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23일 오늘의 책
안드리 스나이르 마그나손 | 북하우스 | 2020.12
분류 : 자연과학/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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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숫자와 단어 우리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이야기다 말하자면 기후변화에 대해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이 주제 너머로, 옆으로, 아래로, 미래로 가는 것, 개인적이면서도 전 지구적이고 과학적인 태도로 시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것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이다. ‘이야기(내러티브)’라는 그릇을 선택하게 된 집필 전 일화가 있다. 언젠가 세계적인 기후변화 전문가가 저자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에 휩쓸려 사라져 버렸다. 훗날 2020년을 추억한다면 코로나19 팬데믹과 재앙 수준의 재해 이외에는 생각나는 것이 없을 것 같다. 경향신문 김향미 기자의 “어쩌면 코로나보다 더 무서울지 모릅니다. 기후변화 팬데믹”(2020.12.31)이라는 기사에 2020년 지구 곳곳에서 발생한 대형 자연재해가 잘 요약되어 있다. 1월의 인도네시아 홍수, 2월 호주의 대형 산불로 시작해서 11월 중남미를 강타한 허리케인까지. 2010년은 자연 앞에서 인류의 무능과 무기력함이 드러난 한 해였다. 코로나 팬데믹 공황 상태에서 대책 없이 맞는 자연 재앙은 모든 사람에게 공포심을 불러오기에 충분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은 어제오늘만의 문제는 아니다.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된 재앙이다. 그렇지만 오랜 관찰과 축적된 데이터가 말하는 바로 그 재난이 코앞에서 일어나고 있음에도 우리는 곧 그 경고를 잊고 살아간다. 아니, 잊는 것이 아니라 외면한다고 해야 맞다. ‘기후변화’, ‘해수 산성화’, ‘해수면 상승’, ‘생태계 교란’, ‘동식물 멸종’, ‘홍수와 가뭄’, ‘바이러스 출현’이란 말들은 우리에게 당장 일어나 파국을 막는 어떤 행동을 하라고 재촉하고 있지만, 백색소음처럼 귓바퀴 근처만 맴돌다 흩어져 버리고 만다. 왜 그럴까? 코로나 팬데믹보다 기후변화 팬데믹이 훨씬 중요하고 급박하고 위험함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이유는 뭘까? ‘기후변화’에 대한 모든 의견과 경고가 단순한 잡음으로 사라지는 이유를 알아보자. 이유야 많겠지만 몇 가지만 생각해본다.
첫째,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적인 변화는 천천히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의 인지력에 포착되기 힘들다. 천천히 데워지고 있는 냄비 속 개구리처럼 소리 없이 다가오는 불행의 뜨거움을 느끼지 못한다. 개구리는 냄비 속 온도 상승을 감지했더라도 생명이 위태로울 정도는 아니라 생각하고 무시한다. 그러다가 위험을 인식할 때쯤 되면 상황은 이미 돌이킬 수 없다. 개구리는 자신이 삶아지고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죽어간다. 우리 생명을 위협하는 그 재앙이 본격화되는 시점이 만약 100년 후이거나 200년 후라면, 그 시간은 우리의 즉각적인 방어 행동을 유발하기엔 너무 먼 미래다. 인간은 생각보다 근시안적인 존재다.
두 번째 이유는 정치 경제적 기득권 세력이 기후변화의 위험을 드러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정치인은 자신의 임기 내에 이런 일들을 드러나서 골치 아픈 상황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다음 선거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단어들은 보고서에서 사라지거나 구겨져 휴지통에 처박힌다. 일반적으로 부자가 가난한 사람보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더 높아야 정상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기후변화 위험을 줄이기 위해 자신이 소유한 땅과 시설을 자연에 돌려줄 부자는 거의 없다. 오히려 그들은 자연을 경제적 가치재로만 판단하도록 조장하여 더 많은 부가 창출되기를 원한다. 그들은 자연이 우리에게 주는 생태학적 가치가 경제적 가치보다 훨씬 크고 귀중하다는 진실이 드러나길 원하지 않는다. 그들은 진실이 드러나지 못하도록 자신의 권력을 이용한다.
셋째, 기후변화가 가져올 영향에 대해 사실 우리가 아는 것이 별로 없다. 다 안다고 착각하고 있지만, 해수 온도가 상승하면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일어날지 우리는 상세히 모른다. 우리 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과학자들일 게다. 그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과학적 진실을 일반인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지만, 그것도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과학자라고 하더라도 과학 소통의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이다. 과학을 문외한들에게 전달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들 사이에 전달을 전문으로 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한다. 그 전달자는 과학을 충분히 이해한 사람이어야 하며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재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런 재능과 능력을 두루 가진 사람들은 많지 않다.
네 번째, 과학의 언어와 일상 언어가 서로 다른 것도 과학적 사실이 전파되지 못하는 원인이 되고 결국 기후변화에 대한 경고가 그저 잡음으로 사라지는 원인이 된다. 이 책에서 예로 든 해수 산성도를 나타내는 pH 값은 일반인들에게 다소 생경한 로그값이다. 이 로그값은 아주 큰 수를 다루기 쉽게 하기 위해 과학계에서 사용하는 숫자 언어다. 과학자들이 해수 산성도 값이 0.1pH 변했다고 말하면 일반인들은 그 수치가 갖는 실제적인 크기와 수치에 담긴 의미를 모른다. 일반인들이 위험을 인지하기엔 0.1이란 변동폭은 너무 작다.
우리가 심각한 문제를 회피하는 이유는 이것들 말고도 너무 많지만, 이 정도로 해두자. 고통스러운 것을 회피하는 행동은 인간의 본능이지만 회피가 능사는 아니다. 듣고 싶지 않다고 듣지 않는다면 파멸은 피할 수 없다. 이 책은 지역과 언어를 넘어 눈앞으로 바싹 다가온 지구의 긴박한 경보를 설득력 있게 전달한다. 이 분야의 최고의 책 중에 하나로 꼽을만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사실, 외면하고 싶은 사실을 전달할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아마도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일 게다. 사실을 나열하면서 위기감을 고조시키거나, 행동하지 않는다고 질책하고 훈계하기보다 감성에 호소하는 방법이 행동으로 이끄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감성에 호소하기 위해서는 아름다운 문체로 호소해야 하고, 친밀한 역사와 신화, 빛나는 비유와 은유를 통해 설득해야 한다. 이 책이 바로 그런 책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묵장'님은?
올 1월, 33년 직장 생활을 마감하고 퇴직한 직장인. 책을 좋아해서 2009년부터 틈틈이 네이버 블로그에 독후기를 올리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