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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의 배신

2012년 7월 19일 오늘의 책

노동의 배신

바버라 에런라이크 | 부키 | 2012.06

분류 : 사회/정치/법률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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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긍정의 배신』의 저자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워킹 푸어 생존기. 1998년부터 2000년까지 3년에 걸쳐 식당 웨이트리스, 호텔 객실 청소부, 가정집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매장 직원 등으로 일하며 최저 임금 수준의 급여로 정말 살 수 있는지를 체험했다. 구직 과정에서부터 감정과 존엄성을 말살하는 노동 환경, 영양은커녕 활동에 필요한 최소한의 열량조차 섭취하지 못하는 식생활, 부자들이 집값을 올려놓은 탓에 싸구려 모텔과 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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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해서 가난해지다

 

《4천원 인생》이라는 책이 있다. 한 언론사 기자들이 식당 종업원, 공장, 마트 등 저임금 노동 현장에 투입돼 그들의 노동을 직접 체험하고 쓴 책이다. 이 글들은 본래 해당 언론사의 주간지에서 기획된 기사였는데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에 힘입어 책으로 묶여 나온 뒤 베스트셀러가 됐더랬고, 이후에 유사한 책들이 줄줄이 나오기도 했다.

 

2000년 전후, 미국 경제 호황기에 쓰여진 바버라 에런라이크의 《노동의 배신》은 이런 기획의 원조 격인 책이다. 에런라이크는 “비숙련 노동자들이 받는 임금만으로 실제 생활이 가능할까?”라는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직접 저임금 노동의 현장에 뛰어든다. 그리고 식당 웨이트리스, 청소부, 요양원 보조원, 월마트 판매 직원 등으로 취업해 생활한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단순히 그들의 노동만을 체험해 본 것이 아니라 시급 6~7달러를 받으면서 생활이 가능한지 삶 전체를 실험해 본 것이다. 그녀의 목표는 “진짜 가난한 사람들이 매일 그러듯이 수입과 지출을 맞출 수 있는지 시험해 보는 것”(17쪽)이었다. 때문에 실험은 일하고 먹고 자는, 모든 생활 영역에서 총체적으로 이루어졌다.

 

또 한 가지. 그는 단지 보고 들은 것을 중계하는 수준을 넘어서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자신의 느낌, 그때그때의 깨달음을 기술하는 것에 망설임이 없었다. 이 역시, 교육 받은 중산층 작가의 삶과 저소득 노동자, 이 두 개의 삶을 병행하지 않고 한 영역에 몰입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게 아닌가 싶다.

 

그녀의 체험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은 호텔 청소와 메이드(가정집 청소)에 관련된 부분이다. 양적으로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도 했고,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이슈가 됐었던 청소 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떠오르게 했기 때문이다. 가령 그녀는 메이드 일을 하면서 양극화된 여성의 계급에 대해 생각했고,

 

먼지 터는 청소부는 물건과 장식품을 하나하나 들어내고 닦아야 하기 때문에 집주인이 걸어온 삶의 여정에 관해 제일 많이 알게 된다. 그래서 나는 W 부인이 명문 여대 졸업생이며 현재는 투자한 돈이 늘어나는지 줄어드는지와 아기의 장운동이 정상인지를 살피는 것으로 세월을 보내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 부부 침실에서 임신, 수유, 생후 6개월, 생후 1년, 생후 2년에 관한 책들로 가득한 책꽂이의 먼지를 닦으면서 제대로 된 탁아소에 아이를 맡기지도 못하는 매디(청소부 동료)가 이걸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 세상의 여성들을 종족을 잇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가르는, 아무도 모르는 구분법이 존재하고 그에 따라서 청소부 계급의 여성들은 이제 더 이상 자녀를 생산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도 몰랐다.(118쪽)

 

인간의 욕망을 좇아 점점 화려한 세상만 담는 대중매체 속에서 저임금 노동자들의 모습은 철저하게 지워졌다는 사실과,

 

일반적으로 저임금 노동 자체가 노동자 스스로를 천민처럼 느끼게 만드는지도 몰랐다. 저녁 식사를 하면서 텔레비전을 보면 등장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시간당 15달러 혹은 그 이상을 번다. 뉴스 앵커들을 말하는 게 아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은 모두 패션 디자이너나 학교 선생님, 변호사들이다. 따라서 패스트푸드 가게 점원이나 간호사 보조는 자기가 비정상적인 존재라고,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유일한 혹은 거의 유일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쉽게 도달한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그 생각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은 문화 전반에서 사라져 버렸다.(163-164쪽)

 

그래서 일반 사람들에게도 이들은 존재하되 보이지 않는 존재가 돼 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직업군으로서 청소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집단이고 우리가 보이게 되는 경우는 무슨 문제가 생겼을 때뿐이었다.(140쪽)

 

어쨌든 그녀는 이 저임금 노동을 최선을 다해서 했고, “작은 것도 정말 절약하며 생활했다. 술을 마시지도 않았고, 유행을 쫓는 옷을 사 입지도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이 항상 돈에 쪼들리는 원인으로 지목되는 어떤 사치나 낭비도 하지 않았다.”(265쪽)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궁핍해졌다. 가난했기 때문이다.

