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3월 13일 오늘의 책
강화길 외 29인 | 작가정신 | 2019.01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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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라는 커튼이 휙 젖혀질 때 번쩍, 비춰 보이는 짧고도 강렬한 ‘생의 맛’! 한국대표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 박완서 작가의 8주기를 추모하기 위해 소설가들이 옹기종기 모여 들려주는 짧은 소설집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그가 41년의 문학 생활에 걸쳐 늘 관심을 두었던, 인간다운 삶이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저마다의 시선으로 읽고 써낸 결과물이다. 굴곡진 이야기 마디마디에 웅숭깊은 성찰을 담아냈던 고인의 문학 정신에 값하...
고 박완서 선생을 기억하며 강화길 작가는 ‘글을 쓸 수 없다고 생각할 때면, 나는 늘 박완서 선생님을 떠올린다.’라고 말한다. 김사과 작가는 ‘쥐보다 비천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도시의 인간들을 누구보다 사랑했다’라고, 정용준 작가는 ‘박완서 작가는 그 자체로 한국 문단의 아주 중요한 꿈’이라 하였으며, 함정임 작가는 ‘탕아가 돌아올 수 있는 집, 안길 수 있는 어머니. 선생님은 소설의 어머니이고, 소설의 집’이라고 표현한다. 이처럼 소설의 가치를, 생의 진한 맛을, 사람다움이란 무엇인지를 스스로 보여준 박완서 작가의 뜻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 발자취를 밟아나가는 후배 작가들이 많다는 것은 또 다른 방식에서 우리 문학의 자부심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 때문에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29인이 뜻을 모아 박완서 문학의 향수를 나름의 방식으로, 존경과 애정을 담아 쓴 글을 한 권의 책으로 엮어낸 이 기획이 새삼 의미 있게 느껴진다. 이후에도 지속할 수 있는 것이기를 바란다. 한국 문학의 발전을 응원하고 지지하는 1인으로서.
삶에 대한 섬세한 시선들, 그 날카로운 생의 묘사들
『멜랑콜리 해피엔딩』은 박완서 문학의 뿌리를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해 29명의 한국 대표 작가들이 모여 짧지만 강렬한 이야기의 힘을 담은 소설집이다. 생전에 박완서 작가가 쓴 콩트 형식의 짧은 소설만을 모아 엮은 『나의 아름다운 이웃』이 재출간되면서 나란히 선보이게 되어 의미가 더욱 크다. 특히 최수철, 조경란, 백민석, 백가흠, 김숨, 조남주 등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중견 작가부터 우리 문학을 이끌어가는 젊은 작가가 한데 모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박완서’라는 이름 아래에 이토록 다양하고 풍성한 이야기를 마주한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독서로 충분하다.
다정하지만 무능력한 남편을 맞아 하루하루를 고비처럼 느끼며 가족을 건사했던 외할머니를 추억하는 강화길의 「꿈엔들 잊힐리야」, 술김에 아들을 위해 비싼 레고 장난감을 샀다가 아내에게 환불해오라는 소리를 듣고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는 부자의 쓸쓸한 모습을 그린 이기호의 「다시 봄」, 먹고 싶은 거 못 먹고, 하고 싶은 거 못 하면서 오직 돈만 모았던 악바리 수부 이모가 가족들에게 보여준 헌신에 마음이 울컥해지는 조경란의 「수부 이모」 등 인간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아낸 작품은 꼭 박완서 문학과 닮았다.
하지만 며칠 동안 선영의 마음은 빈대떡처럼 여러 번 뒤집혔다. 정작 안아줘야 할 사람을 안아주지 못하면서 늙어가는 인생, 후회하면 무엇 하나. 인생 뭐 있어? 늙은 어머니를 안아주지 못했던 허전한 품에 그의 어린 딸을 대신 안아주면 어때. 그리고 이제는 그녀도 누군가의 따스한 품에 안기고 싶은 생각이 스멀스멀 들었다. (「안아줘」, 32쪽)
우리 삶의 위선과 모순을 한 편의 시트콤처럼 엮어 재치 있는 반전을 끌어내는 작품도 단연 눈에 띈다. 수정 테이프를 찾으러 탐정을 찾아간 의뢰인이 오히려 탐정의 심부름을 하는 기막힌 상황이 연출된 손보미의 「분실물 찾기의 대가3-바늘귀에 실 꿰기」, 크리스천 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에 부랴부랴 초등학교 때 세례를 받았던 기억을 더듬어 목사님을 찾으러 다녔다가 실패하자 불교 인재 전형을 통해 주지 스님에게서 추천서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엄마와 딸의 모습을 통해 입시와 진학의 우울한 현실을 재치 있게 그려낸 조남주의 「어떤 전형」, 이 세상 최고의 게으름뱅이로 불리는 구평모라는 인물을 통해 속도 만능주의에 빠진 사회의 허와 실을 보여주며 기막힌 결말을 끌어내는 최수철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이 바로 그러하다.
만 원에 일곱 장 하는 돈가스는 ‘가정의 평화’라는 성찬식 풍경을 완성하며 저녁 식사로 준비될 것이다. 그들은 서로에 대한 미움을 감춘 채, 가엾고 무해한 자기 딸의 평화에 금이 가지 않도록 고기를 질겅질겅 씹을 것이다. 이것이 비극보다 오래가는 시트콤의 힘이라고, 나 자신의 인생이라고 그녀는 생각한다. 얼마나 산문적인가. (「등신, 안심」, 52쪽)
민수 씨는 학창 시절에는 한 번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없었던 4.19 시민혁명이나 5.18 민주화운동의 정신을 비로소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당시의 열사들과 시대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수줍은 성격인 그는 광화문 사거리로 뛰쳐나가는 대신, 애꿎은 고객센터 상담원에게 고함을 지르고 흐느끼기도 하면서 빠른 환불 처리를 애걸했다. (「냉장고 멜랑콜리」, 106쪽)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남들의 말대로 나는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인가, 세상의 부조리와 싸우려는 자인가, 허황되게 마비와 각성 운운하는 과대망상가인가, 아니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우울증 환자인가, 그것도 아니면 그저 아내를 착취하며 무위도식하는 기생충인가.’ 그로서는 쉽게 대답을 얻을 수 없었다. 어쩌면 그는 그 모든 것이거나 그 모든 것이 아닌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대답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의 죽음」, 302쪽)
너무나 일상적인 것에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발견하고, 말랑말랑하면서도 씁쓸한 생의 맛을 고스란히 전달했던 박완서 작가였던 만큼 그녀의 작품을 오마주한 오늘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서도 그 이미지가 은근히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박완서 문학을 답습하지 않고 저마다의 개성을 잃지 않으며 자신만의 시선으로 삶의 기민한 움직임을 포착해낸 그들의 작품은 이미 그 자체만으로도 좋다. 이왕이면 함께 출간된 박완서의 『나의 아름다운 이웃』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읽으면 더욱 그 느낌이 잘 전달되겠지만, 꼭 그렇게 하지 않아도 충분할 듯하니 꼭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2comma'님은?
반디앤루니스 월간 서평 이벤트 “2월의 리뷰어”에서 ‘이달의 리뷰어’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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