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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멈춤

2015년 8월 31일 오늘의 책

우선 멈춤

안보윤 | 민음사 | 2012.03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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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자신의 고통에는 작은 상처 하나도 크게 보일 정도로 민감하지만, 타인의 고통이나 사회의 고통은 무디어지거나 무심한 척 넘어가기 쉽다. 수전 손택이 '타인의 고통'이라 일컫고 모리오카 마사히로가 '무통문명(無痛文明)'이라 말하는 사회는 브라운관 안에 '전시'된 고통을 시각적으로 감상하게 한다. 여기에서 시각적, 이라고 했다. 객관적으로 기술했지만 나 역시도 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에게 절실한 고통 역시 지금 내가 감내하고 있는 현실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시지프스처럼 반복되는 고통은 아이처럼 칭얼거리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어든 안보윤의 『우선 멈춤』은 제목처럼 소설 곳곳에서 '우선 멈추게' 만든다. 몇 개의 단어로 무심하게 지나갈 성추행, 불법 낙태, 왕따, 영아 유기, 무차별적인 구타 등은 사회에서 은밀하게 혹은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일일 수 있으나 소설로 읽기엔 불편하고, 어렵다. 순임이 불법 낙태 시술을 하는 장면, 선주가 아이를 화분에 방치하는 장면, 해수가 아이들에게 가학적인 괴롭힘을 당하는 장면, 기영이 해정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장면 등의 묘사는 적나라하다. 한 문장 한 문장을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꾸만 문장 곳곳에 생긴 구멍에 빠지고 만다.


여기에서 '불편함'에 집중해 보았다. 불편함은 시각적인 것을 넘어선 촉각적인 경험이다. 단숨에 지나가지 못할 정도로 소설 곳곳에서 반복되는 촉각적 불편함은 '무통'한 삶에서 잊고 있었던 감각일지도 모른다. 특히 이혼한 부모에게서 버림받고, 방치된 남매는 각각 왕따로 인한 등교 거부를 하는 해수와 30대 남자와 사랑 없는 관계를 맺는 해정의 모습으로 귀결된다. 상황의 잔혹함에도 불구하고 남매에게서 가장 절실하게 흘러나오는 말은 도와 달라는 것, 위로해 달라는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나까지 그들이 속한 '어둠의 그물'로 끌려 들어간다. 이러한 그물은 소설 안에서 인물들이 서로 얽혀 있는 것과도 연결된다. 해정이 관계를 맺은 기영은 순임의 아들이다. 순임은 해정과 기영 사이에서 생긴 아이를 수술해 준다. 이들의 고통은 서로를 엮어가면서 해결되지 못하는 것으로 남는다.


이 소설은 '우선 멈춤'의 신호를 무시하지 않는다. 자꾸만 돌아보라고 말한다. 소설에서 인상적이었던 단어는 ‘철콘 근크리트’다. 철근 콘크리트라는 단어를 아이들이 헷갈려서 그대로 만든 애니메이션 제목이었는데, 내용이 실로 잔혹하다. 이러한 제목에 대해 해수를 상담했던 (그리고 사실은 본인이 상담을 받아야 할 정도로 냉담하고 잔혹한) 선주는 헷갈리는 제목이 더 헷갈린다고 말한다. 복잡한 듯하지만, 이것이 이 소설에서 나타나는 고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 같다. 헷갈리는 고통을 선주처럼 헷갈린다고 말하면서 냉담하게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헷갈리는 채로 두는 것이다. 명쾌하게 고통을 정의 내리거나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뭔지 모르게 헷갈리는 채로 어둠의 그물에, 그 심연에 빠져야 하는 것이다.


이 소설은 뜻밖에 냉소적이지 않아 더 절실했다. 가족을 '조건부 임시 동거인'이라고 지칭하면서 냉소적인 것 같았던 해정은 사실 가족이 함께 하는 것을 가장 바라고 있었다. 해정은 불미스러운 일로 경찰서에서 모였을 때 온 가족이 모여 마주 보고 있으므로 즐겁고, 모처럼 다 모였으니 같이 밥이라도 먹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맑게 웃으며 묻는다. 이어진 에필로그에서는 이명(耳鳴)보다 오히려 침묵에 더 고통을 느끼는 순임의 모습이 나온다. 이명이 더 고통스러울 것 같지만, 오히려 "어떤 것도 생산해 낼 수 없는 순백의 껍데기"(190쪽)인 침묵이 더 고통스럽다는 것이다.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무통'이 사실은 가장 무섭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 아닐까. 소설의 마지막 장면은 어둠의 그물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어렵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시에 이때 멈추지 않으면 가장 무심한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경고도 담겨있다. 고통에 대한 섣부른 동정도 무섭지만, 무심함은 더 무섭다. 표면적으로 불편한 소설이 계속해서 쓰여야 하고 읽혀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고통을 그냥 스쳐 지나가지 말라는 것을, 멈춰서 한 번만 보라는 것을 온몸으로 절규한다.


| 펜벗 일문일답


Q. 펜벗에 지원서에 쓰셨던 말이 기억납니다. 서평을 쓰고 공유하면 독서 역시도 공동체의 활동이 될 수 있겠다는 말이요. 펜벗 활동을 하시면서 마음에 맞는 펜벗을 찾으셨나요? 아니면, 지난 큐레이션 중 기억에 남는 펜벗의 서평이 있나요?
공동체로서의 독서를 지향하면서 펜벗 활동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정작 저는 펜벗들과 많이 교류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그러한 점에서 펜벗들과 활발하게 교류하시는 '김 랑[金 朗]'님이 기억에 남습니다. '김 랑[金 朗]'님의 서평 중에 왕가리 마타이의 『지구를 가꾼다는 것에 대하여』를 대상으로 한 글이 있습니다. 조카 이야기를 하시면서 조카의 미래와  지구를 연결한 것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저의 댓글에도 정성스럽게 다시 댓글을 남겨 주시면서 '지구만큼 큰 힘으로 성장할 수 있는' 실천을 언급하셨는데, 이 역시 저 혼자 책을 읽었다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부분이라 마음에 많이 와 닿았습니다.


Q. 어떤 이유로든 나를 가장 불편하게 했던 책은 무엇이었나요?
한 권의 책을 딱 짚어서 말할 수는 없지만, 오늘날의 폭력적인 현실을 담은 소설들은 그것이 완전한 허구가 아니라는 점에서 저를 늘 불편하게 합니다. 그러한 불편함 안에는 그것을 보는 것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다는 것과 보는 것으로는 해결될 수 없기 때문에 외면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동시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그러한 양면성이 감정에서 사유로, 사유에서 실천으로 나아가게 하는 문학의 힘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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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매처럼 책과 책 사이를 날아다니고 싶은 '골방 탐험가'입니다.





[초고리 님의 테마북 – 비밀이라서 추천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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