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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삭 속았수다

2014년 4월 22일 오늘의 책

폭삭 속았수다

성우제 | 강 | 2014.01

분류 : 여행/취미/레저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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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26개 코스 425킬로미터 스무 날 동안 걷고 만나고 기록한 제주, 그리고 사람들의 이야기 제주의 빼어난 풍광, 가슴 아픈 역사, 독특한 풍습을 섬세하게 포착해낸 역작 2007년 1코스를 개장?한 제주올레는 2012년 21코스가 개장되면서 5개 지선을 포함한 총 26개 코스가 완성되었다. 제주올레가 불러온 걷기 열풍으로 전국에 크고 작은 트레일이 생겨났고 걷기는 그 자체가 하나의 문화 행위로 정착되었다. 나아가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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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속았수다



시장에서 제주도산 무나, 당근, 감자를 보면 제주의 들녘 풍경이 보이는 듯해 마음이 발동하곤 한다. 그러고 보니 다른 계절엔 다 가보았는데, 봄의 제주도는 아직 가보질 못했다.

 

《폭삭 속았수다》는 스무날 동안 26개 코스 425km의 올레 코스를 완주한 저자 성우제의 여행기다. 그냥 걷기만 하다 온 것이 아니고, 마을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담아왔다. 굳이 마을을 지나게 하고, 도심 한복판을 걷게 하는 제주 올레길의 장점이 잘 드러난 책이다. ('혼저 옵서예'가 ‘혼자 오세요’가 아니듯 '폭삭 속았수다’는 ‘정말 수고하셨습니다’의 제주도 방언이다.)

 

돌담을 둘러쌓은 밭들과 멀리 보이는 한라산과 송악산•산방산, 찰랑거리는 파도소리와 바다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느랏느랏 놀멍 쉬멍 걸으멍'(제주말로 '느릿느릿하게 놀면서 쉬면서 걸으면'이란 뜻) 차를 타고서는 느낄 수 없었던 제주의 참 멋을 알게 된다 (본문 중에서)

 

가파도는 '못살포'라고 불릴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부는 모슬포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제주의 아우 섬이다. 더할 가(加)에 물결 파(波)를 쓰는 이름답게 파도가 높고, 바람이 매섭기로 유명하다. 봄날 이맘땐 또 다른 물결이 섬에서 일렁인다. 섬 안에서 이는 푸른 물결의 청보리다. 가파도에서는 매년 4월 하순에서 5월 초순까지 청보리밭 축제가 열린다.

 

가파도는 바다와 거의 수평이다. 섬 전체에 산이나 언덕이 없다. 섬의 최고점이 20.5m에 불과하다. 가장 낮은 섬답게 가파도에는 2층이 최고층일 정도로 높은 건물이 없다. 제주도 안에 한국에서 가장 높은 산인 한라산과 가장 낮은 섬 가파도가 함께 있다.

 

17만 평 보리밭 한가운데 환상처럼 피어난 갯무우꽃과 유채꽃 풍경도 놓칠 수 없겠다. 한적한 오후엔 바람과 파도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가파도는 사람이 그리운 섬이기도 하면서 낮잠 자기 좋은 섬이라고 한다. 특히 제주도의 아우 섬이지만, 가파도의 골목길을 걷다 보면 돌담의 색깔과 모양이 본도인 제주와 많이 다르다고 한다.

 

가파도에서 유일하게 아쉬운 점 하나가 있다는데, 중요한 의미가 담긴 내용이었다. 전국 어디나 길만 보이면 콘크리트로 덮으려는 관공서에서 청보리 축제를 한다고 그 좋은 보리밭 평야에 모자이크처럼 선을 긋고 콘크리트 길을 깔아놓았다. 그 바람에 흙길이 사라졌다. 올레길에 영향을 받아 전국에 여러 길이 생겨나고 있다. 하지만 지루하고 억지스러운 '콘크리트 길'보다 자연스러운 흙길을 걷고 싶다. 흙길이 얼마다 위대한 길인가 하는 것은 몇 번만 그 길을 걸어보면 안다.

 

오름에 있는 무덤도 그렇고 밭에 있는 무덤도 그 주위에 돌담을 쌓아놓았다. 방목하는 말이나 소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만든 담이다. 제주도에서는 무덤을 '산'이라 부른다. 그래서 산을 둘러싼 돌담 이름은 '산담'이다 (본문 중에서)

 

제주 여행을 하다 보면 마을, 숲, 해변은 물론 오름에 올라서도 까만 돌담을 흔히 볼 수 있다. 제주의 돌담은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어떻게 저 혼자 있기도 위태로워 보이는 돌담이 거친 해풍을 막아내며 무너지지 않고 서 있는 것일까?' 참 신기했다. 어쩌면 저 숭숭 뚫린 구멍 덕에 돌담은 오랜 세월 바람을 막아낸 것은 아닐까.

 

제주 돌담은 바람을 구멍으로 분산해 통과시켜 바람으로부터 섬의 안전을 지켜왔다고 한다. 제주의 돌담은 바람의 방어막이 아니라 바람의 통로다. 섬사람들은 바람을 거스르고는 살 수 없어 바람이 지나갈 샛길을 만들어 주었다. 제주도 사람들은 바람과 함께 살아간다. 제주 돌담에 담긴 의미를 알게 되니 여행길에 마주치는 다양한 돌담이 그저 까맣게 생긴 흔한 담으로만 다가오진 않을 것 같다.

