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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

2010년 3월 17일 오늘의 책

투명인간

H.G.웰스 | 문예출판사 | 2008.08

분류 : 소설

정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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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시대를 앞서간 문명비평가이며 과학소설의 아버지, 허버트 웰스의 문제작! 1897년에 발표된《투명인간》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투명인간,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과학소설이다. 이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투명인간이라는 존재를 통해 웰스가 탁월하게 그려내는, 사람들의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혐오감과 두려움, 그리고 투명인간 그리핀의 ‘보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동반한 미묘한 적대감’이다. 보이는 존재인 사람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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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인간이 이렇게 짠한 존재였다니!


플라톤의 <국가>에 언급된 '기게스의 반지(Ring of Gyges)' 이야기를 아는 사람이라면 투명인간이 되는 것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얻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평범한 양치기에 불과했던 기게스가 지진과 뇌우가 심했던 어느 날,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이 보이지 않게 해주는 특별한 반지를 발견하고 결국 그 반지로 말미암아 왕비와 간통하고 왕을 암살한 후 왕의 자리에까지 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버트 조지 웰스(H. G. Wells)의 <투명인간(1897)>을 읽어 본 사람이라면 오늘 같이 비가 오는 날 투명인간으로 돌아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고된 일인지 알고 있다며 난색을 표할 것이다.

신화의 영역에서 기게스는 반지의 거미발을 살짝 돌리는 것만으로 자신을 완벽하게 숨길 수 있었지만, 허점*이 있을지언정 과학의 논리를 빌린 웰스의 투명인간은 자신의 몸을 온전히 숨기기 위해서는 엄동설한에도 벌거숭이로 돌아다녀야 한다. 눈이 오는 날, 비가 내리는 날, 안개가 심한 날, 그 시대 런던처럼 먼지가 많은 도시 한복판을 걷는 것 모두 정체가 노출될 수 있기 때문에 위험하다. 후각이 민감한 사나운 개들을 피해 다녀야 하고 감기에 걸렸어도 기침 한번 편하게 할 수 없고 소화가 되지 않은 상태의 음식물도 정체를 노출시킬 것이므로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벌거숭이인 채로는 발자국이 남는 진흙 밭을 걸어 다니는 것조차 위험하며 옷을 걸친다 해도 장난감 고무코에 안경을 걸치고 가발과 마스크를 써야하는 등 기괴한 몰골이 되어버린다.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하숙집에 불을 지르고 나온 그리핀에게 투명인간이 되었다는 기쁨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이제부터 법망을 피해 수많은 일들을 계획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한 것과 달리 현실은 사사건건 투명인간을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존재로 드러내 보였다. 그리핀은 그가 보일 리 없는 사람들과 부딪히기 일쑤, 마차에 치일 뻔도 했고 1월의 한기에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급기야 그는 "제길, 이 따위 투명성이 뭐란 말이야!" 내뱉는다. 투명인간이 된 지 고작 십 분 만에 말이다.
 


르네 마그리트, <순례자>


그리핀은 점차 투명인간이 얼마나 무력한 존재인지(더군다나 '춥고 사나운 기후와 사람들로 북적대는 문명화된 도시'에서는), 몸이 투명해진다는 게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서 무턱대고 새로운 삶을 시작한 자신의 무모함을 깨닫는다. 그는 연구를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자신이 원할 때만 투명인간이 되려면 본래 모습으로 되돌아가는 방법을 마저 연구해야 했다. 그래서 아이핑이라는 시골 마을을 찾아가 조용히 연구에 몰두하려 했지만 옷을 입어도 옷을 입지 않아도 여느 사람과 다른 그의 모습이 그를 가만히 놔둘 리 없었다. 결국 정체가 탄로나 큰 소란을 일으키고 마을을 떠난다. 마을 사람들로부터 벗어나 배회하던 그리핀은 토머스 마블이라는 뜨내기를 위협하여 협조자로 삼지만 이내 배신을 당하고 우여곡절 끝에 대학동창인 켐프를 만나 그야말로 진정한 협력자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았지만 오히려 그것이 그의 비참한 죽음을 앞당기는 꼴이 되었다.

