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9월 13일 오늘의 책
차인석 | 아카넷 | 2016.07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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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이 책은 차인석 서울대학교 명예교수가 ‘근대성과 자아의식’을 소재로 1990년대에 발표한 글 여섯 편을 엮은 것이다. 이 글들은 세기말의 시대와 사회를 진단하고 다가올 세기를 전망하면서 철학에 부여된 과제를 모색하는 내용을 주제로 삼는다. 이는 전환기의 문명이 처한 위기를 점검하는 일인 동시에 인류가 진보를 이루어가는 역사에서 사상가들이 담당한 사유와 행위의 모습과 그 의의를 설명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
최근에 우리나라 사회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두 편의 소설을 읽었다. 한 권은 올해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한 이혁진 작가의 소설 『누운 배』이다. 주인공이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 현지의 신생 조선소에서 3년 동안 경험한 것을 이야기한다. 건조 중이던 배가 침몰해서 누워 버리고, 이것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주먹구구식 운영과 조직의 무능함이 드러난다. 이것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회사의 강압을 견디지 못하고 떠나고, 회장과 조직의 방침에 순응하는 사람들만 남는다. 일부의 사람들은 나름 회사를 혁신하기 위해 분투를 하지만 주인공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깨닫고 회사를 나온다.
다른 한 편의 소설은 최근 영화화되어 더욱 관심을 받고 있는 소재원 작가의 소설 『터널』이다. 한 가정의 가장이 운전 중 터널이 붕괴되면서 매몰된다. 언론과 네티즌의 동정으로 사건이 관심을 받고, 부실 공사에 관련된 기업인들과 정치인들이 공격을 받는다. 그러나 구조 과정으로 인해 터널 개통이 늦어지고 인근 주민들이 고통을 받자, 언론과 네티즌들은 이제 무리한 구조 작업을 강행하는 가족들과 구조자들을 비난한다.
이 두 소설을 통해 오늘날 사회의 모습을 바라봤다. 거대한 조직 속에서 한 개인은 부속품이 되어 버리고, 자극적 요소로 여론을 선동하는 인터넷 문화는 한 개인의 생명권을 짓밟는다.
아카넷에서 출간한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을 읽으면서도 두 소설이 계속 떠올랐다. 저자는 철학의 목적에 대해 이야기한다. 오늘날 철학의 역할은 끝났다고들 하지만, 철학은 각 시대마다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다.
"철학이 그동안 제기했던 물음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철학은 여러 학문들에 많은 것을 양보하면서 많은 것을 잃기도 했으며, 근래에 와서는 철학이 아직도 필요한가라는 말이 나오기까지 한다. 철학의 종언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논의가 있지만, 철학이 할 수 있는 역할에 관해 많은 견해가 여전히 제시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철학이 끝가지 버릴 수 없는 것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것이다." (113쪽)
"인간다운 삶이란 다름 아닌 바로 개개인의 자아실현이 가능한 삶을 가리키며, 철학은 이 삶의 영위가 소수집단에만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한 많은 집단에서 그러한 실현이 이룩될 수 있도록 이론을 모색한다. 또한 그 이론은 가능한 많은 사회가 용인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일반성을 갖추어야 할 것이나 이것이 그리 쉽게 얻어질 수 있는 것만도 아니다. 그러나 역사가 인간의 해방이라는 보편적인 목표를 향해 진행한다면 철학도 자유와 권리라는 보편적 이념들의 실현이라는 역할을 다해야 할 것이다.” (119쪽)
저자는 ‘철학은 각 시대마다 개인이 사회와 관계를 맺으면서 스스로의 자아를 실현하는 길을 제시했다’고 말한다. 고대 플라톤부터 근대의 헤겔에 이르기까지 철학은 개인이 주어진 환경인 자연과 세계를 극복하고 자아성을 찾아 자유로운 존재로 성장하도록 돕는 역할을 했다.
근대 이후부터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사회가 조직화되면서, 개인은 조직의 한 부속품처럼 여겨질 때가 많았다. 그러기에 근대 이후의 철학자들은 과학사회 속에서 어떻게 한 개인이 매몰되지 않고 자신의 자아를 찾아가며,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현대에 이르러서는 단지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인터넷을 통한 가상공간이 삶을 지배하면서, 이러한 가상공간 속에서 어떻게 개인의 자아성을 실현할지를 고민한다.
"과학기술 시대에서, 문명 비판가들은 개체성의 종언을 염려해왔다. 이들은 정치와 경제 그리고 문화의 주체로서 인간의 위치가 점차로 위축되어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사람들이 이 두려움에 대해 무감각해지는 것을 알게 된다. 인간의 자율성이 억제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없을 만큼 일상적인 삶이 과학과 기술에 의해 규정되었다는 것이다.” (132쪽)
결국 지금의 철학은 과학을 기반으로 한 조직사회에서, 그리고 인터넷이라는 매체 속에서 개인이 매몰되지 않고, 스스로의 자아의식을 찾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자아의식이 처음부터 주어지지 않는 것처럼 주체성과 개체성은 만들어져야 한다. 한 개인이 스스로 평화의 의미를 배우고, 일을 통해서 자신의 창의성을 구현하고, 자신의 사적 선택이 이웃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도록 책임을 지는 태도와 행동은 그가 다른 개인들과 공존 관계에서 성취하는 것이다. 이 개체성은 개인들이 놓인 사회체제의 환경에 의해 크게 규정되는 만큼, 앞에서 언급된 것처럼 정신적, 문화적 여건이 중요한 요인이라고 한다면, 이 여건 조성은 철학 교육에 의해 개인들의 내적 변화를 도모하는 것이다. 기존의 사회적 환경이 교육의 형태를 규정하고, 교육이 사회 성원들의 사유와 삶의 양식을 새롭게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가 교육을 통해 새롭게 구성되어야 하며, 철학은 이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139-140쪽)
현대는 조직의 생각이 개인의 생각을 대체하고 인터넷 여론이 개인의 생각을 대체한다. 한 개인이 주체적으로 세계를 인식하고 규정하려는 데카르트 이후의 근대성과 자아의식은 사라졌다. 현대 사회의 개인들은 아무런 비판 없이 눈에 보이고, 귀로 들려지는 대로의 세계를 받아들인다. 보이지 않는 거대한 권력의 힘이 작용하기도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개인이 그렇게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냥 조직과 대중의 생각에 따라가는 것이 편하기 때문이다. 남들이 비난하는 사람을 비난하고,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을 따라가는 것이 편하기에 개인들은 그러한 선택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한 소설처럼 한 개인이 매몰되고 피해를 입는다.
이것에 대한 경고가 철학과 인문학에서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은 다행이다. 저자 역시 평생 몸담아 왔던 학문인 철학이 오늘날 개인의 자아실현의 길을 제시해 주는 학문이 되기를 바라며 이런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글은 차인석 교수의 『근대성과 자아의식』 4부 '삶의 양식으로서의 철학'(111-133쪽) 부분을 근거로 쓰인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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