 

집담, 밭담, 산담에 이어 잣담까지, 돌이 많은 제주도에선 담을 부르는 이름도 다양하다. 검정으로 쓱쓱 금을 그은 듯 구불구불 끝없이 이어지는 제주도 돌담을 빼고는 제주도를 이야기할 수 없다. 제주 바닷가에 있다는 '원담'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원담’은 해변에 돌을 쌓아 밀물 때 들어온 멸치 등이 썰물 때 나가지 못하게 만든 담이다. 즉, 마을에서 돌담을 쌓아 만든 '돌 그물'이다.

 

밭과 집, 목장, 무덤 등을 둘러싼 검은색 돌담이 구불구불 끊임없이 이어진다고 하여 제주도 돌담은 '흑룡만리'라 불리기도 한다. 주변의 자연과 잘 어우러지는 소박한 검은 색 돌담으로 둘러싸인 밭 풍경은 여행자에게 그 자체로 훌륭한 볼거리다. 규격, 표준화한 것 하나 없이 어느 담을 보아도 구불구불 제각기 다른 모양도 맘에 든다. 척박한 화산토에서 사람이 살아남기 위해 누대에 걸쳐 돌을 쌓아 올린 오랜 역사까지 담 안에 녹아 있다.

 

제주 올레를 걸으면 누구나 드는 의문이 있다. 왜 풍광 좋은 곳만 걷게 하지 않고 굳이 마을을 지나게 하고 도심 한복판을 걷게 하느냐는 것이다. 에둘러 가면 한적하고 좋을 것을 왜 이런 번잡한 곳을 통과하게 만드느냐는 의문이 든다. 그러나 바로 그 지점이 출발점이다. 제주올레는 길을 통해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사람과 소통하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본문 중에서)

 

제주도 사람들이 척박한 자연환경과 관권의 폭압, 왜구의 노략질 등을 견뎌낼 수 있었던 힘은 서로 상부상조하는 '수눌음(제주도 방언으로, 품앗이를 뜻한다.)' 정신에서 나왔다. 농촌에는 공동목장, 해촌에는 공동어장이 있고, 거의 모든 일은 계 조직을 통해 이루어졌다. 아홉 살에 고향을 떠나 일본에 이민을 간 사람들이 고향 발전을 위해 거금을 희사하는 곳이 제주도다.

 

제주도 사람들의 생존 조건이자 자부심의 원천인 ‘공동체 의식’은 제주 4·3사건으로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저자가 중산간 마을 길에서 만난 고 씨는 지금까지 남아 있는 가장 큰 아픔으로 공동체 의식의 파괴를 꼽았다. 한 마을에서 대대로 가족처럼 의지하며 지내온 이웃들이 서로 등을 돌린 것만큼이나 불행한 일은 없기 때문이다.

 

후손이 겪은 고초도 못지않다. 부모가 죽었으니 정상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설사 공부를 했다 해도 연좌제라는 족쇄가 그들을 채워버렸다. 연좌제는 1990년대 문민정부에 들어서 풀렸다. 마을은 '폭도 마을’이라고 낙인 찍혔다. 당시 군경이 파악한 제주도 전역의 유격대 숫자는 500명. 500명을 잡겠다고 미국이 '레드 아일랜디'로 지목한 후, 중산간 마을을 불태워 주민 3만 명을 죽였다. 섬 인구의 10분의 1이었다. 광기가 아니고는 설명되지 않는 동족 대학살이었다.

 

19코스 함덕해수욕장 동쪽으로 서우봉이 우뚝 솟아 있는데, 이 봉우리를 넘으면 조천읍 북촌리다. 이곳은 제주 4·3사건을 '공식 활자'로 써서 처음 세상에 알린 소설가 현기영의 소설 《순이 삼촌》의 무대가 된 마을이다. 단일 사건으로는 가장 많은 인명 손해를 입은 곳이어서 비극을 상징하는 마을이 되었다. 마을 입구에서 만난 청년은 "현기영 선생을 아느냐"는 저자의 물음에 '순이 삼촌'을 기억해내며 "남자들은 그때 거의 다 죽었다고 보면 된다."고 말한다. 여러 학살터 가운데 하나였던 너븐숭이(넓은 쉼터)에는 '너븐숭이 4·3기념관'이 들어섰다. 이곳에서 해설을 맡고 있는 고은숙 씨는 사건 희생자의 유족으로, 당시의 일들을 상세히 들려준다.

 

“'제주도 어른들은 인사를 해도 잘 받아주지 않는다, 너무 무뚝뚝하다'며 서운한 감정을 토로하는 올레꾼을 본 적 있다. 대참화로 인한 큰 아픔이 있으니 어른들 얼굴이 어두울 수밖에 없고, 육지에서 사람들이 와도 아직은 마음으로 반갑게 맞을 수가 없다."

 

이후 정부에서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 대한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희생자를 기리는 추념식을 거행하는 등 조치가 이루어졌지만, 저자가 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뇌리 속에, 그리고 사건 당시 총탄에 한 귀퉁이가 떨어져 나간 등명대(등대) 건립비에는 이러한 아픔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써니21’님은?
소박하게 먹고, 가진 것을 줄이기, 이방인으로서 겸손하기, 모든 것을 새롭게 보기를 실천하며 늘 여행자의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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