기로 소설가 손보미를 알게 됐다. 세상이 완전히 암흑에 사로잡힌 것 같은 그 절망적인 순간에도 주변을 돌아보면, 저 멀리서 작은 빛이 보인다는 것을 알려주는 작가였다. 작가의 글은 냉정했지만 따뜻했고, 차갑지만 아련했다. 그때부터 손보미의 글을 찾아 읽었다. 장편소설 『디어 랄프 로렌』에 이른 것은 얼마 전이다.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미국에서 대학원에 다니던 종수는 지도교수가 좀 쉬라고 하는 말에 어리둥절해진다. 그것은 공부를 그만두라는 말이었고 학교에 더 이상 있지 말라는 말이었다. 몇 년을 그곳에서 공부하며 여기가 내 자리라고 믿고 살고 있던 그때에, 갑자기 나가라는 말을 들었으니 그의 기분은 참담했으리라. 종수는 현실을 외면하고 방에서 매일 술만 마셨다. 누군가 그의 방에 노크를 해도 모른 척 했다.

오래전에 받은 수영의 청첩장을 발견한 것도 그때였다. 그것을 몇 년이 지나 다시 본 것은 우연일까, 필연일까. 수영은 고등학생 시절에 알게 된 친구였다. 그 당시의 아이들은 모두가 랄프 로렌에 빠져 있었다. 체육시간에도 체육복 대신 랄프 로렌 로고가 있는 옷을 입는 아이들이 있을 정도였다. 수영도 마찬가지였다. 그녀는 헤어밴드부터 옷, 그리고 속옷까지 랄프 로렌을 입고 싶어 했고 그 때문에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수영이 종수에게 말을 건 것도 랄프 로렌 때문이었다. 공부 잘하는 종수에게, 수영은 편지를 영어로 써 달라고 했다. 랄프 로렌에게 보내는 편지였고 편지 내용은 시계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었다. 종수는 그때까지 생각하지 못했다. 랄프 로렌에서 시계는 만들지 않았던가? 종수는 편지를 쓰기로 한다. 아주 느릿느릿 쓴다. 그래야 수영을 더 자주 만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 감정은 고등학생 남자아이의 첫사랑이 분명했다. 본인이 인정하든 안 하든 말이다.

그 편지는 보냈던가? 종수는 학교에서 쫓겨난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랄프 로렌의 삶을 쫓기 시작한다. 그는 자신이 작가라고 거짓말을 하며 관계자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어처구니없는 도둑질도 한다. 종수는 자신이 왜 그랬는지 모른다. 아니, 알면서도 모른 척 한다. 어쨌든 그는 랄프 로렌을 맹목적으로 쫓다가, 랄프 로렌을 자식처럼 키운 시계수리공이자 권투 선수 조셉 프랭클을 알게 된다. 시계수리공이 키웠는데, 어째서 랄프 로렌은 시계만은 만들지 않은 거지?

소설을 읽으며 내내 이상했다. 절망에 빠진 남자는 왜 이렇게 랄프 로렌이 시계를 만들지 않았다는 사실에 집착하는 걸까? 게다가 소설은 허구를 마치 진실인 양 능청스럽게 펼쳐 놓는다. 예컨대, 랄프 로렌 브랜드는 시계가 있다! 그런데도 소설은 그런 적이 없다는 듯이 아주 정교하게 사실과 허구를 뒤섞으며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나간다. 

그 정교하고도 능청스러운 이야기 안에서, 절망에 빠진 한 남자는 맹목을 넘어 비로소 자신의 존재를 직면한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내가 무엇을 잊고 살았는지를 깨달은 순간, 그는 어두운 방안에서 나온다. 마치 누군가의 노크소리를 들은 것처럼, 문을 연다.

이야기의 힘은 단단하고 매력적이었다. 단편소설에 비해 더 깊고 재밌어졌다. 소설을 덮은 후에도 나는 아직 궁금한 것이 많다. 랄프 로렌은 아직 살아있는데 소설 속에서는 죽었다고 하고, 또한 시계를 만들지 말라고 했던 유언을 남겼다는 설정 등이 일단 의문의 대상이다. 어디까지가 허구인 것인가? 아니, 이것보다 더 궁금한 건, 도대체 ‘랄프 로렌’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그것이 무엇이기에 절망에 빠진 한 남자를 맹목적으로 만들고 구원해내는 것인가? 읽는 마음까지 아찔하게 만들더니 기어코 애틋하게 만드는 건 또 무슨 이유인가.

‘디어’라는 의미가 아름답다. 그것을 어디에 자꾸만 말하고 싶다. 이 소설이 얼마나 아련하고, 가슴 먹먹한 결말을 지녔는지도 계속 말하고 싶다. 그 말이 누군가에게 노크가 되지 않을까. 이 소설은 나에게 하나의 믿음으로 남았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정군'님은?

읽다보면 뭐라도 되겠지, 라고 믿으며 읽는 책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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