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4월 21일 오늘의 책
장석주 | 달 | 2017.04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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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나는 진짜로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설렘과 희망으로 맥동하는 아침은 저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당도한 이 ‘오후’가 그다지 싫지 않다. 이 ‘오후’의 여유 속에서 가만히 혼자 웃고 싶다.” _ 장석주 장석주 시인이 맞이한 오후, 인생에 대해 생각하고 지나온 인생을 돌아보는 시간 사람의 인생을 하루로 본다면 우리는 지금 몇시쯤을 살아가고 있을까. 각자가 서로 다른 시간들을 가늠하고 있을 가운...
#이것은_팩트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는 예순 번의 여름을 지나온 장석주 시인의 산문 48개를 엮은 산문집이다. 책에서 길어 올린 귀한 문장들을 촉매제 삼아 일상의 사유들을 풀어냈다. 크리스티안 생제르의 『우리 모두는 시간의 여행자이다』 의 한 문장 "우리 삶의 절반은 귀한 한 덩어리의 흑요석 안에서 다듬어졌다. 엄마의 배 속, 매일 찾아오는 밤들, 그리고 죽음"에서 시작된 '밤과 꿈에 대한' 사유, 밀란 쿤델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영원회귀'에서 시작된 '시작과 끝에 대한' 사유 등 마흔 여덟 가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이순(耳順)이 되기까지 장석주 시인이 통과해온 시간들이 녹아 있는 소중한 책이다. 곳곳에 회한이 묻어나고 떠나간 젊음에 대한 아쉬움이 자꾸만 눈에 띄어 때론 슬퍼지기도 했다. 나의 예순 살은 어떨까 문득 궁금해진다.
하루키는 이렇게 썼다. "여름의 향기를 느낀 것은 오랜만이다. 바닷바람, 먼 기적 소리, 여자아이 피부의 감촉, 헤어린스의 레몬 향, 석양의 바람, 옅은 희망, 그리고 여름의 꿈...." (145쪽)
#자연을_애정하는_시인
29년을 시골에서 산 덕에 계절변화를 사람들의 옷차림이 아닌 자연에서 느끼는 행운을 누렸다. 애정하는 계절이 있고, 덜 애정하는 계절이 있지만 사계절은 그 하나하나가 매력 있다. 봄은 빛나는 연둣빛 잎들을 다시 보게 되어 반가운 계절이고, 여름은 작열하는 태양이 온몸의 피를 맹렬히 돌게 하는 환상적인 계절이다. 가을은 빛이 아름다워 사랑스러운 계절이고, 겨울은 깜깜한 하늘 덕에 수많은 별을 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계절이다.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 에서 "어둠의 농도는 장소마다 다르고 계절마다 다르다."는 장석주 시인의 말을 뼛속 깊이 공감한다.
드디어 봄이다. 추워지기 시작한 작년 11월부터 헤아려보면 거의 6개월을 견뎠다. 가장 좋아하는 계절, 여름이 오고 있다. 장석주 시인이 인용한 카프카의 첫 번째 작품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묘사된 여름의 향기가 좋다. 바닷바람, 먼 기적 소리, 여자아이 피부의 감촉, 헤어린스의 레몬 향, 석양의 바람, 옅은 희망, 그리고 여름의 꿈. 여름 밤에 부는 바람과 한낮의 뜨거운 태양이 남긴 여름의 느낌들이 좋다. 여름을 좋아하게 된 건 스페인 배낭여행 내내 함께 했던 8월의 따가운 태양 때문이다. 모든 생명을 태울 만큼 뜨거웠지만 사람들은 정수리로 태양빛을 충전하여 에너지를 얻는 듯했다. 사람들의 생동감, 활기, 밝은 표정. 이 모든 게 태양에서 오는 것 같았다. 태양의 활력에 반했다.
하얗게 퍼붓던 여름의 일사광선들이여, 사라진 짧았던 여름의 그 싱싱한 빛들이여! (253쪽)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에는 장석주 시인의 자연을 향한 애정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 시인의 섬세한 문장력 덕에 책을 읽으면 해바라기가 보이고, 밤하늘의 별이 보이고, 동네 목욕탕에 다녀온 기분이다. 증강현실이 따로 없다. 저자 소개에 '서재와 정원 그리고 책과 도서관을 좋아하며 햇빛과 의자를, 대숲과 바람을, 고전과 음악을, 침묵과 고요를 사랑한다'고 썼다. 많은 성향이 나와 겹치지만 더없이 차분하고 예민한 분일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설렘을_깨우는_산문집
"우리는 지금 자작나무 숲과 호수들이 많은 북유럽의 한 도시에 와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책은 푸른 나무가 우거진 숲으로 나를 이끌었다. 봄의 싱그러운 나뭇잎 냄새로 가득한 숲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풍경'에 대한 그의 첫 번째 산문이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를 집게 했다. 가상의 숲에 앉아 장석주 시인의 여행에 동행해보자는 마음에서 였다. 여행을 참 좋아했는데 이제 여행의 설렘을 잃고 여행 가고 싶다는 마음마저 사라진 요즘, 이 첫 문장은 어렴풋이 낯선 곳에서 일상을 보내는 여행의 설렘을 떠오르게 했다.
여행을 좋아하고, 사진과 글로 내가 느낀 여행을 표현하고 싶어 여행잡지사 입사를 꿈꿨다. 책과 여행잡지는 즐겨 읽었지만, 왜인지 이병률 시인의 여행 산문집은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소개팅에서 만난 상대가 사려 깊게도 첫 만남 때 이병률 시인의 책 두 권을 선물했었다. 하지만 그 책들은 읽지 않았다. 쓸데없는 질투였다. 여행의 설렘을 모두 잊은 지금이 이병률 시인의 책을 읽기에 적기인듯하다. 이병률 시인 이야기를 꺼낸 건 『가만히 혼자 웃고 싶은 오후』의 펴낸이가 이병률 시인이기 때문이다. 이병률 시인의 출판 권유로 독자들이 장석주 시인의 사유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지금 나는 진짜로 시작보다 끝이 더 많아지는 인생의 오후에 당도했다. 설렘과 희망으로 맥동하는 아침은 저멀리 사라지고 없지만 지금 당도한 이 '오후'가 그다지 싫지 않다. 이 '오후'의 여유 속에서 가만히 혼자 웃고 싶다. (6쪽)
시간이 흐를수록 감각이 무뎌지는 걸 느낀다. 감각이 무뎌지니 자연스레 감정의 폭이 좁아지고, 안 그래도 단조로운 일상이 더 심플해진다. 이건 장석주 시인이 말하는 심플라이프와는 너무나도 질이 다른 심플이다. 4D에서 3D, 그리고 지금은 2D까지 왔다. 산문집을 보며 시인의 깊은 시선과 사유에 감탄하게 된다. 낯설게 보기, 깊이 보기 연습이 필요할 때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하루여행'님은?
블로그 ‘치킨은 잘못이 없다’ 에 여행 같은 하루(이길 바라는 일상)을 기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