 

가난한 사람들만 아는 절약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난하기 때문에 추가로 드는 비용이 수두룩했다. 아파트를 구할 때 지불해야 하는 집세와 보증금이 없으니 일주일 단위로 방을 빌리면서 엄청난 방세를 내야 한다.(47-48쪽)

 

그녀 역시 엄청난 월세를 부담하는 원룸이나, 그마저도 구하지 못해 그보다 더 비싼 방세를 물어야 하는 모텔을 전전했는데 “이런 형편이니 차에서 잠을 자야 할 지경이 되지 않으려면 다른 부업을 구하든지 더 나은 직장을 찾아야 했다.”(49쪽)

 

마침내 그는 레스토랑 웨이트리스 일을 하면서 호텔 청소부 일을 구했고, 고된 노동에서 비롯된 몸의 통증을 잊기 위해 진통제를 먹어가며 두 일을 병행했다.

 

3시 30분쯤 되어서 내가 퇴근하겠다고 하자 다른 청소부가 지금까지 호텔 청소와 제리스의 홀 서빙 일을 함께 해낸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경고했다. “어떤 젊은 애가 닷새 동안 그렇게 했던 적은 있어요. 근데 당신은 젊지도 않잖아요.” 유용한 정보를 마음에 새기고 나는 트레일러로 급히 달려가서 진통제 애드빌 네 알을 삼키고, 몸을 굽히고 씻어야 하는 샤워실에서 몸을 닦고는 다음 근무 조에서 일할 마음의 준비를 했다. 마르크스가 ‘노동력의 재생산’이라고 불렀던 것, 노동자가 다음 노동을 준비하기 위해 해야 하는 일들이 겨우 이런 것들이었나?(71쪽)

 

한동안 그녀의 ‘투잡’ 생활은 성공적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평소 운동으로 단련된 그녀의 몸도 이를 오래 버텨내진 못했다. 만약 이 삶을 더 지속했다면 어땠을까. 그녀는 “몇 달 더 지나면 치과 진료나 진통제 또는 그 외의 약품 구입 등 의료비로 지출할 일이 분명히 생겼을 것”이며 실제로 가난한 사람들은 “의료보험이 들 형편이 안 되니 정기 검진을 받을 수 없고 처방전이 있어야 살 수 있는 약도 구할 수 없고 그러다 결국에는 그 대가를 치르게 된다.”(48쪽)고 말했다.

 

그렇다. 결국 그녀는 ‘실패’했다. 그리고 그녀의 실패를 통해 그녀와 우리는 동시에 깨닫게 된다. 시간당 6~7달러를 받으며 가난을 벗어나는 것은, 아니 벗어나기는커녕 지속가능한 삶을 영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는 우리가 이들에 대한 착취 위에 기생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그들이 “정당한 임금을 못 받으며 수고한 덕분에 우리가 편하게 살고 있다”(296쪽)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우리가 느껴 마땅한 감정은 수치심”이라고 일갈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계속 그렇게 살게 만드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고.

 

빈곤을, 줄이고 싶다면,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들고 계속 그렇게 살게 만드는 짓을 중단해야 한다. 임금을 너무 적게 주지 말자. 노동자들을 잠재적인 범죄자처럼 다루지 말자. 그들이 원한다면 더 나은 임금과 더 나은 노동 환경을 얻기 위해 조직을 결성할 권리를 주자.

정부에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이나 길에 나앉은 극빈자들을 제도적으로 괴롭히는 일을 중단하자. 어쩌면 오늘날 수많은 미국인이 생각하듯이, 빈곤을 줄이는 공공 프로그램을 집행할 예산을 확보하기가 정말로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물론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만.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아주 기본적인 원칙을 정해서 사람들이 넘어졌을 때 그들을 발로 차지는 않겠다고 다짐해야 한다.(311쪽)

 

에런라이크가 경험했던 노동의 배신에서 우리는 얼마나 떨어져 있을까. 지난 6월 30일 결정된 2013년 최저임금은 고작 4,860원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도공'님은?
가진 거 없이 가난해서, 한없이 가벼워서, 메인 데 없이 자유로워서 굶어죽기 딱 좋게 생겼지만 그래도 간만의 백수질이 몸서리치게 즐겁기만 한 '개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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