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23일 오늘의 책
뮈리엘 바르베리 | 민음사 | 2011.10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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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은 시간은 단 이틀, 기억 속에서 사라져 버린 인생 최고의 맛을 찾아라! 죽음을 앞둔 이 소설의 주인공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 평론가다. 수많은 음식점을 영광과 파산의 길로 이끈 그는 심장병에 걸려 죽기 직전에 인생에서 최후로 어떤 맛을 찾아 헤매기 시작한다.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이틀, 그의 기억은 노련한 손길로 가장 평범한 재료도 신비로운 기적으로 만드는 할머니의 주방으로, 이십 년 동안 단골이었던 마르케의 레스토랑으...
사람은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사는 내내, 우리는 먹고 또 먹는다. 음식을 먹는 건 일차적으로 욕구의 문제다. 배고픔이란 신체가 에너지원의 필요를 알리는 신호고, 음식 섭취는 이 허기를 달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대개 배고프다고 해서 아무거나 먹지 않는다. 끼니때마다 여지없이 찾아오는 누구나의 고민은 ‘오늘은 뭘 먹을까’이지 않던가. 단순히 배불리 먹는 데 만족하지 않고, 맛있게 먹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건, 더 이상 욕구를 충족하는 차원이 아니다. 욕망의 영역이다. 생의 지속과 늘 함께인 먹는 행위, 그리고 여기에 더해진 맛의 추구는 욕망을 동인으로 굴러가는 인생과도 같다. 뮈리엘 바르베리의 ≪맛≫은 바로 그 이야기다.
“나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 비평가다. (…) 나는 가장 훌륭한 요리의 나비 몇 마리를 영원토록 내 수집장에 꽂아 놓았다. (…) 나는 말의 껍질 속에 영원을 가두었지만 내일이면 죽을 것이다. 나는 마흔여덟 시간 안에 죽는다. (…) 나는 죽지만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 죽기 전에 마음속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기억해 낼 수가 없다. 나는 그 맛이 내 삶 전체의 첫 번째이자 궁극적인 진리라는 것, 그리고 그 후에 내가 말 못 하게 닫아걸어 버린 마음의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안다.” (10-11쪽)
‘나’의 평생은 맛에 의한, 맛을 위한, 맛의 삶이였다. ‘나’는 그간 자신의 입과 혀를 거쳐간 맛을 통해 사람과 세상을, 그리고 세계를 이해했다. 아직 맛보지 않은 지극의 맛을 찾아 탐험을 계속했다. 맛을 보고, 그 맛을 글로 쓰며 맛으로만 가득한 삶을 살아온 것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의미 있는 것은 위대한 요리사의 손에서 탄생한(할) 황홀경의 세계뿐이었다. 그렇게 “비극처럼 가까이 또는 달콤한 행복처럼 멀리서 빛나”는 희망의 지평선에 시선을 고정한 채 그는 지금에 이르렀다. 그런데 “군주이자 주인으로서 프랑스에서 가장 성대한 식탁들을 지배했”던 세계 최고의 요리 비평가인 그가, 정작 죽음을 앞에 둔 순간에 ‘마음속에 떠도는 하나의 맛’을 기억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맛≫은 그 ‘하나의 맛’을 찾아 기억을 더듬어가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화려하게 차려진 성찬 뿐 아니라 할머니의 밥상, 이모의 채소밭, 삼촌의 소박한 식탁과 왁자지껄하고 투박한 농가, 할아버지의 포도주 저장고로 함께 초대돼, 잘 구워진 생선, 통통하게 살이 찐 토마토, 버터 바른 토스트, 회와 빵 등 일상에서 흔하게 접해온 음식들의 풍부한 맛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이처럼 ‘나’가 인도하는 맛의 세계에 흠뻑 빠져있다가도 그 삶의 이면에서 다른 것을 보고 느껴온 이들(수위, 아들, 딸, 노숙자, 레스토랑 요리사, 아내, 친구 등)의 이야기를 접하게 되면, 결국 인생은 하나의 맛으로만 요약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는 말들을 배부르게 먹었다. 촌구석 형제들의 모임에서 솟는 말, 때때로 살을 가진 것들보다 큰 희열을 주는 말을. 말. 외톨이인 실재를 거두어 모아 순식간에 선집으로 변형시키는 보석 상자, 기억의 도서관에 분류된 실재를 기념물이 될 권리로 장식하여 모습을 변화시키는 마법사. 모든 삶은 말과 사실이 서로 침투할 때에만, 그리고 거기서 말이 사실에 옷을 입혀 내보일 때에만 비로소 삶으로서 존재한다. (…) 어쩌면 내 소명의 동인(動因)은 거기에, 말하는 것과 먹는 것 사이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맛은 언제나 내게서 어지럽게 달아난다.” (87-88쪽)
이처럼 맛과 말, 일회적 감각과 영원의 언어 사이에서 ‘언제나 어지럽게 달아나는’ 그 맛을 붙잡기 위해 헤매는 것이 ‘요리 비평가’인 그의 존재 방식이다. 그리고 이는 욕망과 그것의 실현 사이에서 끝없이 방황하며 나이를 먹어가는 누구나의 삶과도 닮아있다. 엄밀한 의미에서 같은 요리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모든 요리는 그때, 그 장소에서 먹었던 단 하나의 것일 뿐이듯, 아직 오지 않은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는 우리들은 하나를 붙잡고 또 하나를 잃으며 복잡미묘한 인생을 맛보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