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9월 29일 오늘의 책
알베르토 망구엘 | 행성B | 2017.09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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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중독자들을 위하여 “세계 최고의 독서가” 알베르토 망구엘 신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모든 독자는 이런 훈계를 한번 이상은 들어 봤을 것이다. “집에서 책만 읽지 말고, 밖에 나가서 살 궁리를 좀 해라!” 책과 독서에 관한 최고의 지식과 통찰력을 가진 사람을 꼽는다면 단연 알베르토 망구엘이다. 이번에 출간된 《은유가 된 독자》를 보더라도 “언어의 파수꾼”, “책의 수호자”, “세계 최고의 독서가”라는 찬사를 멈추긴 어려워 보인다. 여행자, ...
은유가 된 독자를 읽고서, 서두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떤 무게가 나를 짓눌러 왔기 때문이다. 책에 대한 총체적인 압박감을 느꼈다고 해두자. 그동안 내가 책에 대해 고민하던 부분들이 한꺼번에 '무게'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그 무게는 나를 방랑하며 떠돌게 만들었다. 그 방랑은 나를 심히 방황하게 하였다. 은유에 대해서 이렇게 고민해 본 적은 없었다. 은유라는 기표가 의미를 만들어 내는 것에 있어서 나를 관통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기다렸다. 내안에서 이 책에 대한 심상이 만들어질때까지. 그러기 전에는 한 줄도 써지지 않았다. 아니 쳐다도 보기 싫고 피곤하게만 여겨졌다.
저자는 철학서적들의 개념을 그 자신의 글쓰기의 뼈대로 취하고 있다. 그러니 저자가 예시로 제시한 그림들과 종교철학서적들과 문학들 그 이전에 이미 현대철학 개념들이 먼저 정립되어 있어야 이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는 것이다. 다소 문체는 쉬워 쉬이 읽을 수 있으나 그 이면은 쉽지 않다. 현대 철학을 기반으로 쓰여졌기에 이 책은 논문에 가까울 정도로 어렵다. 독자 역시 철학서를 읽어야 서로 대화가 되는 것이다. 고로 내게도 이 책은 무거웠다. 『은유가 된 독자』는 메타포를 다루는 광대한 서사시다. <길가메시 서사시>가 완성된 형태처럼, 긴 시간 동안 형성된 메타포처럼, 이 책의 구성도 많은 철학서와 신학서가 드러나 있으면서도 감추어진 채로 함께 여행하고 있다.
저자는 서양철학 근간을 간추려서 『은유가 된 독자』를 집필하였다. 지금 이 책에서 접하는 메타포들은 모두 서양인문철학에 기반하고 있다.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는 메타포는 서양의 인문지식사를 관통한다. 하나의 메타포가 형성되고 사용되고 진부해지까지의 과정과 새롭게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인간사회의 총체가 압축되고 압축되어 어느 순간 드러나게 된다. 이 책은 인간사회의 현실적 모습과 내면적 모습을 압축해 놓은 것과 같았다.
이 한 권에 압축시킨 저자의 깊은 독서의 질과 양은 묵직하게 다가오고, 독자는 스스로의 독서의 질과 양을 저울질당하게 된다. 나 역시 책을 읽으며 스스로의 밑바닥을 조우했다. 무의식의 영역에 밀어 놓았던 질문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와의 대면이기도 하였다. 내 인생의 은유들은 더 많은 다채로운 표현을 요구하고 있었다. 요즘 나는 내 언어의 빈곤과 어떤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 안에 갇힌 느낌이었다. 여기에서 무엇인가를 가지고 귀환해야 한다. 그러나 쉽사리 손에 잡히지 않았다.
독서와 독자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처음과 끝을 이어내는 『은유가 된 독자』는 책을 읽는 이에게 넘어야 할 산과 같았다. 여기서 메타포가 파생된다. 책은 = 방랑이며, 방황이다. 책은 = 넘어야 할 산이다. 책은 = 길을 잃지 않고 되돌아 와야 하는 귀환이다. 이는 곧 저자가 이 책을 저술한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자 은둔자 책벌레라는 메타포가 나를 찌르며 파고 들었다. 책을 사놓고 읽지 못하는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다. 마치 책자랑만 하고 있는거 같아서 말이다. 그 압박감은 자기모멸을 불러 일으켰다.
현대의 독자들에게 책은 어떤 존재일까? 현대의 독자들도 자기만의 상아탑을 가지고 싶어한다. 책은 책을 읽을 일정한 공간과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그 공간은 피난처이기도 하고 은둔의 장소이기도 하고 휴식의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방랑하는 여행지이기도 하며 방황의 장소이기도 하다. 책을 읽으며 방황을 해보지 않는다면, 현재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 수가 없다. 그 방황을 벗어나 멀리 자기 안에서 보이는 불빛을 길잡이 삼아 귀환하는 장소도 상아탑이요, 귀환을 보고하는 글을 쓰는 곳도 상아탑이다.
현대에 있어서 상아탑은 글을 읽고 쓰는 모든 곳이다. 어디가 되었든 책에 몰입하여 책속으로 여행을 떠나고, 다시 현실로 귀환하면 이는 곧 상아탑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현대에서 상아탑의 개념에 장소적 제한은 없다. 서재든, 방이든, 거실이든, 카페든, 길거리 벤치든, 잔디밭이든. 독자는 움직이며 책을 읽는다. 현대의 독자는 특정한 곳만을 선호하지 않는다. 그만큼 제약이 사라졌다. 독자는 = 장소를 이동하며 책을 읽는다. 현대의 독자는 = 유목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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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의 리뷰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