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3일 오늘의 책
테드 창 | 엘리 | 2016.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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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번의 휴고상, 4번의 네뷸러상, 4번의 로커스상. 전 세계가 기다려온 테드 창의 귀환! 최고의 SF에 수여되는 모든 상을 석권하며 전 세계 21개 언어로 번역 출간된 『당신 인생의 이야기』의 작가, 테드 창의 두 번째 작품집이다. 2002년 『당신 인생의 이야기』를 출간한 이래 17년 만에 펴내는 소설집으로, 로커스상, 휴고상, 영국과학소설협회상을 수상한 표제작인「숨」을 비롯해 총 9편의 중 ·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그중 「옴팔로스」「불안...
김초엽 작가의 SF 단편집에 이어서 또 SF 소설집을 읽게 되었다. 최근에 나온 테드 창의 작품인데 무려 17년 만에 나온 테드 창의 신작이라고 한다. SF소설을 많이 읽지 않은 나도 테드 창의 이름은 들어봤을 만큼 SF 소설계에서 유명한 작가라 호기심에 집어 들었다. 그리고 지금껏 읽어본 SF 소설 중 가장 독특한 작품들을 접할 수 있었다.
『숨(Exhalation)』은 총 9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 소설집이다. 아주 짧은 단편인 ‘거대한 침묵’이나 ‘숨’ 같은 소설도 있고, 단편이라고 하기에는 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같은 소설도 실려있다. 작품의 길이와 상관없이 공통적으로 놀라웠던 점은 과학적 정합성이었다. 모든 소설이 어떤 가정하에 충분히 과학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다루고 있다. 소설적 상상력에 기대어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임에도 적당히 넘기거나 무시하는 경우가 테드 창의 소설에는 없다. 현대의 밝혀진 과학 지식 아래서 어떤 가정, 혹은 어떤 설정을 추가했을 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그대로 서술하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 보통의 SF 소설의 경우 과학적 허점에 자꾸만 신경이 쓰여서 진도가 나가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 “숨”은 그런 부분이 전혀 없었다.(필자가 과학 분야에 종사하다 보니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과학적 근거에 별로 신경 쓰지 않는 일반인이라면 오히려 과학 관련 용어나 정보가 중간중간 흐름을 끊기게 할 수도…) 많은 SF 소설이 장르 소설의 특징을 가진 글에 SF적 요소를 넣어서 버무린다면, 이 소설집은 말 그대로 ‘SF 소설’이다. SF 자체가 중심이 되는 소설. 《스타워즈》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처럼 광선총과 최첨단 무기를 들고 치고받고 싸우는 소설이 아니라 과학적인 사고와 아이디어 그 자체가 중심이 된다. 사고 실험을 하는 느낌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소설에 일반적인 SF 영화에서 기대하는 장면은 나오지 않음을 기억하자.
흥미로웠던 소설 몇 개를 꼽자면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 정도를 꼽을 수 있겠다.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는 가상의 인터넷 세상 속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이다. 가상 반려동물 AI에 대한 인간의 여러 반응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여준다. 그중 어떤 사람은 현실의 반려동물이나 아이를 대하듯 사랑을 주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싫증 난다며 프로그램을 정지시켜버리기도 하고, 누군가는 아예 다른 용도(고문, 성적 학대, 노예 등)로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온갖 인간 군상을 보여주면서 과연 인간에 필적하는 지능과 존재 인식이 가능한 AI가 나타난다면 인간은 그들에 대해 어떻게 판단하고 또 대처해야 하는가를 독자가 스스로 고민하게 만든다.
「사실적 진실, 감정적 진실」에서는 문자 문화가 없던 부족의 사람들이 문자를 대하는 방식과 먼 미래, 인간의 모든 기억을 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는 기술의 개발이 교차하며 진행되는 것이 흥미로웠다. 글이 없는 부족이 글이라는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방식, 기억의 망각이 자연스럽던 인간들이 기억을 망각하지 않아도 되는, 자신의 모든 기억을 영상으로 저장할 수 있는 새로운 기술을 대하는 방식이 번갈아 가며 이야기가 진행되는데 새로운 기술이 과연 인간에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 것인가에 대해 늘 벌어지는 가치관의 충돌이 먼 과거에도, 먼 미래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마지막으로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은 평행 세계를 다루는 소설이다. 이제껏 많은 이야기가 평행 세계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뤄왔는데, 이 소설에서는 ‘평행 세계’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며 그것이 실제로 인간의 행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지 보여준다. 엄밀히 말하자면 평행 세계를 과학적으로 해석하였을 때 인간이 평행 세계에 대해 어떠한 태도를 가지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분석에 가깝다. 평행 세계에 있는 나의 행동은 현실 세계에 있는 나의 행동과 어떠한 관계가 있는가?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는가? 이곳의 내가 사람을 구하고, 평행 세계의 내가 사람을 죽인다면 결국 윤리적 행동의 총합은 변하지 않을 텐데 내가 사람을 구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이런 철학적이자 과학적인 질문들에 대해 나름의 답을 제시하는 소설이다. 테드 창의 답이 궁금하다면 「불안은 자유의 현기증」을 읽어보기 바란다.
SF 소설, 아니, 과학 소설에 가까운 작품이다. 이런 소설이 좀 더 많이 세상에 나온다면 과학계가 아닌 다른 곳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과학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가지게 되지 않을까? 과학은 유난히 전문가만의 고유 영역으로 사람들의 인식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과학에 대한 약간의 지식만 있더라도 현혹되지 않을 거짓 뉴스, 사기 범죄, 조작 등에 많은 대중이 넘어가곤 한다. 과학 커뮤니케이터(이 단어 자체도 최근에 생겼다.)들이 대중에게 과학에 대해 전달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아직 그 효과는 많이 부족하다. “숨”을 많은 사람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물론 이런 거창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재미가 충분한 소설이니, 일단 읽어볼 가치는 확보된 셈이다.
선한 일을 할 때마다, 당신은 다음번에도 선한 일을 할 가능성이 많은 인물로 스스로를 만들어가고 있는 겁니다. _본문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글 쓰는 공대생'님은?
생명과학 전공인 평범한 대학원생. 매일 조금씩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피아노와 농구를 좋아한다. ‘글 쓰는 공대생의 서재’ 블로그를 운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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