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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의 구애

2015년 3월 19일 오늘의 책

저녁의 구애

편혜영 | 문학과지성사 | 2011.03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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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하지 않은 이름이 가진 무료함


『저녁의 구애』 中 「동일한 점심」

편혜영 작가를 처음 만난 건 제37회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에 실린 「밤의 마침」에서였다. 평범한 듯하면서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나와 상관없는 일 같으면서도 왠지 신경이 쓰이는 분위기. 덤덤한 듯 사람을 끌고 들어가는 그 분위기에 끌려 다른 작품도 읽어보았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독서모임 '문학반'에서 편혜영 작가를 직접 만나고 오기도 했더랬다. 그때 읽었던 책이 바로 『저녁의 구애』다. 아파트에 난 창문 여러 개 사이로 사람들의 사생활이 힐끔힐끔 보이는 표지가 각 소설의 분위기를 짐작하게 해 준다.

그중 단편 「동일한 점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보자. 「동일한 점심」에는 말 그대로 매일 같은 시각, 같은 자리에서 같은 점심을 먹는 한 남자가 등장한다. 하루가 끝나고 다음 날이 되면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복사된 듯 되풀이되고, 그것은 작년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도 마찬가지다. '그'는 어느 날 아침, 전철에서 한 남자가 투신하는 것을 목격한다. 그와 '사내'는 하루에 죽는 106명 중 한 명의 죽음을 목격했다고 말하고, 그는 사내의 신문을 줍는다. 사내는 그가 일하는 복사실로 찾아오고, 그는 여러 장의 파지를 만든다. 그와 사내는 말한다. 우리가 민 것도 아니잖아요. 나중에 그는 경찰서에 참고인 자격으로 간다. 그곳에서 CCTV를 확인한 그는 사고가 나기 직전, 직후의 자신을 본다. 그는 남자가 뛰어내린 직후 자신이 주운 신문이, 대화를 주고받던 사내가 아닌 투신한 남자의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의자에 앉아, 106명 중 한 명의 죽음을 목격한 것은 처음이라고 생각한다. 경찰서에서 나와 복사실로 향한 그는 파지를 확인한다. 하지만 사내가 맡긴 유인물의 파지는 찾을 수가 없다. 밤을 새운 다음 날, 오전이 지나자 그는 평소처럼 구내식당으로 향한다. 그리고 똑같은 메뉴를 주문해서, 똑같은 자리에서 밥을 먹는다.

투신한 남자에 대한 목격이 등장하는 부분을 여러 번 다시 읽었다. 투신한 남자와 '그', 대화를 주고받은 사람이 모두 '사내'라고 쓰여 있어 누가 누군지 모호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나니 결국 그 모호함도 결국 한 사람이었던 '그'의 분열에 이바지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작품이 다른 작품들보다 인상 깊었던 게 그것이 드러나는 마지막 장면 때문이다. '그'와 대화하고, 복사실로 찾아와 종이를 맡기던 '사내'는 결국 자신이었다. 그것을 보면서 이 사람은 결국 끝까지 혼자구나, 싶어 슬프기도 했다. 결국 그와 같은 상황에 놓이고, 그래서 공감할 수 있었던 '타인'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편혜영 작가의 소설 속 등장인물은 하나같이 이름을 가지는 경우가 드물다. 특히 주인공은 더욱 그렇다. 이번 작품도 그렇고, 다른 작품들에서도 주로 '그'라고 등장한다. 그와 관계를 맺은 인물들도 '사내', '전처', '후배' 등 명확한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만 등장한다. 그래서 주인공의 얼굴은 항상 흐릿하다. 그렇게 관계를 맺은 인물들마저 그와 깊지 않거나, 깊었지만 예전 일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라 더욱 그렇다. 그렇게 주인공에게 제대로 된 '소통'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누구인지 분명한 이름을 가지지 않은 주인공은, 누구든지 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매일 같은 일상을 되풀이해야 하는 것은 이 작품의 주인공뿐만이 아니다. 사실 지금을 살아가는 모두가 그렇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내일이 확정되어 버린 나이는 더욱 그렇다. 아직 20대인 지금이야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할 얘기가 생기고, 그 이야기를 해 줄 누군가와도 만나게 된다. 하지만 좀 더 나이가 들면 아닐 것이다. 만나는 사람은 더욱 한정되게 되고, 어제와 내일은 차이가 없다. 결국 혼자였던 사내를 보면서 제일 처음 든 생각이 '나도 이럴까?'하는 것이었다. 나도 한 10년 후에는 이럴까? 매일 똑같고, 항상 무료할까? 사는 게 재미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사는 게 재미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청춘을 즐기는 게 삼십 대 까지라면, 그 후에는 뭘 해야 재미있을까? 무슨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이런 무료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렇게 이 작품을 읽고 나서 한참, 평생 아무런 목적 없이 무료하게 일하다, 아무런 성취감 없이 갈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똑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면서도 즐거워 보이는 경우가 여럿 생각나면서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가령 고등학교 선생님들의 학년실 풍경이 그랬다. 고등학생 때 상담을 받기 위해 학년실에 앉아 담임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있는 듯 없는 듯 구석에 앉아 선생님들이 대화를 주고받는 걸 들었다. 주말에 무얼 할지 계획을 잡는 등의 사소한 이야기였는데, 그 대화가 어찌나 재미있던지 기억해두었다가 집에 가서 메모까지 했다. 매일 똑같은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데도 다들 정말 즐거워 보여서 나도 저 무리에 있고 싶다는 동경마저 들 정도였다.

결국 살아가는 걸 재미있게 만드는 것은 사람인 것 같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내 얘기를 하고 그의 얘기를 들을 수 있는 관계가 있을 때, 수많은 대화가 오가는 무리 속에 있을 때, 제일 즐겁고 내가 즐겁게 살아가고 있다는 확신이 들 것 같다. 현대를 살아가는 이상 일상의 반복은 어쩔 수가 없다. 현대가 아니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려면 두 가지가 필요하다. 첫 번째, 내가 살아가면서 이루고 싶은 목표를 여러 개 만들 것. 두 번째, 계속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것.

「동일한 점심」의 '나'는 늘 혼자였다. 홀로 복사실에서 일하고 늘 홀로 점심을 먹었다. 다른 생각도 소통도 할 수 없는 그 공간 안에서. 이건 우리의 모습일까? 그렇다, 우리의 모습이다. 하지만 더 정확히 말하면 우리의 하나의 선택지다. 이것이 현실의 한 모습이니 다른 모습도 보고, 추구하라고 충고해 주는. 「동일한 점심」은 별다른 해결책 없이 우리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제시해 준다. 하지만 그것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그것에 대한 공감이라는 능력뿐 아니라 '상상'과 '희망'이라는 능력이 있기에, 다른 현실 속의 내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느끼고, 앞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해으니'님은?

모든 시기를 청춘으로 살며 많이 읽고, 쓰고, 느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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