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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

2008년 9월 17일 오늘의 책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

알렉스쿠소 | 푸른숲 | 2008.07

분류 : 어린이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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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몸으로 세상과 소통하기



<눈먼 소년 미로, 바다를 보다>는 ‘시각 장애’를 문제 삼는 책이 아닙니다. 이것은 온몸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소년, 그리고 그의 소울메이트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주인공 미로는 앞이 안 보이지만,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느낄 수 있습니다. 듣고 싶은 목소리는 귀로 부르고, 맛있는 음식의 냄새는 코로 모읍니다. 분신 같은 개 ‘볼로’의 털은 손으로 만질 수 있으며, 사랑하는 여자친구 ‘륀’의 입술은 입술로 느낄 수 있지요. 파도치는 바다도, 바다 위에 뜬 은빛 달도, 칠흙 같은 어둠도, 어둠에 하얀 구멍을 내는 눈송이도 마음으로 상상해 볼 수 있구요.

앞이 안 보이는 것은 미로에게 장애가 아닙니다. 그는 한 번도 ‘나는 왜 볼 수 없을까? 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같은 말을 하지 않습니다. 여느 소년과 다름없이 티 없고 밝은 모습으로, 오히려 다른 아이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을 발견하며 자유롭고 당당하게 살아가지요.

여기서 잠깐. 미로의 모습은 영화 ‘어둠 속의 댄서’에서 ‘I've seen it all’을 부르던 ‘셀마’를 떠올리게 합니다. 실명을 한 뒤에도 “나는 모든 것을 보았어요. 어둠도 보았고 작은 섬광의 반짝임도 보았어요. 나의 과거도 보았고 나의 미래도 어떨지 알아요. 내가 선택한 것들과 필요로 하는 것들을 보았으니 그걸로 충분해요.”라고 외치던 여인.

미로가 팔뤼슈 할아버지와 나이를 초월한 우정을 나눌 수 있는 것도, 얼굴을 모르는 륀에게서 소라 껍데기처럼 단단한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도 모두 ‘보는 법을 배우지는 못했지만 항상 눈을 감고 있어서 더 많은 것을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험, 해보셨나요? 눈을 감은 채 세상과 소통했거나 보이지 않는 것들과 교감했던 경험. 나는 해본 것 같아요. 아니, 해봤다고 말하는 게 옳아요.


 





하나, 내 눈물 냄새를 맡던 우리 집 강아지. 무슨 일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아요. 그저 몹시 속상한 일이 있었다는 것밖에는. 난 엉엉 울고 있었어요. 혼자, 방에서요. 그때 열린 문틈으로 강아지가 들어왔지요. 녀석은 눈물 쏟는 나를 예의주시하더니 이내 앞에 오도카니 앉았어요. 그리곤 ‘왜 그렇게 슬픈 모습으로 울고 있어?’ 하고 말 거는 것처럼 낑낑거렸어요. 앞발을 내 무릎에 기댄 채 눈물 냄새를 맡던 녀석의 촉촉한 코.

둘, 내 손가락을 핥았던 새끼강아지. 언젠가 학교에 살던 떠돌이 개를 만나러 다닌 적이 있지요. 녀석은 그해 한겨울, 학교에서 가장 추운 인문사회대 언덕 위에서 새끼를 낳았어요. 핏덩이들을 가장 먼저 목도한 건 나예요. 얼음 가루가 섞인 듯한 바람이 불던 날, 마침 삶은 달걀과 미역국을 챙겨 갔던 날, 개집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을 때 닿았던 보드라운 혀. ‘밥을 줘요. 배가 고파요. 살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것 같던 그 끌어당김.

셋, 외할아버지의 흔들의자. 할아버지는 흔들의자를 좋아하셨어요. 거실 한가운데에 놓인 그 의자에 앉아 텔레비전도 보고 책도 읽으셨지요. 돌아가시기 전, 할아버지의 앙상한 손을 잡아드린 적이 있는데요. 그 손은 마치 백양나무의 하얀 가지 같았어요. 돌아가신 뒤로도 얼마쯤 제자리를 지켰던 흔들의자에 앉을 때면, 등에는 백양나무의 가지가 느껴지고 코로는 그 나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었지요. 용서의 냄새, 화해의 냄새, 겸허의 냄새.


고마워, 미로. 눈을 감고서도 그렇게 온화함을 간직해줘서. 네 덕분에 그들과 다시 만났어. 네가 팔뤼슈 할아버지와 곰치를 잡고 륀과 헤엄을 치고 친구들과 술을 마셨던 바다에서.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느 순간에도, 그 어떤 행위에서도 그토록 깊은 합일과 고요와 기쁨에 가까운 그런 느낌’은 가져본 적이 없어.

같은 세상이라 해도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느끼기 마련이지요. 그러니까 어쩌면 모두가 보는 것을 더 잘 보려고 애쓰는 것보다, 모두가 놓치는 것을 기억하기 위해 마음 여는 것이 더 자유로운 방법 아닐까요. 미로가 그러했듯이. 특별히 성숙했으나 스스로는 특별하다고 생각지 않았던, 오히려 다른 사람의 특별함을 잘 찾아냈던 소년이 그러했듯이.



-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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