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2월 23일 오늘의 책
실비 제르맹 | 문학동네 | 2015.04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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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세계라는 거대한 폭력 앞에서 스스로를 지켜내는 길은 오로지 자신의 이름을 잊지 않는 것.” 실비 제르맹은 우리 시대의 반 고흐다 _르 몽드 독창적인 형식과 우아한 문장, 강렬한 드라마! 프랑?스 현대 문학에서 독보적인 지위를 지닌 실비 제르맹의 대표작 현대 프랑스 문단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지니고 있는 실비 제르맹의 장편소설이 출간되었다. 제르맹은 독창적인 형식과 우아하고 섬세한 문장 그리고 신비주의에 기반을 둔 독특한 감성으로 ...
기억에 구멍이 뚫린 사람이 있다고 하자. 오랫동안 거짓에 묻혀 있다가, 시간에 뒤틀리고 의혹들로 들쑤셔진 기억이다. 그런데 어느 날 이 기억이 환한 빛을 발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이 사람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쓸 수 있을까?
대략적인 초상이나 두서없는 스토리거나, 공백과 균열로 점철되고 규칙적으로 메아리로 끼어들어 끝내 올이 풀리고 마는, 그런 이야기가 아닐까.
이런 혼돈은 불가피한 것이리라. 한 사람의 생의 연대기는 생각처럼 그렇게 단선적일 수 없으니 말이다. 공백과 공동, 메아리와 불분명한 경계, 이것들은 모든 기억이 그렇듯 모든 글쓰기의 구성 요소다.
(...) 과거의 끝에서 솟구치는 이 웅성임은 현재 도처에서 모여든 웅성임과 뒤섞인다. 목소리들의 바람, 숨결들의 다성악이다.
이 프롤로그를 통해 작가는 앞으로 기억을 잃어버린 사람의 이야기를 어떤 형식으로 전개해나갈지를 말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연합군의 함부르크 침공 당시 다섯 살의 아이는 엄마가 옆구리에 환한 불꽃을 달고 미친 듯 춤을 추다 검게 오그라드는 광경을 목도했다. 이후 기억을 상실한 아이는 보육원에 입소해서 어느 독일 가정에 입양된다. 히틀러의 숭배자인 엄마와 유대인 수용소에서 의사로 근무하는 아버지 사이에서 유복하게 자랐지만, 얼마 못 가 독일이 패망하면서 쫓기는 신세가 된다. 아이는 기억을 잃을 당시 귀가 불에 그슬린 눌은 냄새가 나는 곰 인형을 안고 있었고, 그 곰 인형의 이름이 마그누스다. 곰 인형의 목에 두른 리본에 누구의 이름인지도 모를 마그누스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이의 잃어버린 기억은 양부모로부터 유린당한 상태다. 독일이 패망한 후 아버지는 수용소에서 유대인 학살에 가담한 전범자 신세로 쫓기다 죽었으며(나중에 밝혀지는 사실은 신분을 세탁한 후 살아 있다), 그 소식을 접한 엄마는 자살한다. 이후 아이는 양엄마의 오빠가 살고 있는 영국으로 오게 된다. 기독교인인 외삼촌은 히틀러 정권 당시 유대인 아내의 불안한 미래와 기독교의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망명했던 것이다.
아이는 잃어버린 기억과 날조된 기억 사이에서 현재를 받쳐줄 정체성마저 상실한 채 부나비처럼 떠돌며 성장한다. 어느 날, 그는 연상의 여자가 준 책 『후안 룰포의 뻬드로 빠라모』를 읽던 중 번개처럼 다섯 살 때 잃어버렸던 기억을 기억해낸다. 연합군의 함부르크 침공 당시, 폭격으로 불타던 도시와 옆구리에 붙이 붙은 채 불춤을 추며 검게 오그라드는 엄마의 영상을 또렷하게 기억한다. 영혼이 갈가리 찢기는 기억 속에서 그는 곰 인형의 리본에 적혀 있던 '마그누스'라는 이름을 자신의 이름으로 삼는다.
이 소설은 한 사람의 생애가 굽이치며 흐르는 강물 같은 한 편의 대서사사로 읽힌다. 문장 자체가 무척이나 시적이고 몽환적이기도 하거니와, 구성 역시 그러하다. 서른 편의 단상과 단상 사이에 배치된 메아리 또는 약주, 가필, 반향 등의 소제목 등이 시적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기억을 잃은 사람의 심리를 “공백과 균열과 메아리”로 형상화하고 있는 것이다.
