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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2017년 7월 31일 오늘의 책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프레드릭 배크만 | 다산책방 | 2017.06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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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히아신스 향기를 맡으며 아무 두려움 없이 작별하는 법을 배워야한다.” 삶의 어느 한 순간이 끊임없이 재생되고, 현재가 녹아내리며,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 기억을 잃어가는 노인과 천천히 헤어짐을 배워가는 가족의 한 편의 동화처럼 소중히 간직될 아름다운 이별 이야기 할아버지와 노아는 날마다 점점 작아지는 광장의 벤치에 앉아 있다. 낯설고도 어딘가 익숙한 이곳에서는 할머니의 정원을 가득 채우던 히아신스의 달콤한 향기가 난다. 수학을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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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의 순간은 그렇게 멀리 있지 않다


치매만큼 무서운 게 없다. 다른 병들은 육신이 고달플지라도 영혼만은 그대로다. 내가 누구인지,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과의 기억, 결코 놓치고 싶지 않은 추억 등은 고스란히 남아 통증과 절망을 이길 수 있는 힘이 된다. 그러나 치매는 그 모든 것을 잃는다. 육신은 멀쩡해도 그 멀쩡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영혼이 없다. 거울을 봐도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고 날 아끼고 사랑하는 이의 얼굴도, 지금 나를 보는 그들의 아픔도 알 수 없다. 육신이 아픈 자들은 죽음이 임박했을 때, 자신의 삶을 돌이켜 보고 그 의미와 가치를 생각하면서 회자정리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치매는 삶을 정리하기는커녕 죽음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눈을 감는다. 치매 걸린 이에게 허락된 것은 느닷없는 종결뿐이다. 적어도 그의 입장에선 그렇다. 사정이 이러하니 치매란 얼마나 무섭고 끔찍한 병이란 말인가.

당신에게 조금은 뜬금없을지도 모를 치매 이야기를 한 것은 최근 이와 관련한 책을 하나 읽었기 때문이다. 『오베라는 남자』로 제법 유명해진 프레드릭 배크만이 지은 소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다. 노인 전문 작가답게(지금까지 그의 소설이 네 권 나왔는데 주인공이 모두 노인이다. 그러니 이렇게 불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도 할아버지다. 점차 기억을 잃어가고 있는 치매에 걸린 노인이다.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라는 제목은 주인공 할아버지의 상태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기 전에 귀여운 손자에게 인생에 관한 소중한 교훈을 들려주고자 한다. 그것을 할아버지로서의 의무이자, 손자를 향한 자신의 마지막 사랑이라 여긴다. 예쁜 삽화와 담백한 문장, 독자에게 건네는 이로운 교훈들로 가득하지만, 자신의 삶과 손자를 기억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절박함은 그 모든 대화들을 애처롭게 다가오게 한다. 삶은 유한하고 인간은 시간 앞에 속절없이 노쇠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참 아프게 다가온다. 160쪽의 짧은 분량이지만 읽는 시간은 3배 정도 더 걸리는 느낌이다. 그것은 이야기의 어떤 한 순간에 느낀 삶의 둔중한 울림에, 마음이 먹먹해져 그 주변을 한동안 서성이기 때문이다. 이 소설엔 그런 말들, ‘일시정지’ 표지판을 본 자동차처럼 자신도 모르게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게 되는 말들이 있다.

'여기는 내 머릿속이란다, 노아노아. 그런데 하룻밤 새 또 전보다 작아졌구나' (43쪽)

'그렇지, 노아노아야, 그렇지. 위대한 사상은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없는 법이란다.' (63쪽)

'네 발이 땅에 닿을 때쯤 이 할애비는 우주에 있을 게다, 사랑하는 노아노아야.'

