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5일 오늘의 책
박솔뫼 | 민음사 | 2020.05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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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쌓인 것들의 모양 『그럼 무얼 부르지』를 읽는 일은 박솔뫼가 오래 지속해 온 작업의 기원을 더듬어 보는 것과 같다. 그의 작품을 착실히 따라 읽어 온 독자들이라면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끊길 듯 계속되는 문장 리듬, 머뭇거리고 관찰하며 삶을 여행하듯 거니는 인물들, 명확히 규정할 수는 없지만 서로를 오래 생각하고 응원하는 관계들, 광주와 부산 또는 오키나와 등 개성이 뚜렷하지만 배경으로만 존재하는 도시들. 박솔뫼의 작품들은 “연...
나는 버지니아 울프가 좋다. 얼마간은 고문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그녀의 의식의 흐름대로 쓰인 작품을 읽어내기란 어려운 수수께끼를 푸는 일과 같다. 하지만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보면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할지언정 간간이 마주치는 아름다운 문장과 이야기에 기쁨에 휩싸이곤 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작품만큼 난해하지만 어디선가 만난 것만 같은 친근함이 느껴지는 박솔뫼 작가, 그리고 그녀의 『그럼 무얼 부르지』. 참 매력 있는 작가와 책이다.
며칠 전 나의 최애 예능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에 출연한 이효리가 한 말이다. “요즘은 포기할 건 포기하는 시대다.” 요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전부는 아니지만 꽤 많은 일부를 함축적으로 잘 표현해낸 말이 아닐까? 박솔뫼 작가님의 『그럼 무얼 부르지』에 등장하는 여러 명의 ‘나’는 악착같이 성취해내는 인물이 아닌, 포기할 건 포기하고 순응하는 인물들이다. 무엇보다 ‘포기하면 안 된다’는 의식이 없다. 그냥 그날그날을 살아내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친구를 만나고, 술을 마시고, 연애를 하고, 사랑을 하고, 영화를 보고 또 여행을 간다. 여행을 가서도 어디 근사한 곳을 가는 것이 아니라 한적한 어촌마을을 산책하고, 교회에 가고, 숙소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적당한 가격의 식사를 한 후,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난다.
책에는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차가운 혀」, 「안 해」, 「해만」, 「그때 내가 뭐라고 했냐면」, 「그럼 무얼 부르지」, 「해만의 지도」, 「안나의 테이블」이 그것이다.
겨울과 봄은 실제로 다르지 않다. 더하고 뺀 합으로 보자면 말이다. 되도록 일찍 봄이 해결해 주는 것은 없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_「차가운 혀」, 10쪽
「차가운 혀」의 ‘나’는 봄과 겨울이 결국은 같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싱그럽고 따스한, 에너지가 넘치는 봄과 찬 바람이 불고 생명이 얼어붙는 겨울은 잉여로움과 잉여롭지 못함을 가졌다는 면에서 서로 같다고 이야기한다. 봄의 잉여가 겨울의 잉여롭지 못함을 해결해주지 못한다는 것을 이야기하며 이 소설은 시작된다. ‘나’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 바에 출근하기 전까지 ‘나’는 잠을 자고, 바의 사장은 친구를 만나고 책을 읽는다고 했다. 사장의 삶이 다채롭고 풍요롭다고 해서 나의 풍요롭지 못함을 어찌해주지는 못한다.
사라지고 나면 무엇이 남나요? 결국 텅 비어버린 자신이 강렬해질 뿐이지. _「해만」, 94쪽
회사를 그만둔 ‘나’는 남쪽의 작은 어촌 마을인 해만으로 떠났다. 해만은 존속살인을 한 범죄자가 숨어들어도 좀처럼 수사하기 힘들만큼 외진 곳이었다. 유명하지도, 볼거리가 많은 것도 아닌 해만을, ‘나’는 수도에서의 월세보다 저렴하다, 날이 따뜻하지만 비가 자주 온다, 그러한 이유들로 찾은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이 고여 있고 끝없이 아래로 가라앉기만 하는 해만에서 모두를 멀리, 원래 멀었다면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찾았다고 했다.
여름이 끝나고 수도로 돌아온 ‘나’는 여전히 가볍고 바람이 통과하고 텅 비어있고, 질문들은 빈 공간을 빠져나가 돌아오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게 어떻지는 않았다. “사라지는 것을 계속 지켜볼 수 있을 뿐이었다.”(93쪽) 모든 것이 천천히 멀어지고 사라지고 나면 텅 비어 버림이 강렬해질 뿐이라고.
구어체가 뒤섞여있는 문장들을 읽다 보면 매력 있는 4차원인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듯한 기분도 든다. 이 책에 실린 소설의 절반 정도는 바닥에 앉아 침대 위에 컴퓨터를 놓고 썼다니, 나도 가능한 편하게 읽어보려고 했다. 그녀가 하고 싶은 말이 따로 있지는 않을 것이다. 문장 자체가 그녀 자신이고, 그녀의 속에 있는 무언가를 써 내려간 것이지만 큰 뜻이 담긴 문장을 쓰겠다고 천명하듯 이야기를 써 내려간 것은 아닐 거라고 추측했다.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바득바득 손으로 짚어가며 읽는 것도 그녀가 원하는 바는 아니지 않을까 나름대로 결론을 내렸다. 초판 작가의 말에서 “소설들도 나름대로 발이 달려서 어디로 간 것 같다”고 한 것처럼, 이 작품들에 어떤 발이 달려서 독자들을 향해 걸어가든, 아니면 독자들이 보기에 어떤 발이 달려있다고 해석하든 그건 순전히 독자의 몫이 아닐까? 무엇보다 여지가 많은, 텅 비어 있지만, 강렬한 그런 책이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riot22'님은?
반디앤루니스 월간 서평 이벤트 “9월의 리뷰어”에서 ‘이달의 리뷰어’에 선정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