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1일 오늘의 책
최호철 | 거북이북스 | 2008.02
분류 : 시/에세이/기행
- 정가
- $36.00
- 판매가
- $19.80 (45%↓)
- 적립금
- $0.40 (2%P)
출판사 서평 1. 기획 의도 은 그림으로 ‘이야기’하는 타고난 그림쟁이 최호철의 첫 작품집이다. 그의 그림은 만화와 회화의 경계에서 ‘현대 풍속화’라는 독특한 그림 장르를 구현하고 있다. 풍경과 인물에 대한 세밀한 관찰은 겸재 정선의 진경산수나 김홍도의 풍속화를 떠올리게 한다. 기획만화 전문출판사 거북이북스에서는 최호철의 작품을 이라는 한권의 책으로 묶는다. 작가의 10여년 작품 여정을 정리하고 그의 그림이 갖는 의미를 조망한다. 2. 작...
지하철 2호선을 싫어합니다. 왜 싫어하냐구요? 첫 직장이 역삼역 근처에 있었는데, 출퇴근할 때마다 좀 고생스러웠거든요. 차는 낡았지, 조명은 탁하지, 사람은 넘쳐나지… 움직이기는커녕 숨쉬기 힘들 때도 많았어요.
지하철을 타고 있으면 목이 말랐죠. 달리고 싶었고, 때로는 수증기가 돼서 증발해버리고 싶기도 했구요. 만원 차를 피하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서도 사람은 늘 많았답니다. 일터로 향하는 그들과 섞이면서 생각했어요. 다들 어디서 오는 걸까? 어디로 가는 걸까? 왜 일을 할까? 자신을 위해서? 가족을 부양하려고? 먹고살아야 하니까? 마치 나 자신은 열외자인 양 매일매일 그렇게 생각했죠.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는 노련한 척 나름의 답을 내렸어요.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을 거라고. 어쩌다보니 직장인이 됐고, 어쩌다보니 어릴 적 꿈은 사라졌으며, 어쩌다보니 반려가 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렸을 거라고. 그러나 나는 그렇게 살기 싫다고.
그런데 내가 그토록 끔찍해 하고 도망치고 싶어 했던 현장이 너무나 섬세하게 담긴 책이 있네요. ‘다큐멘터리 만화가’라고 불리는 작가 최호철의 <을지로 순환선>이 그것입니다. 책 표지와 본문 54-55쪽에 실린 그림의 제목이 바로 ‘을지로 순환선’이에요. “끊임없이 거대한 도시의 일터와 쉼터 사이를 다람쥐 쳇바퀴 돌듯 맴도는 을지로 순환선” 풍경을 담은 작품이죠.
얼굴에 불콰한 술기운이 감도는 아저씨, 그 아저씨를 경계하듯 살짝 몸을 돌린 아주머니, 예수를 믿어야 천당 간다고 외치는 듯한 전도사, 그 전도사를 못마땅한 듯이 쳐다보는 사람, 이어폰을 낀 채 학습서를 들여다보는 늙수그레한 학생, 우울한 얼굴로 차창 밖을 내려다보는 모녀, 창밖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 아기를 업고 빨래를 너는 아주머니, 옥상에서 책을 보는 청년, 세탁소에서 옷을 찾아가는 할아버지, 골목을 뛰어다니는 아이들, 줄에 매달려 페인트칠을 하는 남자들, 이삿짐을 나르는 아저씨들, 한쪽에서 땅을 파헤치는 포크레인들, 그 뒤로 우뚝 솟아 있는 아파트들.
지하철 안 풍경은 칙칙하지만, 차창 밖 풍경은 제법 정겹습니다. 살림살이가 넉넉하진 않아도 웃음이 남아 있고 이야기가 흐르며, 희망이란 것도 얼마쯤 엿보입니다. 곧 있으면 포크레인의 이빨에 씹히고 아파트의 엉덩이에 눌릴 것처럼 위태로운 희망이긴 하지만요. 최호철의 그림은 달동네가 무조건 소중하고 개발은 어쨌든 나쁘다는 식으로 말하진 않아요. 다양한 사람의 이익과 손실을 동시에 담아냄으로써 복잡다단한 도시의 현실 자체를 기록하고 있죠.
이 한 장의 거대한 그림 속에는 수많은 사람의 이야기가 담겨 있어요. 그러니 사람들의 표정과 동작, 집들의 배치, 골목의 구불거림, 구석구석에 놓인 소품들까지 찬찬히 뜯어보시길. 다른 그림들도 마찬가지로 봐주셔야 해요. 이 책 <을지로 순환선>을 보는 것은 글을 읽는 일 못지않게 집중력을 요한답니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익숙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되실 거예요. 수많은 사람의 삶과 일상이 맞물려 돌아가는 풍경, 제로섬게임 같은 세상이지만 어쨌든 다들 살아가고 있고 어떻게든 그 속에서 희망을 찾아내는 행적, 그들의 무심함과 귀찮음 혹은 관심과 경이로움이 돌고 돌아 나에게로 전해지는 경험.
‘끔찍하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어요. 그만큼 그림들이 촘촘하고 세밀하며, 지나칠 정도로 실제적이거든요. 무엇 하나 소홀히 다루지 않는 최호철의 그리기는 어쩐지 불편하고, 숙연한 마음마저 갖게 하죠. 도시와 인간에 대한 그의 ‘끔찍한 애정’에 존경심도 생겨나구요.
을지로 순환선을 타보셨나요? 그 초록색 전철을 타고 시청과 을지로입구, 잠실과 강남, 봉천과 신도림, 신촌과 홍대입구를 지나보셨나요? 그렇다면 이 책 <을지로 순환선>에 충분히 공감하실 겁니다. 나 자신이 이방인이 아닌 그 치열한 현장의 한 구성원임을 새삼 깨닫게 되실 거구요. 또 하나,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 자신에게 ‘어쩌다보니’란 말이 아니라 ‘순환’이란 품위 있는 말을 선물하고 싶어지실 거예요.
-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거북이북스] 을지로 순환선](https://www.bandibookus.com/upload/product/2765/2765876.jp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