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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2019년 9월 16일 오늘의 책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 | 허블 | 2019.06

분류 : 소설

정가
$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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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선에서 질문까지, 모두 인상적이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의 희로애락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뿐, 섣불리 판단내리지 않을 때 소설가의 눈은 더없이 맑고 투명해진다. 명징하고 광대하게, 이 세계를 바로 볼 줄 아는 이 시선에서만 ‘인간이란 무엇이며, 인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이 생겨난다. 젊은 소설가의 첫 작품집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매끄럽게 이어지는 이야기 속에서 내가 생각하는 소설가의 눈과 입을 발견했다는 사실이다. 시선에서 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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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의 미래가 꼭 인간의 미래는 아님을


그때 나는 알았어.
우리는 그곳에서 괴로울 거야.
하지만 그보다 많이 행복할 거야. (본문 중)

 

편집자를 준비하는 나는 서점의 베스트셀러를 주기적으로 살펴보는 편이다. 솔직히 보다 보면 마음이 착잡하지 않을 수가 없다. 시대의 고민을 너무도 정확하게 반영하는 이 차트가 말하는 우리 사회가 그리 낙관적이지만은 않아서 그렇다. 매주 마치 제목만 달리한 듯한 책들은 지금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예쁘고 착하기만 한 말들로 사람들을 안심시키는 데에만 주력하는 책, 법칙이란 말로 주관을 객관으로 위장하는 사상서, 노력을 꾸준히도 세련된 말로 바꾸는 데 노력하는 책들 그리고 최근 들어서 주목받고 있는 SF 소설이 그렇다. 안방가와 영화계를 점령한 판타지 이야기의 열풍은 서점가에도 이어지고 있다. 소위 리얼리즘이 리얼리티를 못 이기는 판국이라 그렇다는 진단이 있다. 현실의 고됨을 굳이 여가에서까지 느끼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이제 SF의 이야기에 매료되고 있다. 이런 시국에 SF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낙관을 전달할 수 있을까.

 

김초엽 작가의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은 기술이 그려낼 미래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대학에서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 생화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작가의 이력이 말해주듯 현재 과학계의 가장 최첨단 기술이 그려낼 가까운 미래가 풍부하게 담겼다. 예를 들어 이 책에 수록된 「순례자는 왜 돌아오지 않는가」는 유전자 조작으로 만들어낸 신인류의 이야기가 담겼는데 그 기술의 개발자 성이 ‘다우드나’인 지점에서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의 발명가 제니퍼 다우드나의 이름을 떠올릴 수 있다. 크리스퍼가 현재 촉발한 온갖 논쟁이 현실화가 된 미래를 담은 이 이야기를 감안할 때 이는 절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기술이 그려낼 미래의 이야기라고 했지만 더 정확히 말하자면 기술이 아닌, 기술을 느끼는 인간의 감정이 더 주된 이야기다. 이 미래의 이야기 속에서 화자들은 끊임없는 데이터와 완전한 이해를 원하지만 불가해성에 부딪히고 만다. 그 벽의 물성(物性) 앞에서 그들이 되돌아가고자 하는 곳은 결국 한때 인간성이 존재하던 과거와 ‘그곳’으로 지칭되는 외부를 향한 향수다.

 

수빈은 순간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고 느낀 적 없는 무언가가 아주 그리워지는 감정이었다. (본문 중)

 

그토록 바라는 걸 다 가졌는데도 아침에 일어날 수 없는 무기력감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넷플릭스의 드라마 『친애하는 백인 여러분 Dear White People 』에 나오는 대사다. 인간이란 존재는 이렇게나 연약하다. 연약함은 인간성의 다른 말이다. 무심히 지나가던 사람의 눈총 한 번에 의기소침해지고, 모르는 사람의 친절한 인사 한번에 온 세계를 가진 듯하다가, 떠날 생각이 없는 듯한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현재의 일을 그르치고 만다. 완벽한 인간을 만들겠다는 기술의 계획이 역설적이게도 불완전한 인간의 손에 달려있다는 사실은 기술이 그려낼 미래의 비관마저 지우지는 못한다. 그것이 이 시대의 SF 소설로써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가 현재를 긍정하는 방법이다. 기술의 미래가 꼭 인간의 미래는 아님을, 그것은 현재 우리의 의지에 달려있음을, 기술의 미래를 부정하는 것은 곧 불완전한 인간의 존재와 현재를 긍정하는 것임을 이토록 멋진 이야기로 증명해내고 있다.

 

사는 것이 고통으로 차 있다고 말하고 쓰기는 참 쉽다. 증명할 필요가 없다.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지금 이 세계를 긍정하고, 낙관하는 이야기를 쓰는 것에는 노력과 능력이 필요하다. 비관으로 가득 찬 지금의 사람들을 설득해야만 한다. 그 설득은 꼭 논리적일 필요가 있을까. 비관이 지성의 영역이라면 낙관은 느낌의 영역이다. 이탈리아의 지식인 안토니오 그람시의 말이 떠오른다. 그는 파시즘이 지배한 이탈리아의 상황 속에서도 이런 말을 했다. “이성으로 비관하되, 의지로 낙관하라.” 이 말이 이렇게나 잘 어울리는 소설집이 아닐 수 없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펜벗 9기 독립기관'님은?
과학 전문 출판 편집자가 되고 싶은 아직은 예비 출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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