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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2017년 4월 5일 오늘의 책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이미경 | 남해의봄날 | 2017.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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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0년 동안 구멍가게를 화폭에 담아 온 이미경 작가가 따뜻한 시선으로 섬세하게 풀어낸 그림과 글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따뜻하고 서정적인 감성으로 포착해 온 이미경 작가는 사라져가는 소중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안타까움으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전국 구석구석 작고 낡은 구멍가게를 찾아 길을 나선다. 그리고 운명처럼 길에서 만난 숨은 보석 같은 구멍가게의 모습과 이야기를 화가이면서 기록자의 마음으로 정성껏 펜화로 화폭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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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라한 유년의 기억


그림 속에서 재잘재잘 목소리가 들린다. 저녁을 지으러 가기 전 구멍가게 평상에 모여 앉은 할머니들의 수다나, 고된 노동 끝에 김치 한 접시 안주 삼아 막걸리를 나눠 마시는 아저씨들의 말소리 같은. 사람인지, 풍경인지 어느 때는 바람에 삭아가는 풍경이 꼭 사람인 것만 같은 그런 광경.

이미경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속 그림엔 사람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림 속 풍경에선 도란도란 말소리가 들렸다. 구멍가게, 쓸고 닦은 손길이 수십 년간 누적되면, 그 공간에도 사람 냄새가, 온기가 깃드는 모양이다. 느리게 풍화된 시간의 풍경은, 펜으로 느리게 그린 그림 속에 담겨 기억의 현을 건든다.

20년 동안 전국의 구멍가게를 돌며 그림을 그린 저자, 구멍가게에 대한 애착만큼이나 그의 펜선 하나 하나에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 저자의 유년 추억은 구멍가게에 깊이 배어 있다. 어린 시절 동전을 들고 구멍가게로 달려가 불량 식품을 입에 물던 행복이나, 해질녘 어머니들이 하루 고단함을 풀어내던 수다 소리 같은. 저자에게 구멍가게는 이웃들의 소박한 삶의 풍경이자, 어머니 품과 같은 곳이다.

어떤 사람들은 내게 말한다. 왜 작고 오래된 쇠락하는 가게 풍경을 그리느냐고, 인류의 가치관을 대변할 좀 더 근사하고 웅장한 상징물을 그리라고 한다. 기억의 향수에 머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더 높이 수직을 보라 한다. 그렇지만 왕조의 유물, 역사에 기록된 위대한 상징물보다 나를 더 강렬하게 잡아끄는 것은 보통의 삶에 깃든 소소한 이야기다. 사람 냄새나고 매력 있게 다가온다.
수직에서 느껴지는 경쟁과 성공 지향의 이미지와 엄숙함, 숭고함이 나는 낯설다. 그저 동시대의 소박한 일상이나 사람과 희망에 의지하여 오늘도 작업에 임할 뿐이다. 정겨운 구멍가게, 엄마의 품, 반짇고리 같이 잊고 있던 소중한 마음을 되돌아보게 하는 그림을 그리고 싶다. (138~139쪽)

구멍가게에 대한 저자의 애정은 과거의 향수이기도 하고, 사라져 가는 풍경에 대한 안타까움이기도 하다. 저자는 우리가 개발이란 명목으로 누추하고 작은 것, 오래된 것들을 도외시하고 살아왔음을 지적한다. 저자의 시선은 그러니, 소박하고 낡은 것으로 향해 있다.

건축은 시대를 반영한다. 내가 말하는 건축은 그 시대에 살았던 대다수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집과 공간이다. 과거의 터전이 낡고 오래되었다고 스스로의 터를 죄의식 없이 갈아 엎고 부순다면 진짜 사라지는 것은 우리의 과거요, 추억이요, 고향이요, 자아일 수 있다. 반세기 동안 근대화와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낡고 오래된 옛것을 우리의 삶에서 지우고 감추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이전보다 따듯하고 배부른 풍요를 누리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도 많다. 무분별한 개발보다는 복원과 보존으로 우리 삶의 근본과 맥락을 찾아야 할 때다. 더 늦기 전에. (164쪽)

저자는 직선의 근대 바깥에 소외되고 잊혀진 풍경을 화폭에 불러옴으로써, 우리가 살아온 직선의 삶의 방식을 반성한다.

내게는 구멍가게가 저자와 같은 감정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곳이 아니다. 과거를 아름답게 기억하려는 경향도 경계하는 편이다.

그래도 한 해 한 해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세월은 힘이 세다는 것이다. 세월의 더께가 묻은 사물은 그 자체로 무시할 수가 없는 아우라를 지닌다. 사람이 오래 끼고 쓴 물건은 그 사람이 없을 때도 마치 그 사람의 일부인 듯 여겨진다. 옛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이 도깨비가 되고, 오래된 공간에 신이 있다고 믿은 이유도 이 때문일까. 사물이, 공간이 세월을 머금으며 지니는 독특한 속성은 신(神)을 빌리지 않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을 테니. 오래된 공간, 오랜 사물이 가진 인력, 그것을 알려면 나는 더 나이를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 그림과 저자 인터뷰 보러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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