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9일 오늘의 책
서경식. 타와다 요오꼬 | 창비 | 2010.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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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인간과 삶을 포착하는 감각적 사유의 진수 서경식의 이전 책들이 국가, 사회, 예술 등에 관한 묵직한 문제의식을 보여주었다면, 이 책은 서경식의 에쎄이스트로서의 또다른 면모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일상에서 떠오르는 단상들, 예컨대 집, 놀이, 여행, 목소리, 동물 등 살아가면서 지나치기 쉬운 메타적 소재들을 자유롭고 경쾌하게 그러나 저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유려한 감성으로 묶어 선보이고 있다. 저자의 사유를 거쳐 일상의 사건,...
왕복이란 행위가 있어야 글맛이 더 나는 것이 바로 편지가 아닌가 싶다. 게다가 단순한 안부나 용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서로의 의견과 입장을 교환하고 그러는 와중에 좀 더 직접적으로 생각의 폭을 넓혀갈 기회로써의 편지라면 분명 하나의 완벽한 글로 인정받고도 남을 것이다. <경계에서 춤추다>는 이렇듯 완벽한 하나의 완성된 글로 인정받기에 충분한 편지글을 모아놓은 책이다.
이렇게 대중에게 선보일 정도의 편지라면 그 내용도 중요하거니와 저자인 편지를 쓴 장본인들 또한 눈에 띄는 인물이어야 할 것인데 이 책의 저자들은 충분히 공적인 인물이라 할 수 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책을 출간한 서경식과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미 일본과 독일에서는 작가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타와다 요오꼬가 편지의 주인공들이다.
두 사람은 나이도 10년 차이가 나고 성별도 다르며 국적도 다르고 살아온 배경도 많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한 번의 만남을 인연으로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그들이 가진 공통점은 일본에서 태어났으되 완전한 일본인으로 살아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 사람은 재일한국인으로 또 한사람은 독일의 이민자로 살고 있는 현실이 그들을 편지로 묶어 주었던 원동력은 아니었을지 조심스레 짐작해 본다.
총 10가지 소재를 가지고 두 사람이 주고받은 편지는 사실 소재만으로 봤을 때는 그리 거창할 것이 없어 보인다. 집, 이름, 여행, 놀이, 빛, 목소리, 번역, 순교, 고향, 동물이란 소재는 어찌 보면 너무 평범해 보이기조차 하여 어떤 내용의 글이 오갈 수 있을까 싶기도 한데 막상 펼쳐본 두 사람의 편지글에는 평범한 소재와는 비교도 안 될 심오한 생각들이 오고 간다.
두서없이 정한 듯한 소재들과 그에 관한 두 사람의 자유로운 단상들은 설핏 보면 아무런 연관성이 없어 보이나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각각의 단상들 속을 관통하는 하나의 큰 흐름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경계와 언어이다. 저자 두 사람 모두 사람을 구분 짓는 가장 크고도 명확한 경계인 나라와는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그들의 글에는 경계 짓는 것에 대한 거부감이 은연중에 드러나는 것 같다.
제정신과 광기의 경계, 삶과 죽음의 경계, 인간과 동물의 경계, 빛과 어둠의 경계 등 경계의 언저리에서 오랜 시간 살아온 그들에게는 어쩌면 모든 것들의 경계가 더 뚜렷이 보였을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커다란 경계 안쪽에서 경계를 의식조차 하지 못하고 살아온 사람들과는 다르게 경계의 밖에서 늘상 경계를 의식하며 살아온 그들에게는 경계라는 의미가 남다를 수밖에 없지 않나 싶다. 그렇기에 그런 두 사람이 주고받는 글에 경계라는 화두가 자연스레 배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에게 인간의 언어를 가르치려는 시도는, 인간과 동물 사이에 ‘언어’(그것도 인간의 언어)라는 경계를 만들고 인간을 상위에 놓고 싶다는 욕망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그 행위를 무섭다고 여기는 것은 창조주가 부여한 자연계의 질서에 도전하는 불손한 행위라는 식의 의미에서가 아닙니다. [...] 제가 언어를 가르친 결과, 동물이 인간에게 우애를 표해줄 것이라는 식의 기대는, 지독한 자기중심주의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제국주의 나라의 사람들이 식민지인들을 보는 시선, 남자들이 여성을 보는 시선과 공통된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p.231~232)
또한 두 사람 모두 언어를 다루는 작가라는 직업 때문인지 몰라도, 각각의 편지들에는 언어에 대한 남다른 예민함과 관심, 애정이 보이는 듯하다. 태어날 때부터 저절로 주어지는 모어母語로부터 당연하게 느끼는 친숙함보다는 이질감을 순간순간 느끼며 살아갔을 두 사람이기에 경계인으로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언어란 좀 더 각별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짐작을 해보게 된다.
"저는 얼굴보다는 오히려 상대방의 음성이나 말할 때의 리듬, 언어 선택 등으로 그 사람의 이미지를 만드는 편인데 같은 사람이라도 다른 언어를 말하면 이미지가 싹 바뀌어버리기도 해서, 나는 정말로 이 사람을 알고 있는 것일까 싶어 불안해집니다. 독일에 살다보면 흔히 있는 일입니다만, 리뚜아니아, 프랑스, 핀란드 등 다른 나라에서 와서 줄곧 독일에 사는 친구들과는 언제나 독일어로 이야기를 나누고 상대방의 이미지를 그것으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집에 가서 한가로이 커피 같은 것을 대접받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와서 상대가 그이의 가족이라든가 하는 경우, 느닷없이 평소와는 전혀 다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하는 거예요. 더구나 모어는 항상 닫혀 있던 수로를 열고 압도적인 기세로 터져나오죠. 저는 ‘이 사람은 원래 누구였던 걸까?’ 하며 일순 당황하게 되고, 지금까지 저 자신이 뭔가를 오해하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고야 맙니다." (p.130~131)
두 사람이 주고받은 글에는 서로의 생각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하나의 사실에 대해 전혀 다른 사유를 펼치고 있기도 하다. 다양한 의견들을 주고받으며 생각의 장을 넓혀가는 두 사람의 편지를 보며 이런 편지지기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직접적인 대화에서는 이끌어 내지 못할 깊이 있는 사유를 나눌 지기가 있다는 것. 이런 지기라면 지도상의 거리와 만남의 횟수와는 상관없이 평생의 지기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설해목'님은?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삼십대 평범한 사람입니다. 책 때문에 울고 웃고 하며 지내는 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책으로 맺은 인연을 더욱 깊게 맺고 싶어 열심히 노력 중입니다. 읽고 감동하고 그걸 글로 옮기는 작업을 평생 해나가고자 합니다. 언젠가는 내가 책에서 받은 감동을 다른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자리에 있기를 소망하며 희망도 절망도 없이 매일 조금씩 그러나 꾸준히 글을 써내려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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