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9월 4일 오늘의 책
승효상 | 컬처그라퍼 | 2012.10
분류 : 여행/취미/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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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잃어버린 건축과 도시의 가치, 삶의 진실함을 일깨우는 비움과 고독의 이야기 “좋은 건축과 건강한 도시는 우리 삶의 선함과 진실됨과 아름다움이 끊임없이 일깨워지고 확인될 수 있는 곳이며, 그것은 비움과 고독을 통해 얻어지는 것이다. 과도한 물신의 탐욕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잃어버렸던 우리의 고독을 다시 찾아 이를 마주하고 우리의 근원을 다시 물을 수 있도록 비워진 곳, 그런 비움의 도시가 결국 우리의 존엄성을 지킨다. ” ‘내 집 짓기...
내가 운신할 수 있는 범위는 상당히 좁다. 팔을 뻗어서 손이 닿는 거리 이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단지 그 거리 이내에만 있지 않다. 손이 닿지 않는 그 밖의 공간이 내 운신의 향방을 결정한다. 방은 사생활을 허락하고, 사무실은 사무 이외의 용무를 허락하지 않는다. 번화가 한복판을 걸을 때 내 속도는 빨라지고, 공원에서는 느려지거나 멈추어 있다. 사무실이나 공원의 외관만 보고는 알 수 없었다. 해당 공간에서 살아 보고야 그곳이 내 삶을 담고, 내가 그곳을 닮아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보다 나은 삶을 위한다면 닮는대로 살기보다 역으로 지향하는 삶의 공간을 조직해볼 수 있으리라. 그런 맥락에서 행해지는 것이 건축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건축을 어떻게 보아야 그 본질에 대해 알 수 있을까. 간단히 말하면, ‘공간의 조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건축의 외관이란 내부 공간을 감싼 결과일 뿐이어서 부차적인 것이다. 공간의 조직이란 우리가 ‘사는 방법’을 의미한다. 쉽게 말해 집의 거실과 주방, 침실 등을 얼마만큼 크게 하고 어떻게 배치하느냐에 따라 사는 방법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건축설계라는 것은 우리 삶을 조직하는 일이며, 건축은 어디까지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 건축설계라는 일이 남의 삶을 조직해 주는 것인 만큼, 건축가가 좋은 집을 설계하고 짓기 위해서는 당연히 그 집에 사는 이들의 삶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가져야 하고, 이는 우리의 삶에 대한 지극한 관심의 토대 위에서 가능한 일이다. 그러니 바른 건축 공부란 우리 삶의 형식에 대한 공부여야 한다. (13쪽)
건축, 건축 공부에 대한 건축가 승효상의 정의다. 이러한 건축을 공부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가 택한 방법은 여행이다. “건축이 땅에 새기는 삶의 기록임을 아는 한 이 땅에 새겨진 수많은 기록들을 보아야만 한다. 땅을 보지 않고는 환상만 남게 되니, 현장을 보지 않는 한 그 건축이 이룬 시간의 결은 체득될 수 없다.”(16쪽)라고 말하는 자신의 가치관대로 승효상은 나라 안팎의 여러 기록을 접했다. 이름이 귀에 익은 소쇄원과 부석사부터 멀리 모로코 페즈와 독일의 전후 기념탑에 이르기까지. 사실 이들 건축을 지금 내 삶에 고스란히 흉내 내기란 불가능하다. 당장 산으로 들어가 소쇄원을 지어 놓고 살거나 집 앞에 평화를 기원하는 탑을 세울 수는 없으므로. 그러나 삶의 공간을 조직하는 것이 곧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일이라면, 이 책에서 읽은 바를 꼭 실제의 건축으로 행하지 않고도 행할 수 있지 않을까? 좋은 건축에 깃든 정신을 내 삶에 적용하는 식으로 말이다.
마지막 장에서 승효상은 사라지는 기념탑의 예를 든다. 1986년, 독일 함부르크 남쪽 외곽의 작은 마을 하르부르크 중심부에는 “매년 2미터씩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도록 되어 결국에는 모두가 사라지는”(272쪽) 탑이 세워졌다. 조각가 요한 게르츠·에스터 샬레브 게르츠의 이 공동작품 표면은 시민들에게 주어졌다. “우리는 하르부르크 시민들과 이 도시를 방문하시는 분들에게 이 탑에 이름을 써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많은 이름들이 이 12미터의 탑에 담기게 되면서 이 탑은 땅 속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어느 날 이 탑은 완전히 사라지고, 파시스트에 대한 저항을 기념하기 위한 이 탑이 놓인 장소는 비어 있게 될 것입니다. 불의에 대항하여 일어서야 하는 것은, 결국에는 우리 스스로일 뿐이라는 뜻입니다.”(274쪽)라는 조각가의 요청에 따라 시민들은 탑이 사라져가는 동안 그것의 표면에 나치 시절의 기억을 적어 나갔다. 1993년, 탑은 땅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나는 이 정신만은 그들 개개인에게 남았으리라고 짐작한다. 진정한 건축이 행하는 바는 건축 그 자체가 아니라 바로 이런 것일 게다. 올바른 삶의 공간을, 끝내는 올바른 삶을 조직하게 하는 일. 그리하여 “그려져야 하는 것은 껍질의 모습이 아니라 그 속과 밖의 삶의 관계와 형태이며 바로 공동체의 풍경”(271쪽)임을 《오래된 것들은 다 아름답다》는 이야기하고 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