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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라는 세계

2021년 1월 28일 오늘의 책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 사계절 | 2020.11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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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의, 내 안의, 세상 속의 어린이를 쾌활하고 다정하고 신중하게 반기는 목소리 이 책에는 저마다 다른 빛깔을 보이는 어린이들의 고유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유연하고 기발한 생각으로 낯선 세상을 해석해 나가는 어린이, 자신을 존중하는 어른을 만났을 때 정중한 태도로 화답하는 어린이, 작은 위험은 기꺼이 감수하며 모험을 즐기는 어린이, 더없이 다정하게 호의를 표하는 어린이, 어른들의 잘못을 단호하게 지적하는 어린이……. “지금도 묶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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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사회 안에 있다

 

사회가 여성에게 “아이를 낳아라”하고 말하면 안 되는 것처럼, 우리도 “아이를 낳지 말자”라고 받아치면 안 된다. 사회가 아이를 가질 자격이 없으니 주지 않겠다고, 벌주듯이 말하면 안 된다. 이 말은 곧 사회가 자격이 있으면 상으로 아이를 줄 수도 있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런 것이 아니다. 어린이는 그런 존재가 아니다. (「어린이가 ‘있다’」 218쪽)

 

학기 중 학교로 출퇴근하면서 매번 종점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어느 날은 정류장에 보호자로 보이는 어른 한 명과 어린이 한 명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그 어린이는 뭔가 할 말이 있었는지, 아니면 그냥 가까이 오고 싶은 건지 이유는 알 수 없어도 내가 앉아있는 자리로 다가와서 날 물끄럼 쳐다보았는데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 동생과 함께 자랐고, 나이 터울이 있는 사촌 동생을 돌보면서 지냈지만 ‘남의 집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다.

 

먼저 인사를 해주어야 하나, 한다면 안녕이라고 해야 하나 안녕하세요라고 해야 하나, 뒤에 앉은 보호자분이 기분 나빠하시면 어떡하지? 이런 때에 모르는 어른이 아이에게 갑자기 말 걸면 이상하게 보이겠지, 아무리 귀여워도 처음 본 사이에 대뜸 귀엽다고 하면 예의가 아닐 거고…….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머뭇거리는 사이에 나는 그 어린이를 그냥 빤히 바라보고만 있었고, 버스가 도착하는 바람에 두 사람은 떠났다.

 

그런 뒤에야 새삼스럽게 부끄러워졌다. 그 이후 며칠 뒤 이 책을 읽으면서는 내가 얼마나 무례한 어른이었는지 다시 한번 깨닫고 얼굴을 들 수 없었다. 그 순간 나는 한 사람의 얼굴을 무안할 정도로 빤히 쳐다보는 게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이 만나면 으레 그러듯 평범하게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거나 가볍게 눈인사를 했어도 됐을 것이다. 어린이와 만나면서 어른에게 허락을 구해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하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어린이가 무슨 처음 보는 생물인 마냥 허둥거리지 않았다면 좋았을걸.

 

서로 존댓말을 쓰는 사회적인 대화를 어린이도 사양하지 않는다. 존댓말을 들은 어린이는 살짝 긴장하면서도 더욱 예의 바르게 대답하려고 노력한다. 마치 그런 대화가 몸에 밴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는 것 같다. (「저 오늘 생일이다요?」, 194쪽)

 

이 책을 사게 한 건 SNS에서 발견한 위 단락이었다. 저자인 김소영 씨는 어린이 책 편집자로, 그다음엔 어린이 독서교실 선생님으로 일해왔다. 편집자로 일하면서는 “아이를 낳아 봐야 어린이책을 잘 만든다”, “김 대리는 엄마가 아니라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결혼도 했고 독서교실도 하는데 아이가 없으니 “안됐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216쪽). 어린이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양육자뿐일까? 아이를 기르는 것은 가정 안에서만 이루어질까? 엄마가 되지 않은, 않을 사람은 어린이를 대하는 방법을 몰라도 될까?

 

우리에게 자녀가 있든 없든, 우리가 어린이와 친하든 어색하든, 세상에는 어린이가 ‘있다’. (「어린이가 ‘있다」, 220쪽)

 

당연히 그럴 리 없다. 우리는 어린이가 작다는 이유로, 또 어리다는 이유로, ‘덜 컸다’라는 이유로―심지어 어린 시절 어른이 그렇게 말하는 것을 정말 싫어했는데도― 종종 어린이를 한 사람으로 쳐주지 않으려고 한다. 그러나 어린이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고, 사회 안에 있다. 어린이는 어디 외딴섬에서 길러져 스무 살이 되면 사회로 방출되는 게 아니다. 우리 어른들은 무심코 어린이를 어른 되어가는 과도기적 존재로만 생각하고 어린이의 행동과 목소리를 가볍게 치부한다. “나 자신을 노인이 될 과도기에 있는 사람이라고 여기지 않는 것처럼, 어린이도 미래가 아니라 현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는 것이 맞다.”(202쪽)

 

다만 어린 나는 부모님께 감사해야 한다고 배웠기 때문에 사랑도 감사의 표현인 양 생각했던 것 같다. 고마워서 사랑한 게 아닌데. 엄마 아빠가 좋아서 사랑했는데. 은혜에 대한 보답이 아니라 사랑에 대한 응답이었다. (「남의 집 어른」, 179쪽)

 

김소영 작가의 시선과 목소리는 아주 섬세하고 다정한 동시에 김지은 평론가의 말처럼 “타협 없는 엄격함”을 지녀서 나는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으며 “남의 집 어른”으로서의 나의 행동을 돌아보기도 하고, 때로는 어린이였던 때의 나를 떠올리며 애틋함에 눈물짓기도 했다. 위 인용구와 같은 생각은 어른이 된 우리가 모두 어린이의 세계를 거쳐왔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다. 그런데 우리는 왜 어른이 되어버리면 어린이를 나와 동 떨어뜨려 놓고 살게 되는 걸까?

 

「한 명은 작아도 한 명」에서는 김소영 작가가 어린이의 시야에 달력이 잘 들어오는지 확인하고자 쪼그리고 앉는 일화가 나온다. 그런데 “나와 어린이는 키만 다른 게 아니라 공간에 대한 인식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주변 환경이 어색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몸이 크고 생각이 굳어버린 우리는 어린이와 같은 시선에서 생각할 수 없으므로 어린이의 세계를 알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그런 노력이 하고 싶어지고, 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 명의 사람으로서 “어린이의 품위”를 지켜줄 수 있는 품위 있는 어른, 어린이를 기다릴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다. 그런 어른들이 세상의 대다수를 이루어 어린이와 어른이 현재의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어렸을 때 기다려 주는 어른을 많이 만나지 못해서 그런지도 모른다. 지금 어린이를 기다려 주면, 어린이들은 나중에 다른 어른이 될 것이다. 세상의 어떤 부분은 시간의 흐름만으로 변화하지 않는다. 나는 어린이에게 느긋한 어른이 되는 것이 넓게 보아 세상을 좋게 변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걸릴 뿐이에요」, 20쪽)

 

 

오늘의 책을 리뷰한 '숨니'님은?
글쓰기가 일이 아닌 습관이 되고 싶은 사람. 책을 통해 일상의 영역을 넓히고, 공부하는 학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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