"켐프가 몸을 일으킬 수 있도록 사람들이 물러섰을 때 마침내 땅바닥에 쓰러진 벌거숭이의 처참한 몸뚱이가 드러났다. 온몸이 시퍼렇게 멍들고 골절상을 입은 몸뚱이는 서른 살가량 되어 보이는 젊은이였다. 머리카락과 수염이 하얀색이었다. 나이 탓에 샌 것이 아니라 색소 결핍증 때문인 듯 했다. 그리고 그의 눈동자는 마치 석류석처럼 보였다. 양손을 꽉 쥔 채 두 눈을 동그랗게 뜬 그의 표정에는 분노와 절망이 깃들어 있었다." (237쪽)

짐작하기로 그리핀은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이미 '타자'였으며 '소수자'였을 것이다. 투명인간이 되기 전부터 외로웠을 것이고 남들과 다른 그의 육체-그리핀은 켐프와 오랜만에 대면하면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한다. "그래. 그리핀이야. 저학년이었고 색소결핍증 환자와 다름없던, 키가 180센티미터에 어깨가 넓던 그 그리핀 말이다. 얼굴이 분홍빛에 하얗고 눈동자가 새빨갛던 그 그리핀 말이다." (126쪽)-에 이미 분노와 절망이 스며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는 투명인간이 되어 자유를 얻고 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투명인간이라는 속성은 그가 남과 다른 점을 더욱 극적으로 드러내 보이고 말았다.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그를 괴물처럼 간주했고 사냥하려 했고 실제로 그리핀은 복날의 개 패듯 그를 패대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개만도 못한 죽음을 맞이한다.

물론 그리핀이 '완전무결'한 희생양은 아니었다. 그는 드물게 다혈질인데다가 투명인간이 된 후로 분노가 더 거세어져 공포정치를 하겠노라 계획하기도 했고 연구비를 위해 은행에서 돈을 훔치기도 했으며 사람을 다치게도 했고 급기야 그로 인해 (여기엔 좀 더 복잡한 사정이 있지만 어쨌든)사람이 죽기까지 했다. 그렇지만 마지막 그의 죽음을 목도하면서 독자가 느끼는 감정은 적어도 '그래 죽을 놈이 죽었군.' '속이 다 시원하네.' 같은 감정은 아닐 것이다. 죽음에 이른 그의 육체가 다시 불투명해지면서 선명하게 드러났을 때 시체는 말할 수 없이 처참했고 투명해진 것은 오히려 자신과 다른 것을 극도로 혐오하는 우리네의 잔인성이었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인상을 말해볼까, 잠들기 전 좋은 벗이 된 책으로 읽는 것으로만 치면 소박한 재미가 있어 책장이 술술 넘어갔다. 한번 손에 잡기 시작하니 단숨에 읽히는 즐거운 독서였고 투명인간이 이렇게 짠한 존재인 줄은 정말 미처 몰랐다. 투명인간의 이면을 생각하니 올해 초에 읽었던 이상문학상 작품집에 실린 손흥규의 <투명인간>도 덩달아 떠올랐다. 그 투명인간이나 이 투명인간이 참 쓸쓸하군, 하면서.

*그리핀은 체내 색소를 제거하고 공기의 굴절률과 같도록 인체의 굴절률을 조작해서 투명인간이 되지만 여기에는 피할 수 없는 과학적 허점이 있다. 신체의 모든 부분이 투명해지면 빛은 망막에 상이 맺히게 하지 못하고 그대로 통과해버리기 때문에 투명인간 스스로도 아무것도 볼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247쪽, 작품해설 중에서)
 

오늘의 책을 리뷰한 '베짱이세실'은?
독서와 작문, 피아노를 치는 게 ‘진짜 취미’인 베짱이. 베짱이라고 에둘러 말하긴 했지만 현재 자발적 백조. 덕분에 집중적인 독서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 의향이 (아직까지는) 충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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