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2일 오늘의 책
안희제 | 동녘 | 2020.08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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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과 장애, 청춘과 나이듦, 정상과 비정상 이분법의 폭력을 깨부수는 새로운 경계인의 탄생! 가장 찬란해야 할 스무 살의 여름, 저자는 발음조차 낯선 크론병을 진단받는다. 면역계가 정상 세포를 공격하는 과잉 면역 반응을 일으켜 소화기의 입구부터 출구까지 염증이 생기는 희귀병이었다. 평범한 일상이 무너졌다. 친구들과 떨어져 혼자 밥을 먹는 날이 늘었고 수시로 몰려오는 통증에 조퇴와 결석을 반복해야 했다. 고통스러운 수술, 지리멸렬한 요양, 그...
저자인 안희제는 두 번째 수능을 준비하던 2014년 7월 만성 희귀 질환인 크론병을 진단받았다. 건강했던 과거와 아픈 현재 사이에서 방황한 적도 있던 그는 노들장애학궁리소에서 질병과 장애에 관한 수업을 듣고 학내 장애인권 단체에서 활동하며 장애와 질병의 경계, 그 경계를 구성하고 공고히 하는 권력을 고민하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생긴 고민과 다양한 장애인권 활동을 바탕으로 이 책이 나왔다. 아픈 사람들이 시민으로서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건강이 아닌 난치가 세상의 기준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책을 펼치고 가장 놀란 부분 중 하나였던 표지 설명.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던 부분이었다. 생소하게 느껴지기도 전에 저자이자 작가는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표지는 기본적으로 시각 디자인이다. 그래서 시력이 나쁘거나,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 중에는 표지 디자인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이 책이 묵자 도서 외에 전자책이나 오디오북, 점자 도서로 만들어질 때 표지의 디자인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하고자 표지 디자인 설명을 이곳에 달아둔다. 비록 부족한 설명이지만, 더 많은 책에 표지 디자인 설명이 담기기 바란다. 자세한 내용은 2장의 「텍무새가 떴다!」를 참고하라.” 글을 읽고 내가 알량한 배려만 하는 사람은 아니었는지 반성했다.
책을 좋아하기에 책 표지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지만 한 번도 그런 생각을 못 했다. 디지털 매체가 발달하고 출판의 다양성이 존중되면서 책의 표지와 디자인 역시 책의 자아를 보여주는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책의 표지는 책 전체의 이미지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에 책 표지를 보고 자신의 취향일지 추측하며 책을 구매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나 또한 소장하고 싶은 책이 있을 때면 책 표지도 주의 깊게 보기 때문에 저자의 친절한 설명에 감동했다. 여기서 저자는 크론병이라는 난치병을 가지고 있으나 시각 장애가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중요한 점이라고 생각한다. 그도 다른 이들처럼 표지 디자인을 감상하는 데에 있어서 직접적인 불편이 없었을 테고,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었을 텐데. 그러나 그는 작지만 확실한 변화를 위한 날갯짓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나의 몸을 영영 믿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아마 그런 의심마저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아직 방법은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 몸이 나를 계속 배신하고, 내 통제 바깥에 있고, 내 의지를 벗어나는 순간들에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기도 한다. (33쪽)
경계선 밖으로 밀려나 처음 무소속이 된 저자의 감정을 표현한 문장, 그리고 사회에서 ‘건강한 청년’의 기준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이며 수많은 무소속들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문장이 많았다. 크론병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바로 윤종신이다. 윤종신이 크론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밝힌 직후 여러 매체가 대서특필하면서 크론병이라는 병의 존재를 알게 되었던 것 같다. 그런 크론병에 대하여 저자는 결과론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병의 과정과 발견한 계기, 당시의 심정까지 상세히 담아냈다. 2014년 저자가 벤치에 앉아 운동하는 친구들을 바라보고 있던 그 때에 내가 곁에 앉아있는 것처럼 생생히 느껴지는 글이 수록되어 있다.