실비 제르맹 소설은 고통과 슬픔에 천착하고 있지만, 그 고통과 슬픔을 어루만지는 손길이 함께 한다.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와 더불어 『마그누스』를 통해 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그 내적 동기가 선명해지는데, 바로 죽음이다. 작가는 인간의 죽음은 그 당사자가 능동적으로 참여해서 수긍하는 죽음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럴 때 죽음은 더 이상 고통이나 슬픔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세상에 대한 긍정 속에서 자아가 열리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는 연마의 장이 된다.
점차 시력과 목소리를 잃어가고 이제 걷기조차 힘들어진 료타르는 그의 서재 창가에 놓인 안락의자에 온종일 앉아 있었다. 그러나 이런 불구 상태를 불쾌한 박탈로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연마하는 힘으로 삼았다. 그렇게 료타르는 마비된 몸으로부터 무한히 열린 기다림과 인내의 깊은 의미를 끌어냈다.
이 부동성에는 긴긴 명상이 차분하게 깃들어 있었다.
작가는 인간의 죽음이 이처럼 이뤄지기를 바란다. 그러나 세계는, 전쟁은 사람들의 죽음을 강탈하고 있다. 이렇게 약탈당한 죽음을 작가는 위무하고 있다.
얼마 전, 시리아의 하늘에서는 전선도 없이 전투기들이 연일 융단폭격을 퍼부었다. 몸에 불이 붙은 사람들이 미친 듯이 불춤을 추며 얼마나 많이 죽어 갔을까. 시리아 민간인에 대한 학살은 뉴스에조차 나오지 않는다. 그 폭격으로 누가 죽었을까. 아이와 여자들, 아픈 사람들, 늙은이들, 그러니까 내전을 피해서, 도래할 서방국가들의 무력 개입을 피해서 도망조차 가지 못한 채 시리아에 여전히 남아 있을 수밖에 없었던 가장 힘없는 약자들이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애도하지 않는 주검이고, 모두 회피하는 주검이다. 애도도 꽃도 없이... ... 그 방법밖에 없었을까, 목표로 하는 적과 민간인이 구분조차 안 되는 높은 하늘에서 폭탄을 마구 퍼붓는 식이어야만 했을까(땅의 일을 하늘은 모른다고 하지 말라). 파리의 무고한 희생자들이 자신들의 주검 위에 또 다른 무고한 희생자들의 주검으로 산을 쌓기를 원했을까...
제국주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문화적인 외피를 띤 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강대국의 위정자들은 나의 코털 하나라도 건드리면, 당장에 너를 바비큐로 만들겠다며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다. 작금의 중동지역의 혼란은 반세기도 더 넘게 미국과 서방국가들의 화석연료에 대한 탐욕에서 비롯되었음에도 말이다.
실비 제르맹은 역사에서 외면당한 무고한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 함부르크 시민의 반이 죽었지만, 연합군이 나치즘을 몰아내기 위한 정당한 전쟁이었기에 아무도 그 무고한 죽음에 대해 문제 삼지 않았던 주검을 애도하고, 『프라하 거리에서 울고 다니는 여자』 역시 역사 속에서 강탈당한 무고한 죽음을 위무하기 위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올빼미'님은?
일찍이 도스토옙스키는 ‘외부로부터 받는 감각 중에서 내 힘에 겨웁지 않은 것은 독서밖에 없는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더 나아가 세상으로부터 다친 마음을 다독여주는 것도 책이었으며, 세상에 대해, 이 삶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만들어준 것도 책이었습니다. 나를 키운 것은 7할이 책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앞으로 많은 미디어들이 ‘먹방’이 아닌, ‘책방’을 앞 다투어 다뤄주기를 기대하며(과연 그런 날이 올까), 실비 제르맹처럼 감수성이 풍부한 여성 작가가 쓴, 파토스가 넘치는 소설 세 권을 추천하고자 합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을 책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그리고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입니다.
저는 오래전에 에세이 『명상, 나를 찾아서』(1997년, 지원북클럽)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십일 년째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나 변변하게 내세울 만한 것 없이 이따금 영화제작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니콜 크라우스의 『사랑의 역사』와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그리고 안젤라 카터의 『피로 물든 방』입니다.저는 오래전에 에세이 『명상, 나를 찾아서』(1997년, 지원북클럽)를 출간했으며, 현재는 십일 년째 시나리오를 쓰고 있으나 변변하게 내세울 만한 것 없이 이따금 영화제작사에서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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