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27일 오늘의 책
신도현, 윤나루 | 행성B | 2018.11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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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고전과 사상가들에게서 전수받은 ‘사람을 끌어당기는’ 말에 관해 핸드폰에 ‘말’이 밀려난 지 오래다. 마주 앉아 있어도 대면하는 시간보다 각자의 폰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은 게 현실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개발되는 등 아무리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인간이 말을 수단으로 소통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에게 말은 산소와 같으며, 이것이 인문학에서 말에 관한 사유를 놓지 못하는 이유다. 말이 ‘기술’이 아닌 내공으...
요즘 ‘TMI’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Too Much Information’이라는 말인데, 핵심이 없거나 불필요한 정보를 너무 과잉 제공하는 경우를 비꼬는 단어다. 비슷한 뜻으로 투머치토커라는 단어도 있다. 이런 현상을 옳고 그름으로 가치 판단할 마음은 없다. 그저 통신 기술과 매체의 발달로 변화하는 생활양식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라고 여길 뿐. 확실히 스토리와 인과관계를 중시하던 과거와는 달리 근래의 의사소통의 유형은 요점과 결과만을 제시하는 방향으로 굉장히 간결해졌다. 또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과정보다는 결과에 무게를 두고 있는 감도 있고. 그러다 보니 내용보다는 소통 자체가 더욱 강조되기 시작했고 (보통 주고받는 빈도로 의사소통의 밀도나 콘텐츠의 전달력이 올라가다 보니) 그렇게 ‘속도’가 의사소통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은 느낌이랄까. 카톡에 1이 사라졌는데도 답이 없으면 초조해지고 무시당한 느낌이 들어 화가 나는 것도 아마 그런 예에 속한다고 볼 수 있겠다.
사실 이런 흐름에 큰 부담을 느낀다. 나는 내 생각과 감정 표현을 즐기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글쓰기와 말하기를 좋아한다. 문제는 좋아만 할 뿐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특히 요즘처럼 간결함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상황에는, 시대와 동떨어진 구닥다리 글쓰기와 말하기를 구사한다는 생각이 든다. 자신감도 많이 떨어진 느낌이다.
어떤 주제로 블로그 포스팅을 한다고 해보자. 글을 쓰다 보면 애초에 생각 정리를 해놓은 주요문장에 너무 많은 살이 붙기 마련이다. 문제는 이걸 다시 줄이면서 유기적인 관계를 만들어야 하는데, 퇴고를 할수록 생각이 확장되면서 문장의 무질서한 나열이 남는다. 어떤 생각을 전달하려면 주요 생각을 위해 움츠러드는 주장도 있어야 하는데, 작은 양보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중구난방의 장황한 글만 남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퇴고를 포기하고 비공개 상태로 끝내 올리지 못한 리뷰와 포스팅만 해도 한 트럭이 넘는 것 같다. 정리도 힘들고, 마무리까지 끌어내지 못하는 능력 부족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글은 그래도 시간을 두고 고쳐 쓸 수 있다는 점에서 양반인 편이다. 대화에서의 말하기는 너무 심각한 수준!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는 대화의 특성을 머릿속이 따라가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대화하면서 바뀌고 확장하는 머리의 속도를 말로 변환해내는 능력과 속도가 부족한 것 같다. 그러다 보니 의식의 흐름으로 대화가 진행되고, 그렇게 주저리주저리 말이 길어지고 마는 것이다. 혹여나 대화 상대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편한 대상이거나, 상황이 자제력이 떨어지는 술자리라면 최악이다. 대화 도중에 ‘왜 내가 이 이야기를 하고 있지’하고 자각을 할 정도로.