이렇게 내 몸의 변화를 느낄 때마다 나는 다시 진단받는 기분이었다. 그때의 그 말이 자꾸 다시 떠올랐다. “크론병입니다.” 상실은 진단받던 날에 끝나지 않았다. 상실은 여전히 내 몸을 맴돈다. 상실은 ‘점’이 아니라 ‘선’이었다. (40쪽)
몸이 약해지는 것은 몸의 상실이 아니라 건강했던 나의 상실이라는 것, 그 상실은 순간에만 남아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성이 느껴지는 선이라는 사실이 슬픈 현실이었다. 한편으로는 당뇨병을 진단받은 이후에 아침저녁으로 약을 드시고 바늘로 찔러 혈당을 재야 하는 아버지가 생각났다. 나 또한 가족력으로 정상 체중임에도 불구하고 늘 고지혈증이 있다. 내가 고지혈증이 있다는 사실은 성인이 된 후 건강검진을 받고 알게 되었는데 그 이후의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먹을 수 없는 사람으로 변화해 있었다. 병은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선이었다.
물론 사람들은 은유 없이 사고할 수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자제하고 피하려 애써야 할 은유가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물론 모든 사고는 해석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해석에 ‘반대한다’는 것이 언제나 옳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수전 손택, 『은유로서의 질병』 중에서
수전 손택은 『타인의 고통』을 통해 알게 된 작가였다. 『은유로서의 질병』도 『타인의 고통』도 우리가 악의 없는 말로 던지는 날카로운 칼날을 지적한다. 그런 수전 손택의 말에 이어 작가는 ‘병신’과 ‘장애인’을 말한다. 우리 사회는 어떤 잘못을 하거나 누군가가 보기에 부족한 사람들을 병신이라고 칭한다. 병신은 병 병病자와 몸 신身을 합진 한자어다. 다시 말해 몸이 아픈 사람을 뜻하는데, 사회에서 병신은 잘못된 사용들로 부정적인 인식으로 똘똘 뭉친 단어가 되었다. 무슨 병이라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중2병’, ‘암 걸릴 것 같다’라는 말들이 인터넷에서 희화화된 순간 장애 인식이 삐뚤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라는 걸 계속해서 경고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겪어본 적 없는 삶을 존중할 수 없다면, 우리는 누구도 있는 그대로 존중할 수 없다. 체험이라는 낡은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야 하는 이유이다. (173쪽)
‘진짜 장애인’들의 채널에는 구독자도 별로 없는데 아임뚜렛은 어떻게 한 달 만에 저만큼의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까? 이 맥락에서 핵심은 장애보다는 장애에 대한 시선이다. 장애를 ‘진실하게’ 드러낸 이들은 그만큼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텔레비전에 나온 이들의 구독자 수조차 아임뚜렛의 10분의 일 정도였다. 장애인 당사자들을 제외하고, 그의 많은 구독자들은 단지 자신들이 동정할 수 있고 자신들에게 감동을 주는 특정한 형태의 힘겨운 모습, ‘그럼에도’ 희망을 버리지 않는 모습을 가졌을 뿐이다. (…) 의도부터 소비된 맥락까지 모두 명백한 ‘감동 포르노’였다. (193쪽)
질병과 장애, 청춘과 나이 듦,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헤집고 다니며 저자는 자신의 생각을 써 내려갔다. 그래서인지 글을 읽으며 더 와닿는 곳이 많았다. 혹여 공감이 어려울까 염려해서인지 다양한 이야기들로, 또 다양한 사연들로 설명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경계선에 서 있는 사람이다. 청년이자 만성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는 그는 면역 질환이기에 지금과 같은 코로나19에는 전혀 밖을 나갈 수 없다. 그러나 완전한 장애로 보지 않기에 교수님께 사정을 보내는 이메일 실력이 월등히 늘었다. 어디까지 아픈 것이 진짜 아픈 것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것일까? 사회는 청춘에게 건강하고 건장한 사람을 요구한다. 그러나 저마다의 건강 능력은 다르고 이는 존중받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는 존중보다 외면을 선택할 때가 있고, 혹은 소위 말하는 완전한 아픔을 가진 이에게만 동정의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장애와 비장애 사이에 서서 오히려 둘 다를 이해하며 다리의 역할을 하는 저자를 통해 이 사회가 조금 더 변화하기를 기대해 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plac08han'님은?
문(文)과 관련된 모든 것들을 모으며 그것들을 모두 사랑하는 20대입니다. 그래서 스스로를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글의 모든 것들을 수집하는 사람인 ‘문집가(文集家)’로 지칭하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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