'우리 작별하는 법을 배우러 여기 온 거예요, 할아버지?'(73~74쪽)

'나는 계속 한 페이지가 없어진 책을 읽고 있는데 그게 항상 제일 중요한 부분이야.' (85쪽)


'주머니에서 뭔가를 계속 찾는 기분. 처음에는 사소한 걸 잃어버리다 나중에는 큰 걸 잃어버리지. 열쇠로 시작해서 사람들로 끝나는 거야'(103~104쪽)


어조가 격렬하지 않다. 그 담담함이 어떤 마음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기에 문장들이 더 슬프게 다가왔다. 그 슬픔의 끝에서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은 어떤가를 되새겨 봤다. 그 문장들로 인해 나는 목초지에 방목된 말처럼 고개를 늘어뜨리고 머무를 수밖에 없었다. 일렁이는 말들의 물결 속에서.

나와 아주 가까운 분이 지금 치매를 앓고 있다. 치매를 앓은 지 벌써 한 4, 5년 정도 됐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그 분이 많이 생각났다. 치매는 환자 본인보다 그를 지켜보는 사람을 더 힘들게 하는 병이다. 그토록 눈부셨던 영혼이 하루가 다르게 빛을 잃어가는 모습을 바라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때로는 격렬한 슬픔이, 때로는 한없는 무력감이, 때로는 가없는 자책이, 또 때로는 그렇게 속절없이 빛을 잃어만 가는 것에 대한 원망이 동반되는 과정이다. 소설을 읽으며 많은 날들이 떠올랐고 밝게 채색된 날은 하나도 없었다. 그래서 소설 속 할아버지가 부러웠다. 이 할아버지처럼 완전히 모든 것을 잃기 전에 당신의 영혼과 인생에 대해서 내게 보다 많은 말을 들려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라고 자책했다. 그렇게 되시기 전에 내가 먼저 당신에게 말을 걸어 더 많이 알았어야 했는데 하고.


어쩌면 나는 거짓말을 했을 것이다. 내가 이 소설을 오래 읽은 것은 문장들 때문이 아니라, 그동안 너무 무신경했던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함이 읽는 걸음을 주저하게 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는 소설의 제목이 정녕 진실이라 여긴다. 삶은 정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다. 이것을 잊고 언제까지나 그 모습 그대로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랬기에 지금 커다란 후회가 되는 일을 해 버리고 말았다. 언제나 너무 늦게 깨닫는다. 뒤늦은 후회를 하기 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지금 당장 그 사랑에 걸맞는 관심을 표현하고 대화를 하라. 너무 뒤늦은 후회는 그 시간만큼 깊고도 짙은 아픔을 남긴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이 치매에 대한 것이기에 치매를 주제로 한 책들을 골라봤습니다.

1) 『보이지 않는 세계』 - 리즈 무어
가장 최근에 나온 신간이라 첫 손에 꼽았습니다. 리즈 무어는 데뷔작 『무게』로 이미 우리나라에도 소개된 바 있는 작가인데요, 이번에 나온 『보이지 않는 세계』는 어머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그것도 오로지 아버지에게 홈 스쿨링만 받으며 살았던 소녀가 아버지가 치매에 걸려 이제 바깥의 다른 세상에 적응해 나가는 이야기입니다.

2) 『낯선 이와 느린 춤을』 - 메릴 코머
위의 책이 픽션이라 마음에 안 드셨다면, 논픽션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저자가 치매 환자인 남편을 실제로 돌봤던 체험을 그대로 우려낸 책입니다. 치매가 환자만이 아니라 돌보는 사람도 얼마나 힘들게 만드는지 잘 알 수 있는 책으로, 읽으면 왜 치매를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지 깨닫게 됩니다.

3) 『꿈꾸는 사람』 - 아리요시 사와코
치매에 걸린 시아버지를 모시고 사는 노부부를 그린 소설입니다. 치매를 앓는 환자 본인의 고통과, 나아가 치매 환자를 돌보는 일이 얼마나 고된 일인가를 탁월한 심리묘사로 생생하게 전달합니다. 역시나 그 책임을 한 가정의 문제로만 남겨둬선 안 된다는 말을 들려줍니다. 일본 노인 복지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으로 평가받으나 지금은 아쉽게도 절판이네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서행신호'님은?

멀미를 일으키는 온갖 스트레스와 몸에 달라붙는 눅진한 피로를 밥심이 아니라 '책심'으로 이겨내는 직장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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