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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엔 원년의 풋볼

2017년 6월 20일 오늘의 책

만엔 원년의 풋볼

오에 겐자부로 | 웅진지식하우스 | 2017.04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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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전후 일본 문학의 포문을 연 거장 오에 겐자부로, 폭력과 고통으로 점철된 근대 일본을 성찰하다 『만엔 원년의 풋볼』은 일본 문학을 대표하는 거장 오에 겐자부로의 대표작이다. 소설이 발표되자마자 일본 내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으며, 탐미 문학의 대가 미시마 유키오가 “전후 일본 문학의 새로운 정점이 나타났다”라고 평했을 만큼 근대 일본이 낳은 최고작으로 손꼽혔다. 1971년에는 영문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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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수치심의 근원은


일본 소설을 좋아해서 일본의 고전부터 현대 소설까지 두루 읽는 편이다. 그럼에도 일본 소설은 이해하기 쉽지 않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난해한 세계관이나,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탐미주의, 아베 고보의 일본식 실존주의 소설, 디자이 오사무의 끝없이 나락으로 추락하는 자기 비하 등 무엇 하나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일본 소설은 무언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매력이 있다. 마치 어둠과 공포만이 존재하는 심해를 탐험하는 잠수정처럼 인간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는 일본 소설만의 독특한 시각 때문일 것이다. 이런 일본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꼭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작가가 있다. '오에 겐자부로'이다. 그동안 이 작가의 작품을 읽어본 적이 없었고 단지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이어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겨 준 작품인 『만엔 원년의 풋볼』을 읽었다.

우선 소설의 제목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 이 소설에 대한 사전 지식이 전혀 없었던 덕에 처음에는 소설의 제목을 보고 ‘만엔’이 일본 화폐를 이르는 줄 알았으나 만엔은 에도막부 말기의 연호이고, 만엔 원년은 1860년을 의미한다. 소설의 주인공 마쓰사부로의 증조할아버지의 동생이 '골짜기 마을'이라고 부르는 곳에서 농민 봉기를 일으켰던 해이기도 하다. 소설은 마쓰사부로와 함께 고향으로 내려간 동생 다카시가 풋볼팀을 조직하여 조상의 봉기를 흉내내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소설은 만엔 원년의 농민 봉기와 다카시의 풋볼팀이 슈퍼마켓을 습격하는 두 사건을 중첩시킨다.

소설에 전반적으로 흐르는 감정적 이미지는 '수치심'이다. 주인공 마쓰사부로는 흉측한 얼굴로 태어나 아이들에게 놀림을 당하던 중 돌에 맞아 어린 시절 한쪽 시력을 잃은 외눈박이다. 결혼 후 낳은 그의 아이는 머리의 혹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백치가 됐고 그의 친한 친구는 정신병에 시달리다가 얼굴에 붉은 칠을 하고 변태적인 모습으로 자살을 한다. 이 두 사건을 겪으며 마쓰사부로는 세상과 단절되어 깊은 '수치심' 속으로 들어간다. 소설의 초반에 그가 개와 함께 정화조를 묻기 위해 파 놓은 웅덩이 속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통해, 그가 품은 내면의 깊은 수치심을 엿볼 수 있다.

개가 짖어댄다. 구덩이 바닥에 있는 나를 양 측면에서 조이며 외부 세계가 되살아난다. 삽 모양으로 구부린 내 오른손이 정면의 흙벽을 계속 긁어내어 간토 지방 롬 층에 묻혀 있는 벽돌 조각을 이미 대여섯 개 무릎 쪽으로 떨어뜨린 상태고, 개는 그것을 피해 내 가슴에 달라붙어 있다. 게다가 아직도 내 오른손은 다급하게 벽면을 자꾸만 긁어대고 있다. 구명 위에서는 누군가가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개를 왼손으로 단단히 끌어나고 구명 위를 올려다본다. 개의 공포심이 나에게도 전염되어 나는 정말로 동물적 공포를 느낀다. … (중략) …  개는 미친 듯이 짖어대고, 나는 두려움과 수치심에 빠져든다. 무수한 유리들이 서로 부딪는 소리가 우박처럼 구멍 밑으로 쏟아져 들어온다. 나는 필사적으로 눈을 크게 뜨고 신처럼 들여다보는 거인의 얼굴을 식별하려 시도하며 수치심에 멍하니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려보낸다.(44쪽)

이렇게 수치감에 빠져있는 마쓰사부로에게 학생운동을 하다가 미국으로 피신해 있던 동생 다카시가 돌아온다. 그에게는 두 명의 추종자가 있었는데 호시오와 모모코라는 10대 남녀이다. 이들은 다카시를 영웅시하나 마쓰사부로가 아는 다카시는 겁쟁이일 뿐이다. 다카시는 고향인 골짜기 마을로 형과 함께 돌아가기를 원하고, 마쓰사부로와 아내, 그리고 다카시와 호시오, 모모코는 모두 함께 골짜기 마을로 들어가 생활을 한다.

