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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동네

2011년 1월 4일 오늘의 책

어떤 동네

유동훈 | 낮은산 | 2010.11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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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상은 우리 동네를 불량한 사람들이 사는 불량한 동네라고 한다.” 사진이 흔한 시대다. 비싼 카메라로 찰칵 소리를 울리며 그날 먹은 음식 사진을 찍고, 질 좋은 휴대폰 카메라로 순간의 풍경을 기록해 개인 블로그에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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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다시 꾸는 꿈


‘동네’라는 말이 자못 낯설게 느껴진다. 낮과 밤의 생활 영역이 다른 현대인들에게 사실상 ‘동네’라는 삶의 테두리는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이웃에 누가 사는지,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는데, ‘이웃사촌’이라는 말 또한 새삼스럽다. 오히려 이웃한 이들의 삶이 자신의 일상을 침범할까 조심스러워 하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지난날의 어디쯤으로 되돌아간다면, ‘우리 동네’라고 기억된 익숙한 장면들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루가 짧도록 골목길을 뛰어다니며 노는 아이들, 대청마루에 모여 앉아 일상을 나누던 어르신들, 서로의 집안일에 일손을 보태며 이웃한 이들의 정을 쌓아가던 추억들 말이다. 그러나 추억은 추억일 뿐이다. 오늘도 허름한 ‘어떤 동네’의 풍경은 자본이 만든 화려한 도시의 뒤편으로, 그 속에 사는 현대인의 기억 저편으로 점점 더 희미해져가고 있다.

그러니 현대사회의 파편화된 개인들은 공동체적 삶의 감각을 잃고 부유한다. ‘나’와 ‘너’는 있지만 서로의 삶이 연계되는 일을 기꺼워하지 않는 이들에게 ‘우리’는 버거운 짐에 불과하다. 삶의 근거가 되었던 땅, 그 땅에 정 붙이고 살았던 ‘우리’가 사라지고, ‘우리 동네’ 또한 사라지고 있다. 사라지고 잊혀져가는 것들에 또 하나의 안타까운 이름이 추가되고 있는 것이다.

유동훈이 글을 쓰고 사진을 찍은 <어떤 동네>는 그 안타까움을 담은 책이다. 실제로 그곳에서 공부방 삼촌(선생님이 아니다)으로 아이들과 함께 살고 있는 그는 스스로가 ‘어떤 동네’ 사람이기도 하다. 그것도 ‘자꾸만 스러져 가는 동네와 그 동네 이웃들의 삶이 안타까워 사진을 찍어’ 온, ‘찰칵’하는 셔터 소리마저 골목 이웃들에게 미안해하는 사람. 사각의 틀 안에 동네와 이웃들의 삶을 담는 것이 자신의 욕심이 아닐까, 고민하고 경계하는 그런 사람.

사진에는 ‘어떤 동네’와 그곳에 대한 그의 마음이 함께 찍혀 있다. 거짓이나 불편한 기색 없는 어떤 동네의 솔직한 표정, 시간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는 진심들이 그대로 사진에 박혀 있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웃들의 일상과 허름한 동네의 모습이 관찰자의 시선에 의해 훼손되거나 왜곡되는 일 없이 그 자체의 울림이 되어 전해져온다. 진심의 힘이다.

그런데 이 동네를 대한민국 정부는 ‘노후 불량 주거지역’이라 부른다고 한다. 빼앗기고 힘없고 상처 입은 사람들이 사는 볼품없는 동네, 여기저기 깨지고 갈라진 데를 시멘트로 대충 발라놓은 골목길, 큰 비 내리고 태풍 불면 지붕에 올라가는 수고를 반복해야 허름한 집들, 좁은 골목길 한편으로 한자리씩 차지하며 쌓여있는 살림살이들이, 다시 말해 ‘얼핏’ 어수선하고, 지저분하며 불편해 보이는 그 동네의 삶이 개발의 논리에 의해 ‘불량’으로 낙인찍히는 것이다.