내가 겪고 있는 글쓰기와 말하기의 문제점을 고민해보았다. 근본적인 문제는 단 하나, ‘내공 부족’이었다. 故 정주영 회장의 일화였던가? 사업계획서나 각종 보고서를 A4용지 한 장으로 요약하라고 지시했다는 기업 총수의 일화를 들은 적이 있다. 비슷한 예로 대학에서 방대한 내용을 짧게 요약한 레포트를 제출하라고 했다는 교수님의 이야기도 여러 차례 들었다. 두 사례 모두 공통으로 분량을 줄이는 데 필요한 능력을 이야기한다. 긴 내용을 짧게 요약한다는 것은, 내용의 경중을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반대로 요약이 안 된다는 뜻은 내용을 모두 이해하지 못한다는 뜻이고, 그것은 곧 서류를 작성한 사람이 본인의 생각(표현)에 그만큼 자신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분량의 측면만이 아니라 속도도 그렇다. 유명 작가들 중에는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분량의 글을 쓰는 습관이 있는 이들이 많다. 기계적인 일이 가능하려면 그 분야를 잘 파악하고 있고, 평소에 구조가 정리되어있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즉, 글을 쓰거나 말을 하는 시간 외에는 본인의 내공을 더욱 축적하고 정리하는 일에 늘 정진한다는 의미기도 하다. 결국 나는 아는 것도 부족하고, 그것을 내 것으로 만들 만큼의 시간을 투자하지도 않았다는 것.
이런 고민을 하던 중에 『말의 내공』이라는 책을 접했다. 시중에 넘쳐나는 프레젠테이션법이나 화술을 가르쳐주는 실용서들과는 다르게, 제목만으로도 내가 고민하는 이야기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책의 두께가 얇고 가벼운 게 참 인상적이었다. 어차피 내공을 쌓는 일이 긴 글을 읽는다고 해서 바로 만들어질 수는 없을 테니 어떤 태도와 양식에 대한 지도 방향을 전달하기는 간결하고 임팩트 있는 게 요즘 추세와도 맞겠다 싶었다. 역시나 목차를 살펴보니 수양 / 관점 / 지성 / 창의성 등을 통해 자신의 그릇 크기와 모양을 늘리는 법을 설명하고, 그 바탕에서 더욱 효과적인 말하기를 할 수 있도록 경청 / 질문 / 화법 / 자유 등이 필요하다고 했다. 게다가 각 장마다 동서양의 고전과 명언을 인용해서 이해도 쉬울 것 같았다.
종종 촌철살인의 힘 있는 문장을 구사하는 인물 혹은 한마디 한마디에 깊이가 느껴져 무언가 전혀 다른 울림을 일으키게 하는 이들을 보면서, 말과 문장이 단순히 의미 그 이상의 무언가를 담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말 이면의 표현되지 않은 함축된 의미들이 그들의 인생과 사상을 통해 이미 증명되기 때문이다. 즉, 말이란 단순히 기술적인 표현법의 영역에 그치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말의 내공』 역시 이 부분을 지적하며, 스스로의 말 그릇을 키워야 한다는 내용으로 책의 시작을 알린다. 구체적으로 말의 그릇이라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자존감을 바로 세울 것을 권하고, 나아가 자신의 도량을 넓히고 신뢰할 만한 사람으로 거듭나기를 촉구한다.
“꽃피는 사과나무에 대한 감동과, 엉터리 화가에 대한 분노가 나의 가슴속에서 다툰다. 그러나 바로 두 번째 것이 나로 하여금 시를 쓰게 한다.”(『서정시를 쓰기 힘든 시대』, 본문 중)
자존감을 세우는 것이 마치 토지의 정지작업과 같은 역할을 한다면, 이어지는 내용은 기둥과 집의 형태에 해당하는 일들이다. 저자는 자신만의 기준점이라 할 수 있는 관점을 만들어 나갈 것을 이야기함과 동시에, 지성을 통해 그 깊이를 만들어 내야 함을 이야기한다. 특히 개인적으로 ‘책과 경험을 통해 관계를 공부하고, 상대의 말을 경청하면서 상대를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지성을 넓히는 길’이라는 『바가바드기타』의 글귀가 인상 깊었다. 또 히틀러와 나치를 용인했던 당대의 독일을 비판했던 위의 시처럼, 불편하고 어려운 것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을 확장해나가는 훌륭한 원동력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하기도 한다. 창의성에 관해 무에서 유를 창조해낼 것이 아니라 접목과 개선, 변형 등을 적극적으로 이용하길 권하기도 한다.