다카시는 골짜기 마을에서 100년 전 농민운동을 일으키고 죽은 증조부의 동생을 영웅시하고, 또한 패전 후 조선인 마을을 습격했다가 죽은 형 S 역시 영웅시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카시가 만든 왜곡된 역사와 기억이고, 실제로 증조부의 동생은 농민운동 실패 후 혼자 살기 위해 도주했고, 형 S 역시 영웅이라기보다는 사고로 죽은 것이었다. 그럼에도 다카시는 자신의 조상과 S를 따라 하기 위해 골짜기 청년들을 모아 풋볼팀을 조직한다. 그리고 마을을 지배하고 있는 슈퍼마켓 천황이라고 불리는 조선인의 슈퍼마켓을 습격한다.

다카시는 점점 마을 사람들에게 영웅이 되고, 다카시는 100년 전의 폭력과 광기를 마을 사람들에게 전염시킨다. 다카시 역시 점점 자신 안의 광기와 폭력성에 휘말리며 살인과 강간에 빠져든다. 그리고 끝내 사건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다카시는 스스로 비극적인 결말을 맺고자 목숨을 끊는다.

오에 겐자부로는 다카시와 마쓰 사부로라는 두 인물을 통해 일본 민족이 품은 폭력성과 수치심을 이야기한다. 다카시가 스스로를 영웅시하며 폭력적으로 돌변했던 것은 자신의 과거의 죄를 스스로 처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젊은 시절 백치 여동생과 성관계를 맺고, 결국 여동생을 자살로 내몰았다. 그런 어둡고 수치스러운 감정을 잊기 위해 스스로를 영웅시하고, 폭력성을 키웠던 것이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은 이런 다카시에게 열광하며 그를 영웅으로 추대한다. 다카시의 이런 폭력성과 수치심은 태평양 전쟁의 광기에 휩싸였던 일본 민족의 내면을 은유한다. 반면 마쓰사부로는 끝없는 자기혐오와 수치심 속에 아무것도 바꾸려 하지 않는다. 마쓰사부로는 패전 이후 일본인의 자기혐오와 수치심을 형상화한 인물이다. 그리고 이 수치심은 패전 이후 일본인 모두가 지니고 있던 감정이었다.

나는 진주군의 지프차가 최초로 골짜기 마을에 들어왔던 날의 광경을 또렷하게 기억해낸다. 슈퍼마켓 천황 일행은 한 여름날 아침의 의기양양한 이방인들을 닮았다. 처음 내 눈으로 국가의 패배를 구체적으로 확인한 그날 아침도 골짜기 마르의 어른들은 좀처럼 점령당했다는 감각에 익숙해질 수가 없어서, 이방의 병사들을 무시하고 일상의 작업을 계속하면서도 그들의 몸 전체에는 '수치'가 배어 있었다. (515쪽)

소설의 초반에서 중반까지는 주인공의 내면의 감정과 형제가 골짜기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을 지루하게 다루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과연 '이것이 노벨 문학상 작품이 맞는가?'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지루함과 따분함을 느꼈다. 그런데 중반 이후부터 소설 전체가 형상화하고 있는 일본 민족적 감정과 태평양 전쟁에 대한 그림이 보이면서 소설이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후반부에 이르러서는 다카시의 비밀과 가문의 비밀들이 밝혀지면서 속도감을 더한다. 전반적으로 암울하게 흐른 소설의 결말에서는 주인공 마쓰사부로가 어둠의 구덩이에서 나오면서 희망을 이야기하면서 끝난다. 확실히 희망을 보장하는 결론은 아니지만, 어떤 여지를 남겨주었기에 소설의 결말 부분이 좋았다.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일본 소설 전반에 흐르는 자기 비하와 수치심의 감정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왜 일본인들이 그렇게 끝없이 과거에 집착하는지, 스스로를 영웅시하며 역사를 왜곡하는지, 그럼에도 일본 문화 전반에 있는 자기 비하와 수치심의 문화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마쓰사부로는 자신과 가문의 수치심과 직면하고 이를 극복하고자 하지만, 현실의 일본이 마쓰사부로의 길을 걷고 있는지는 의심이 든다. 일본 민족의 감정과 더불어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폭력성과 광기, 그리고 수치심을 아주 뛰어나 묘사로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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