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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메일

2015년 11월 27일 오늘의 책

아버지의 이메일

홍재희 | 바다 | 2015.05

분류 : 시/에세이/기행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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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한 개인에 대한 앎. 그 개인의 삶에 대한 이해. 앎과 이해가 선행되어야만 용서라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고 용서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기억해야만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를 통해 더불어 이 책을 통해 망각 속에 파묻었던 아버지를 기억 속으로 불러내 그를 더도 말고 한 인간으로서 이해하려는 길을 떠났다. 그 길목에서 내 기억 속의 아버지를 만났고 과거의 힘들었던 시기를 견디지 못해 아버지를 미워하고 회피했던 나를 또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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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 좀 탓하세요


역사와 개인, 사회와 개인은 어떤 관계일까? 흔히들 역사를 거대한 흐름에 비유한다. 그렇다면 물줄기를 이루는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는 어떤 존재일까?

올해 5월 나온 책 『아버지의 이메일』은 지난해 4월 개봉한 다큐멘터리를 글로 엮은 책이다. 다큐멘터리에서는 아버지가 이메일에 쓴 인생 이야기를 거슬러 올라가며 아버지의 삶, 감독과 가족의 삶, 그리고 사회의 모습을 돌아본다. 책은 다큐멘터리와 비슷한 구조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 유언처럼 남긴 메일 43통을 오타까지 그대로 실으면서, 다큐멘터리에서는 하지 않은 이야기와 딸이 본 아버지의 세상을 더 깊이 있게 써 내려갔다.

‘평생 가난했고, 항상 떠돌았고, 자주 취했던 내 아버지 홍성섭 이야기’

그렇다. 책 속 아버지는 평생 가난했고, 늘 떠났다가 돌아왔으며, 술을 벗 삼아 살았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학교 공부도 마치지 못 하고 북에서 내려와, 돈을 모아서 집을 마련하고 미국이나 호주에 이민을 가려고 했다. 하지만 일은 뜻대로 돌아가지 않았고 그럴 때마다 술에 기대어 가족에게 분풀이를 했다. 전쟁 때문에 가족도 집도 잃은 아버지. 1968년, 돈을 벌겠다고 다른 전쟁에 참가한다. 어느 세대나 그렇지만, 저자의 아버지 세대만큼 모순으로 가득 찬 세대가 또 있을까? 전쟁으로 그렇게 피해를 보고도 다시 다른 전쟁을 하러 떠나던 세대. 가난을 벗어나려는 의지가 집착으로, 물질 만능주의로 변한 시대. 저자의 아버지 이야기를 읽으면서 자꾸 가슴이 저리고 울컥하는 건 어쩌면 그 세대가 가진 모순만큼이나 그 세대를 바라보는 시선에 담긴 모순이, 지금도 풀지 못한 사회 모순이 답답해서인지도 모른다.

가난이든 전쟁이든 불안정한 사회를 산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개인사 하나하나가 모두 영화고 드라마다. 아니, 어떤 비극도 그들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 비극이야 한 번 보고 자기감정을 쏟아내어 정화하면 그뿐이지만, 현실 속 비극은 그렇게 쉽게 끝나지 않는다. 그들이 겪은 고통과 슬픔은 평생 그들을 따라다니고, 아이들에게도 상처를 남기니 이보다 더한 비극이 또 있으랴. 감독의 아버지는 역사 안에서 겪은 자기 불행으로 자식에게도 상처를 남겼고, 자식들은 그 상처를 또 평생 안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고 아버지 탓만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버지가 거쳐온 역사가 과연 제정신으로 버텨낼 수 있는 역사였나.