“내부의 감정을 풀어주는 것이 명상과 알아차림이라면,그런 감정을 바깥으로 표현하는 것이 중용적 말하기다. 중용적 말하기란, 내뱉기 혹은 인내로 일관하는 말 습관을 버리고, 때와 상황에 맞는 적절한 언어로 자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다.” (142쪽)
앞 부분이 말의 근간인 화자 개선에 집중되어 있다면, 뒷 부분은 말을 더욱 돋보이고 유용하게 만드는 기술적인 면에 치중하고 있다. 대부분이 나에게 필요한 부분이었지만 특히 침묵과 경청에 대한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나는 공감의 가치를 너무 크게 산정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대방의 입장에 너무나도 몰입하는 나머지, 감정의 여과 없이 이야기하는 건 아닌지 반성해보게 된다. 여기에 대화 중 정적이 흐르거나 어색한 분위기가 되는 것을 참지 못하는 성향도 중구난방의 말하기를 만드는 게 크게 일조했을 것이다. 글 또한 너무 많은 것을 전달하고 싶은 욕심을 조절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절제하는 동안 생각을 가다듬는 효과를 얻을 수도 있을 테니, 내게 필요한 건 ‘선을 지키는 말하기와 글쓰기’였던 셈이다.
촌철살인의 힘이 느껴지는 한 마디를 꿈꾸며
때론 누군가의 이야기 혹은 어떤 한 문장이 나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문장으로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런 순간들이 상당히 많았지만, 지금 당장 떠오르는 몇몇 순간들만 이야기해볼까 한다. 결혼을 앞두고 몽골로 여행을 떠났던 2014년의 여름. 다른 짐이 많아서, 가져간 책은 김연수 작가의 『청춘의 문장들』과 여행 관련 가이드북이 전부. 그마저도 거의 볼 일이 없다가 마침내 쳉헤르 온천 지역에 일찍 도착한 하루, 노천온천을 마치고 노곤함과 함께 게르 침대에 누워 드디어 책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지금 『청춘의 문장들』에 대해 기억나는 부분은 딱 하나다. 그만큼 인상 깊은 한 마디였고, 또 그 후의 나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친 문장이기도 하다. 김윤아 씨의 ‘봄날은 간다’와 봄날의 아름다움과 쓸쓸함을 이야기하며 말하는 문장이다.
“그 모든 것은 곧 사라질 텐데,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청춘의 문장들』 중)
지금도 그렇지만 과거에는 얽매이는 경향이 많은 사람이었다.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과거에 아쉬움과 미련이 많았다. 현재에 충실해야 하는 에너지를 과거를 미화하는 데 쓰다 보니, 어느 시점에서는 그때의 현재로 다시 아쉬움만 남기는 시간이 되고 말았다. 그러던 중에 이 문장을 보게 됐다. 흩날리는 벚꽃에 대한 아름다움과 그만큼의 쓸쓸함. 나는 그 문장에서 말하는 것이 ‘나의 현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로 나는 매 순간의 나를 사랑하기로 마음먹었다.
태도 외에도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 것도 있었다. 이를테면 아마존닷컴의 창업자인 제프 베조스의 ‘후회 최소화의 법칙’이다. 유튜브와 서적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게 된 이후로, 이 원칙은 나의 삶과 관련된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중요한 기준이 되고 있다. 늘 욕심이 많은 나에게 아쉬움은 어쩔 수 뒤따르는 부산물이었고, 그게 정도가 심해지면서 행동을 멈추는 두려움으로 자리 잡혔던 시기가 있었다. 그때 제프 베조스의 이야기를 듣고, 후회를 최소화하는 기준을 통해 두려움을 극복하고 도전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계획을 세우는 것도 미래에서부터 실현 가능한 현실의 방향으로 내려오면서 짜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다.
김연수 작가의 글도, 제프 베조스의 말도 그들의 의도한 것 이상으로 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수용자로서 나의 상황에 맞춰서 그들의 말과 글이 시기적절하게 다가와 준 덕분이지만, 일단 그들의 표현들이 형식을 넘어선 힘과 진정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 그리고 그들의 말과 글의 원천인 ‘말의 내공’을 나 역시 꾸준하게 연마해볼 작정이다. 언젠가 나도 내가 정말로 사랑하는 이에게 그런 진정성 있고 멋진 말 한마디 건넬 수 있는 때를 꿈꾸며 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veatles'님은?
머리는 이성형, 지문은 감성형이라 믿는 [일상더하기 Be+] 블로그 주인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