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5일 오늘의 책
에바일루즈 | 돌베개 | 2010.03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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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에바 일루즈는 이 책을 통해 다시 한 번 자신이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풍부한 지적 전통의 적자임을 증명했다. 공적 문화와 사적 관행이 연결되는 바로 그 중요한 지점에 천착하면서 일루즈는 감정자본, 감정능력이라는 개념을 놀랍도록 명쾌하게 규정하고 있다. 이 우아하고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한 권의 책은 부르디외, 푸코, 기든스의 저작들 옆에 자리 잡고 그것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이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는 책이다.” ―래리 그로스 “에바 일...
이 책의 내용은 부제를 읽으면 명확해진다. '자본은 감정을 어떻게 활용하는가.' 자본주의가 감정을 어떤 방식으로 이용하는지에 관한 책이다. 몇 가지 이유로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선 번역이 놀랍도록 어색하다. 불행히도 이 책은 자연스러운 번역과는 거리가 멀다. 번역자의 국어 실력 덕분에 독자가 이 책을 더 어렵게 느끼게 되었다. 또한 저자는 사회학, 철학, 정신분석학 등의 이론에 대해 자세한 설명 없이 이 책을 쓰고 있다. '이 정도의 이론은 모두 알지?'라는 식이다. 미국 자본주의의 역사를 다 알진 못한다. 이 책은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교양서보다 학술서에 가깝다. 하지만 저자는 꽤 명확한 언어로 말한다. 첫 장만 견디면 뒤는 이해하기 쉽다. 물론 내용이 뒤로 갈수록 쉬워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감정을 "지극히 주관적이고 눈에 보이지 않고 개인적인 경험"이 아니라 행동의 한 측면, 곧 "에너지가 실린 측면"으로 정의한다. 감정은 "극도로 압축된 문화 의미들과 사회관계들"이며 "심리단위"이기도 하지만 "문화 단위이자 사회 단위"라고 이야기한다.
첫 장 ‘호모 센티멘탈리스의 탄생’에서는 미국의 심리학자들이 감정을 경제활동의 영역과 결합하여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증대시킬 수 있었던 과정에 대해 이야기한다. 엘튼 마요의 이 실험은 치료면담과 거의 흡사한 면담법이 실제로 노동자들의 생산성을 증대시켰음을 증명했다. 이 과정을 통해 노동자들은 생산성이 자신의 삶과 관련된다는 걸 발견했다. 이후 심리학 치료는 자연스럽게 기업에 수용되었다. 기업은 소통을 통한 리더십을 강조한다. 그 안에는 인정이 작동한다. 이러한 방식은 단지 기업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들을 인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필요를 포함하고 수용하고 있다.
노동자의 삶은 노동현장에서만 이루어지지 않고 실제로는 가정생활에서 시작된다. 기업에 적합한 치료는 가정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다. 긍정적 감정이 형성되는 환경과 소통하고 인정받는 감정은 기업의 성과를 좌지우지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 심리학은 대중문화로까지 퍼졌다. 자아란, 자아실현을 추구하는 존재로 바라보았던 심리학자들은 나아가 자아실현과 건강이 같은 것이라고 바라보게 되었다. 자아를 실현하지 못한 사람은 보살핌과 치료가 필요한 사람이 되었다. 치료가 자기계발과 만나며 결국 고통을 낳게 되었다. "19세기 자서전의 유형이 가난뱅이가 부자가 되었다는 즐거리라면, 오늘날의 자서전은 부와 명예를 누리는 중에도 닥쳐올 수 있는 정신적 번민을 다룬다." 오프라 윈프리의 자서전이 대표적이다. 아무리 유명하게 살아도 자신 안의 번민은 있으며 그 안의 번민과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음을 이야기한다. 결국, "미완의 자아가 등장하는 전기, 고통이 정체성의 구성요소가 되는 전기"가 등장한다.
자본주의는 감정 또한 자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우리는 자본주의 체제에 살아가고 있지만, 자본주의 내부에서 비판하는 일을 멈출 수는 없다는 것이 저자의 입장이다. "이데올로기란 우리로 하여금 모순들 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가게 해 주는 어떤 것인데,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더 이상 이데올로기의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는 듯하기" 때문에 바로 그 지점에서 비판 혹은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연구를 시작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의 사유에 감탄했다. 개인적인 감정마저도 활용되는 시대에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자본주의 사회에서 태어나 자본주의에서만 살아본 나는 그 대안을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 여기에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모순에서 벗어나고자 노력하는 삶을 포기할 수 없다. 저자의 말처럼 이데올로기가 이데올로기의 역할을 하지 못하게 될 때 그 틈 사이에서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연보라빛 우주'님은?
블로그 [연보라빛 우주로 가는 길]의 주인장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