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2월 20일 오늘의 책
선안나 | 샘터 | 2008.11
분류 : 어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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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아주 먼 옜날, 세상 처음 무렵에 있었던 이야기 이 책은 신화적 질서를 자신의 작품 속에서 구현하고자 꾸준히 노력해 온 동화작가 선안나의 작품으로, 낮과 밤, 너와 나 ‘사이’에 대한 이야기이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그 생명들의 ‘처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빛과 어둠, 하늘과 땅, 너와 나 사이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존재한다는 생각, 또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그 첫 움틈, 살아있음의 시작이 있다는 인식, 그리고 ‘우리는 어...
“해질 무렵 세상은 참 순하지.
희미한 빛과 어둠이 서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시간.
이 섬세한 시간이 원래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야.
이제부터 그 얘길 해 줄게.
너, 나, 우리가 누구인지도 말야.”
또다시 어여쁜 그림책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동화작가 선안나가 이야기하고 일러스트레이터 정현주가 바느질한 텍스타일 그림책 <너, 나, 우리>.
텍스타일 기법이란 천 작업을 의미합니다. 면, 레이스, 모시, 실크… 이 책의 일러스트는 다양한 질감과 색깔을 지닌 천들로 이루어져 있죠. 천은 꿰매지고 염색되고 수놓아지고 재봉틀 밑에서 돌려지며 우주와 대자연, 그 품에 안긴 생명들로 다시 태어납니다. 글도 참 아름답지만 이런 텍스타일 일러스트에 의해 더욱 빛나는 그림책입니다.

신화적인 이야기는 복잡하지 않습니다. 지구가 탄생하기 전 혼돈 속에는 달 여왕의 ‘밤 왕국’과 태양 왕의 ‘낮 왕국’만 있었다고 해요. 각 왕국에는 초승달처럼 소슬한 공주와 아침 해처럼 환한 왕자가 살았구요. 이들은 만나선 안 될 사람들이었지만, 운명처럼 ‘시간의 국경선’에서 만나 사랑을 하게 되죠. 그로 인해 ‘낮’과 ‘밤’만 존재하던 우주에는 ‘저녁’과 ‘새벽’이란 시간이 생겨납니다. 시간이 섬세하고 다양해지면서 여러 생명체가 태어나고, 그리하여 세상은 점점 풍요롭고 아름다워졌다는 이야기.
바늘과 실, 실과 천의 만남으로 빛과 어둠의 공존을 표현해낸 기법이 탁월합니다. 그런 생각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니 한 장 한 장 넘길수록 더 짙어지죠. 듬성듬성 혹은 촘촘히 천에 꿰인 실을 풀다보면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너’와 ‘나’, 그리고 ‘우리’가 얼마나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지 하는 의문도 풀리지 않을까요. 이토록 애를 써서 바느질과 뜨개질을 하고 자수를 놓은 것은 쉬이 풀리지 않는 ‘근원’에 신비와 경외감을 실어주기 위함 아닐까요.

텍스타일 그림책을 접한 것이 처음은 아닙니다. 작년 겨울 홍대의 한 카페에서 일본의 천 그림 작가 우메하라 류의 <달 사람>이란 그림책을 본 적이 있거든요. 각양각색의 천으로 달, 숲, 바다, 인디언 소녀, 흑인 남자아이 등을 표현한 일러스트가 너무 예뻤죠. 그 속에는 보통 물감과 다른 생명력이, 평평한 종이를 뛰어넘는 포용력이 꿈틀대고 있었어요. 그 느낌을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어 거금을 주고 책을 샀던 기억입니다.
이 책 <너, 나, 우리>도 보통의 그림책에 비하면 비싼 편이에요. 정가가 12,000원이니까요. 하지만 들인 정성과 솜씨, 그림책의 가치 면에서 고려할 때 그만한 값을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아이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 엄마, 아빠, 호기심 많은 친구, 또는 마음이 강퍅한 친구,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며 우주를 나누어 사는 느낌을 누릴 수 있는 책, 그러므로 그림책의 가능성을 한 폭 넓힌 책이라고 서슴없이 말씀드릴게요.

잠시 멈추고 싶지 않나요. 어딘가로 돌아가고 싶진 않나요. 어쩌면, 태초의 공간으로 돌아가 오래오래 머무르고 싶진 않나요. 궁금한가요. 어디에서 왔는지. 보이지 않는 실로 연결된 벗들이 누구인지. 어렴풋이 떠오를 것만 같은 기억들을 가만히 밀어 보냅니다. 빛과 어둠, 낮과 밤처럼 단호하게 갈리는 시간 말고 그 사이에 세세히 번져 있는 시간들에 흠뻑 빠지고 싶은 분들에게.
“문득 그럴 때가 없니?
해와 달과 별을 보면,
무언가 어렴풋이 떠오를 것만 같은 때가.
느껴지지 않니?
우주의 아이인 너를 가만히 지켜봐 주는
어떤 눈길과, 어루만져 주는 손길이…….”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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