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8월 24일 오늘의 책
고규홍 | 휴머니스트 | 2016.05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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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지금까지 나무는 장애물이었던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나무 앞에만 서면 가슴 설레는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 함께 나무를 느끼고 나무의 참모습을 찾는 아름다운 동행이 시작된다 나무를 보지 않고도 나무를 온전히 느낄 수 있을까? 그동안 나무 이야기, 그리고 나무와 더불어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려준 나무 인문학자 고규홍이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예지와 함께 나무 바라보기를 시도한다. 지금까지 나무는 ‘장애물’이었다고 말하는 김예지와...
어린 시절 신앙학교를 다닐 때 둘씩 짝을 지어서 한 명은 눈을 가리고 다른 한 명은 박수 소리로 앞이 안 보이는 이를 인도하여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본 적이 있다. 당시의 경험은 시각적인 자극이 완전히 차단되고 오롯이 청각적 자극, 게다가 말소리도 아닌 손뼉 소리에 집중하여 한 걸음 한 걸음 옮기는 것이었는데 상당히 새롭고 신기했다. 나중에 눈을 뜨고 뒤돌아 걸어온 길을 보고 피식 웃음이 났다. 눈을 감고 걸을 때 느꼈던 것보다 훨씬 단조로운 길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각적인 자극이 차단되었을 때 시각 외의 다른 감각들이 다양하고 더 예민하게 활용됐다. 냄새를 더 잘 맡았던 것 같고, 돌부리나 나무뿌리에 걸리지 않기 위해 발끝 하나하나의 느낌에 집중하게 되어 더 감각적으로 움직일 수 있었다. 좀 느리긴 했지만 비교적 잘 걸어갈 수 있었다. ‘박수소리 한 번은 한걸음씩, 두 번은 위험한 곳’ 이런 신호가 미리 약속되어 있었는데 그 소리에 집중하니 더불어 내 발걸음 닿는 곳의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소리가 더 잘 들렸다. 그 프로그램은 물론 ‘타인과 더불어, 타인에게 의지해보기’가 초점이었지만 내게는 ‘시각적인 자극이 차단되었을 때 그 외의 감각들이 어떤 역할을 할까’에 대한 색다른 경험이었다. 선천적으로 하나의 감각이 차단된 사람은 사물을 대하는 자세가 일반적인 사람들과 다르지 않을까?
두 살 때 시력을 잃었던 김예지 피아니스트는 서른여섯에 처음으로 나무를 보았다. 두 살이면 사물에 대한 시각적 기억은 거의 없으리라. 고규홍 교수는 나무가 그저 장애물의 하나였을 김예지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했다. 물론 눈이 보이지 않는 이에게 나무를 소개하는 안내자의 역할은 상당히 막막하였을 것이다.
백송, 능소화, 자귀, 단풍나무와 향나무. 내게는 그동안 시각적으로 익숙하게 받아들여온 것들을 김예지 피아니스트의 말을 따라가다보니, ‘눈으로 봤기 때문에 미처 보지 못한 것들이 있었구나’라고 깨닫게 됐다. 침엽수와 활엽수가 같다는 부분에서 깜짝 놀랐다. 책보다 앞서 제작된 영상과, 음악을 시각적인 나무로 구체화했다는 김예지의 세종문화회관 음악회가 궁금해졌다. 책 사이사이 나오는 나무사진과 짧은 설명들도 참 유용하다. 나는 자귀나무의 향기를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늘 맡은 뒤에 다시 잊어버리기를 반복했다. 이제는 확실히 기억할 수 있을 것 같다. 고규홍 교수와 김예지 피아니스트 덕분이다. 올해 자귀나무 꽃들이 벌써 피었더라. 향기를 가득 풍기며 말이다.
절대 감각을 내려놓으니 다른 감각들 모두가 평등하게 일어나 아우성친다. 시각장애인 김예지는 다른 감각을 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 내게는 절대적인 시각이 오히려 후각, 청각, 촉각, 미각에 장애를 초래했을 수 있다.
아, 정말! 나무를 탐색하는 동안 저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무는 자기 나름대로의 생존 이유가 있을 것이다. … 사람들은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실들에 따라서 해석하겠지요. 하지만 나무의 삶은 나무만이 아는 거죠. 우리는 관찰자에 불과하지 않은가요? …중략… 나무에서 찾은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피아노 연주가 한두 마디로 답이 딱 떨어지지 않아요. 내가 아무리 이야기하고 싶어도 듣는 사람이 꼭 그렇게 들어야 하는 건 아니거든요. 삶의 다양성이 있다는 거죠. 그걸 보여주고 싶어요. 나도 다른 사람들, 심지어 피아니스트들과도 다르잖아요. 지금 우리의 삶이 늘 정답은 아니다. 삶에는 다양함이 반드시 널려 있다. 세상에 그런 다양한 삶이 존대한다는 걸 나는 피아노로 이야기하고 싶어요.
수완 좋은 간호사의 이야기도 듣지 않던 아버지는 내 이야기를 곧잘 알아듣는다. 청각을 상실했지만, 나를 바라보는 눈길은 언제나 간절했고, 그 간절함은 잃었던 청각을 되돌아오게 했다. 평소에는 귀에 대고 큰 소리로 이야기해도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지만, 이럴 때에는 누워 있는 아버지께 선 채로 찬찬히 이야기하는 정도로도 잘 알아들으신다. 간절함 혹은 성의가 문제였다. …중략… 감가의 활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상을 감지하려는 관심과 성의이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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