“일제강점기 나라 잃은 설움을 몸뚱아리 하나로 감내해야 했던 식민지 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은 불량하다. 거적때기 몇 장으로 세상의 폭력을 막아 보려 했던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삶은 불량하다. 경제발전이라는 허울 아래 목재공장에서 목도질을 하고 밤새 미싱을 돌리며 좁은 판잣집에서 피곤한 몸을 누이던 우리 형 누이들의 삶을 불량하다. 세상에서 내쫓겨 다시 우리 동네로 숨어든 천민의 아이들. 동네에 있는 세 평의 공간이 가장 크고 자유로운 놀이터인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불량하다. 한밤에 조금씩 나무를 주워 만든 집에 수도가 들어왔을 때가 가장 행복한 때였다고 말하는 우리 동네 할머니들의 삶과 그 집에서 나머지 삶을 마치고 싶어 하는 할아버지들의 소망은 참으로 불량하다.” (58-59쪽)

그러나 ‘얼핏’이라는 바깥의 시선으로는 볼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밖에서 보면 언제 무너질지 모를 만큼 허름하고 지저분해 보여도 오갈 곳 없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이룬 이곳에서는 가난한 사람들이 스스로 삶의 주체였다. 낡거나 부족한 것이 있으며 제 요량에 맞추어 스스로 고치고 채웠고, 이웃과 싸우고 화해하고 나누었다. 강요된 가난 속에 던져진 이웃들은 자발적 가난의 근거 그 소중한 미래의 싹들을 동네 자투리땅에, 골목의 세간들 속에, 그 낡은 집들 속에, 이웃들과의 부대낌 속에, 때론 슬프고 때론 아름답게 새겨 넣었다.” (170쪽)

혹은 ‘노후’하기 때문에 간직되어 있는 시간의 흔적들이 있다. 그곳에, 새로 지어진 고층 아파트가 기억할 수 없는 역사가 있다. 정직하고 성실한 몸으로 근현대사의 고단함을 견뎌온 낮은 이의 삶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노동자들의 집단합숙소, 일본군의 잠수함을 건조하고 무기를 만드는 군수공장, 농민들에게서 수탈한 곡물을 군량미로 쌓아 두던 창고들. 한국전쟁의 피란민, 6.70년대 개발독재로 올라온 이농민, 90년대 IMF로 파괴된 가정, 소비사회의 진입과 아파트 건설로 점점 흩어져 갔던 이웃 공동체 등. 지난 세월을 아프게 증명하는 것들은 이렇듯 모두 노후하다.

그 세월로부터 희망이 시작되고 있다. 작은 동네, 좁은 골목길에서 다시 꿀 수 있는 꿈이 있다. 이것이 바로, ‘낡은 담에 기대선 아이들’에서 출발한 <어떤 동네> 이야기가 ‘작은 학교’로 마무리되는 까닭일 터이다. “끝없이 완고해져만 가는 세상은 아이들에게 더욱 깊은 상처를 남기지만 그 상처는 다시금 아이들의 생명을 증거하는 역설이 된다. 부서지고 상처받은 마음을 안고 함께 낡은 담에 기대어 섰던 아이들, […] 함께 놀고 싸우고 슬퍼하고 기뻐했던 첫봄의 기억들을 상처받고 부서지고 갈라진 마음 안에 담고 담벼락에 기대선 아이들. 첫봄의 기억은 겨울을 돌아 다시 어김없이 봄을 부른다. 꿈을 부른다.” (20쪽)

그 꿈으로 자라난 아이들이 이제는 어른이 되어 각자의 몫을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그중의 누군가는 자신들의 꿈을 키워준 그 동네로 돌아와, ‘작은 학교’의 이모 삼촌이 되어 또 다른 가족을 꾸려나간다. 새로운 형태의 확대된 가족, 그 안에서 “어른들이 주저하며 힘겹게 꿈꾸는 세상”을 “너무나 자연스럽게 온몸으로 살아”가는 아이들이 ‘어떤 동네’의 삶을 행복한 공동체의 기억으로 안고 성장해나간다. ‘너’와 ‘내’가 모이면 ‘우리’가 된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그 따뜻함으로 세상을 볼 줄 아는 아이들이 자라는 그곳이 진정으로 “사람 사는 동네 같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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