아버지의 이메일은 한국의 현대사를 그대로 담았다. 술로 하루하루 지내던 아버지가 갑자기 세상 밖으로 나가 세계 곳곳에서 날아온 사람들을 만나며 행복한 때를 보낸 88올림픽은 한국의 현대사에도 재기를 알리는 가슴 벅찬 축제였다. 하지만 올림픽 특수는 ‘있는 사람들’만 누렸고, 아버지처럼 힘 없는 이들은 다시 골방으로, 뒷골목으로 사라졌다. 아버지가 겪은 고통과 상처는 한국의 사회 문제와 겹친다. 식민 제국주의 시대, 전쟁과 남북 분단, 베트남전과 중동 파견, 독재 정권, 레드 콤플렉스와 연좌제, 비정규직, 뉴타운 문제까지, 어느 것 하나 비껴가지 않는다. 이 문제들이 한국사에 남긴 상처만큼 아버지와 가족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겼다. 아니, 아프다고 호소해도 아무도 돌봐주지 않으니 이들이 안은 상처는 더 깊고 오래간다. 그러나 아버지도 어머니도 당신들의 운 없음만 탓하였지, 역사의 굴레 안에서, 부정하고 부당한 사회에 맞서 저항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당신들은 스스로 너무나 작고 미천한 존재라고 생각하셨을까. 아버지의 이메일을 보는 내내 궁금했다. 왜 그들은 잘 되면 나라 덕으로 돌리고, 안 되면 내 탓, 내 아내 탓, 내 부모 탓을 할까? 베트남에서, 중동에서, 독일에서, 그리고 다시 한국 땅에서, 말 그대로 피땀 흘리며 일한 이들은 당신들인데, ‘경제 성장 신화’는 늘 나라 덕이다. 그렇게 일하고도 제대로 된 보상은 받았나? 베트남과 중동에서 돌아와 제대로 된 일자리 하나 찾기 힘들었어도, 전쟁 때 사라진 처남들 때문에 당신 꿈을 포기해야 했어도, 이 나라가 얼마나 부당한지 깨닫지 못했다. 그저 내가 못나고 운이 없어서, 혹은 ‘그놈의 빨갱이’ 때문에 그렇다면서 내 주위 사람들만 탓할 뿐이다. 그러나 과연 지금이라고 다를까. 실업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잘못된 사회 구조에서 비롯됐는데, 못난 내 탓, 남들보다 노력하지 않는 내 자식 탓, 물려줄 게 없는 부모 탓만 하지 않나. 그런 점에서 지금은 저자의 아버지 세대와 한치도 다르지 않다.

살아 계셨다면 80이 넘었을 아버지. 40대 중반인 딸. 술에 기대고 폭력을 행사하던 아버지의 모습 뒤에 숨겨진 상처를 늦게서야 발견하고는 안타까워하고 후회하면서 아버지를 이해해보지만, 가해자 편에 서서 엉뚱한 희생양을 만드는 아버지 세대가 답답하기만 하다. 현대사가 남긴 상처는 딸에게, 딸 세대에게 그대로 대물림되었다. 부모 세대에게 느끼는 연민과 분노 사이를 오가면서 부모에게 저항하듯이 사회에 부딪혀보지만, 이는 또 다른 아픔을 남긴다. 그토록 미워하던 아버지의 삶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아버지와 늦게나마 화해하는 일은 자식 세대가 겪는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게 남기는 충고이기도 하다. 다큐멘터리를 상영한 뒤 관객과 대화를 하다 보면 젊은 관객들이 “왜 외국 나가는 게 힘들었나요?”, “보도연맹이 뭐예요?”라고 물어서 관객과의 대화가 역사 수업이 되기도 했단다. 그래서인지 책에서는 아버지가 거쳐 간 역사 사건을 더 자세하게 설명한다. 자유롭게 외국을 드나드는 요즘 젊은 세대에게 그런 ‘자유’가 늘 당연하지는 않았다고 강조한다. 사회와 개인은 가깝게 맞닿아 있다고 말한다. 독재가 만드는 사회와 국가는 상상하기 힘들 만큼 개인을 망가트릴 수 있다고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외국에 가고 싶을 때 가는 것도 자유지만, 사회에서 만들어 놓은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사는 것, 정의가 사라진 사회에 정의를 요구하고 저항하는 것이 참 자유라고 말하려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이 저자의 아버지 세대와 저자의 다음 세대를 잇는 다리와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시대, 이 사회가 역사의 한 부분이며, 모든 것이 역사라는 큰 흐름을 이루는 물방울임을 자주 잊고 산다. 딸에게 이메일을 쓴 아버지는 깨닫지 못했겠지만, 그 메일은 개인의 삶이 역사 흐름과 얼마나 밀접한지 깨우쳐 준다. 거대한 역사 흐름 속에서 개인은 그저 작은 존재 같지만, 역사라는 흐름 속에서 함께 물줄기를 만들어 내기도 하고, 흐름에 쓸려 가기도 하는 작은 물방울은 늘 큰 흐름과 함께할 수밖에 없다. 물줄기가 흐르는 방향을 결정하는 것도 결국은 작은 물방울들임을 아버지 세대는 후회와 한탄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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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1 ]

  • 김 랑[金 朗]

    깨달음을 주는 문장들, 진심이 담긴 탄탄한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2015.11.27 12:13:45 ] 신고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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