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일 오늘의 책
정대건 | 은행나무 | 2020.04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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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첫 독립 장편 영화 의 흥행 실패 이후 이렇다 할 작품을 내지 못한 서른세 살의 영화감독 조혜나. 그녀는 자신의 단편 영화에 출연한 배우이자 전 남자친구 그리고 충무로의 주목을 받는 신예 배우인 종현의 GV(관객과의 만남)에 게스트로 초청받아 GV를 진행하던 중 ‘GV 빌런’의 공격을 받는다. ‘베레모 빌런’으로 알려진 고태경은 혜나의 이전 작품의 편집에 대해 지적하고 혜나는...
독립영화 〈원찬스〉로 실패를 맞본 주인공 조혜나가 ‘GV 빌런 고태경’을 주인공을 한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고태경과 조혜나는 선배와 후배로서도, 나이에 있어서도 간격이 넓다. 이런 둘이 만나서 영화를 만든다고 하니 벌써 걱정이다. GV 빌런 고태경을 젊은 사람으로 설정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왜 나이가 많은 인물로 잡은 것인가. 이것은 아주 중요한 지점이다. 이 둘의 관계는 필름에서 디지털로, 영화를 극장에서만 봐야 했을 시대에서 OTT 시대로 변화하는 시기를 상징한다. 고태경의 시대에는 인터넷으로 영화를 보고 유튜브를 통해 돈을 버는 윤미 같은 인물은 존재하지 않았다. 극장에 대한 애정과 극장이 가진 의미가 강했다. 〈안녕, 용문객잔〉이란 영화를 보면 사라지는 영화관과 더불어 극장이 갖는 의미에 대해 고심하게 된다. 이렇듯 조혜나와 고태경은 신세대와 구시대를 상징하며 마치 지금 영화계가 받아들여야 하는 태도를 의미한다. 돈이 되거나 흥행이 될 거 같은 영화, 자극적인 영화, 유희를 강조하는 편집, 투자는 몇백억이나 부어놓고 시나리오는 쓰레기 같은 영화, 겉만 번지르르한 영화… 거기다 영화계는 신인 감독을 등단시키려고 한다지만, 말만 그렇게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수많은 문제들.
이 책을 보면서 지금 영화과에 다니고 있는 나는 뼈를 두드려 맞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특히 유튜버로 데뷔를 한 윤미를 보면서 주변 인물들이 생각나곤 했다. 어쩌면 시간이 흐를수록 영화가 가지는 개념이 사라지고 모두 통합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슬픈 현실이다. 영화를 계속하고 싶고 포기하지 않고 싶어 해도 따라주지 않는 상황과 주변 인물의 말 때문에 우울감에 빠지고 괴로워질 수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다. 나 역시 예전에 그랬으니까. 영화를 배우면서 만났던 선배들은 한 편 찍고 사라지는 사람이 많다거나 영화과 나온다고 다 영화를 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자주 하셨다. 맞는 말이다. 안정성도 없고 미래가 보장되어 있지도 않다. 그런데도 누군가 나에게 때론 악담에 가까운 정도로 뼈 때리는 말을 던져도 영화를 포기하지는 못하겠다. 어렸을 때부터 가졌던 영화에 대한 애정은 그 무엇보다 바꿀 수 없으니까. 앞으로도 그렇고 말이다.
주인공 조혜나는 소설 도입부에서 영화학원 과외를 한다. 너무 공감되는 부분이다. 현실의 영화과를 나오면 미래가 보장된 게 아니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영화 입시 과외를 하거나 영화 학원 강사로 활동한다. 고3 수험생 시절 나 역시 영화과에 진학하려고 학원도 다녀보고 과외도 받아봤다. 그때 날 가르쳐준 선생님들 역시 영화를 찍은 경력은 있지만 조혜나처럼 실패를 거듭하던 사람들은 아니었을까. 그 선생님들은 지금 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나 역시 실패한 미래를 걷지는 않을까? 하지만 고태경과 같은 인물이 있다면, 다디단 인생을 맛볼 수도 있지 않을까. 나도 인생에 있어서 고태경과 같은 사람을 꼭 한 번은 만나보고 싶다.
“최고 수준의 촬영 장비, 장편영화 제작 커리큘럼 등 한교영의 유명한 점은 많았지만, 계단형으로 경사가 진 소극장에서 이루어지는 인민재판 같은 최종 면접과 편집 크리틱 심사가 가장 악명 높았다.” (p.27)
조혜나가 나온 한교영은 한국영화아카데미를 말한다. 작년 한국영화아카데미에서 강의를 일주일 동안 들었었는데 그때 내가 강의를 들었던 곳이 바로 저 소극장이었다. 강사님의 말씀 중에 원래 우리가 저기 꼭대기에 앉아있고 지금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이 밑에서 위를 바라보며 크리틱을 받는 식이었다고 하는 게 인상 깊었다.
“완성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거야. 모든 완성된 영화는 기적이야.” (p.138)
정말 그렇다. 영화는 완성되기까지 짧게는 몇 개월 길게는 몇 년이 걸린다. 프리단계를 거쳐 준비한 걸 가지고 촬영단계에 갔지만… 역시 계획은 엎어지라고 있는 건 아닐까. 나 역시 영화를 몇 편 만들면서 한 번도 계획대로 된 적이 없었다. 뒤엎고 싶었던 적도 있었고 계획이 딜레이되는 순간은 감독으로서의 첫 번째 선택의 갈림길에 당면하는 순간이다. 그 선택을 잘해야 스텝들이 나를 믿고 따라오기에. 그 발언권이 나한테 주어져 있다는 건 엄청난 부담감을 안겨준다. 다큐멘터리는 더 그렇다. 극영화와 다큐 둘 다 만들어 보면서 느꼈던 것은 다큐멘터리는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말 감독의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후반까지 오면 한시름 놓지만, 책에서도 나와 있듯이 영화는 편집이 생명이다. 이렇게 수많은 단계를 거쳐 만들어진 영화를 극장에 틀고 관객들과 만나는 과정이 바로 고태경이 원하고 애정하던 게 아닐지. 온라인이나 OTT(Over The Top, 넷플릭스, 유튜브 등 인터넷으로 영상을 제공하는 서비스)로 GV를 할 수 있을까. 고태경은 ‘영화’라는 것이 가진 의미와 가치를 상징한다. 영화가 탄생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오는 바로 그것을.
오늘의 책을 리뷰한 'molle12'님은?
영화과에 재학 중이고 영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 관심이 많습니다. 책을 읽고, 영화를 보고 끝내는 것이 아닌 꼭 제 감상을 종이에 써내는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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