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2월 13일 오늘의 책
정민 | 김영사 | 2012.03
분류 : 인문/교양/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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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일침, 그 한 바늘 끝에 달아난 마음이 돌아온다!” 한국의 대표적 지성이 처음 선보이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사유 고전에서 시대정신을 길어 올리는 지식인 정민 교수가 처음 선보이는 마음과 세상에 대한 사유. 우리 고전에 천착했던 한문학자, 문화사 전반으로 영역을 넓힌 인문학자가 내면의 웅숭깊은 성찰, 현실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까지 사유의 폭을 넓혔다. 사회 갈등 폭발이 우려되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잃어버린 나를 어떻게 찾을까? ...
오랜만에 마음을 맑게 하는 격조 높은 책을 대한다. 마치 댓잎 솔잎 훑고 온 청량한 바람을 마주하는 느낌, 바로 그것이다. 한문학자이신 정민 선생의 《일침》, 책의 품격이 여간 아니다. 책의 표지글씨도 선생의 필치라는데 고담(枯淡)하고 문기(文氣)가 있어 가히 일품이다. 선생이 바라보는 세상은 진흙탕 속, 먼지구덩이다. 서언(序言)에서 선생은 말한다. "혀는 칼이 되고, 말은 독침이 되어 여기저기서 날아와 박힌다. 정신도 덩달아 몽롱하다. 이럴 때 정문일침(頂門一針)이 필요하다. 그 한 바늘 끝에 막혔던 혈도가 풀린다. 달아났던 마음이 화들짝 돌아온다."(4쪽)그래서인가, 이 책의 부제가 "달아난 마음을 되돌리는 고전의 바늘 끝"이다.
책은 네 갈래 _ 마음의 표정, 공부의 칼끝, 진창의 탄식, 통치의 묘방 _ 로 묶었는데, "내 마음을 다스리는 공부가 차츰 사물과 세상을 향해 뻗어가는 추기급물(推己及物)의 순서를 의식"하여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각 갈래마다 25편씩 100편의 사자성어를 소개하고 있는데, 단 네 글자에 불과하지만 담긴 뜻은 넓고도 깊다. 어쩌면 이렇게 넉자 속에 세상의 이치를 담을 수 있을까! 한 꼭지에 대략 세 쪽을 넘지 않는 글이지만 중국 고대 사상가의 지혜에서 조선 후기 실학자의 통찰까지 폭넓게 담아내고 있다.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하여 옛 것을 빌어 지금에 대해 말하는 거겠지만, 넉자로 삶의 지혜와 의미를 얻게 하고 사유의 폭을 넓히며 문화의 담론을 이끌어낸다는 것, 가히 동양사상의 진수라 하겠다.
1부 '마음의 표정'은 일기일회(一期一會)로 시작하여 설니홍조(雪泥鴻爪)로 끝이 난다. 어느 경우나 첫 만남이 중요한 법. 일기일회는 바로 그 만남을 이야기 하고 있다. 소동파의 <승천사의 반 나들이>로 풀어내는 일별(一瞥)이 마음을 사로잡는다. "달은 어느 밤이나 뜬다. 나무 그림자는 어디에도 있다. 하지만 그날 밤 내 창문으로 넘어온 달빛, 그 달빛에 이끌려 벗을 찾은 발걸음, 마당에 어린 대나무 그림자,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이 있어 그 달빛 그 그림자가 일생에 하나뿐이요 단 한 번뿐인 것이 되었다. 만남은 맛남이다. 모든 만남은 첫 만남이다. 매 순간은 최초의 순간이다. 우리는 경이 속에 서 있다."(13쪽) 만남은 맛남이라…. 처음엔 오타인가 싶었는데, 곱씹을수록 이 말의 의미가 이해되어진다. 사람은 누구나 평생 잊을 수 없는 몇 번의 맛나는(경이로운) 만남이 있다는 말이리라. 이 만남으로 가치관과 삶의 방향이 바뀌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것이리라.
사물을 보아 이치를 살핀다는 관물찰리(觀物察理)에서 나는 안분지족(安分知足)을 생각한다. 고상안(高尙顔)의 노래 "소는 윗니 없고 범은 뿔이 없거니, 천도는 공평하여 부여함이 마땅토다(牛無上齒虎無角, 天道均齊付與宜)"를 소개하며 "뛰어난 재주로 명성과 공명을 함께 누리려 드는 것은 뿔 달린 범과 같다. 기다리는 것은 재앙뿐이니 어찌 삼가지 않겠는가."(24쪽)라며 찰리(察理 : 사물에 깃든 이치를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를 말하고 있다. 지난번 국회의원 선거에서 논문 베끼기로 망신살 당한 모 체육인의 모습이 그대로 투영된다. 관물찰리는 격물치지(格物致知)의 또 다른 표현인 듯하다. 눈으로 보지 않고 마음으로 보고, 마음을 넘어 이치로 읽을 것을 주문하는 옛 선인의 교훈이 오늘을 관통한다.
재미있는 표현도 있다. 마치 소녀시대의 노래 같은 지지지지((知止止止). 그칠 데를 알아서 그쳐야 할 때 그쳐라는 말이다. 이형기 시인의 낙화가 생각난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렇다. 사람은 떠나야 할 자리에 주저 물러앉아 있으면 결국 추하게 쫓겨난다. 지금 선 이 자리가 과연 있어야 할 나만의 자리인지 다시 마음을 가다듬는다. 배고픔을 견뎌야 무늬가 박힌다는 남산현표(南山玄豹)의 내용도 참 좋았다. 어린 표범은 자라면서 어느 순간 문득 짙고 기름진 무늬로 변한다. 사람도 마찬가지. 공부를 차곡차곡 축적해서 문득 반짝이는 지혜를 갖추게 된다는 대목인데, 김홍도의 <표피도 豹皮圖>와 너무나 잘 어울린다. 말해야 할 때와 침묵해야 할 때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어묵찬금(語墨讚擒)이다. "말해야 할 때 말하면 그 말이 옥으로 만든 홀(笏)과 같고, 침묵해야 할 때 침묵하면, 그 침묵이 아득한 하늘과 같다(當語而語, 其語如圭璋. 當嘿而嘿, 其嘿如玄天)"는 조현기(趙顯期• 1634~1685)의 말씀이 눈에 쏙 들어온다.
습정투한(習靜偸閑), 고요함을 익히고 한가로움을 훔쳐라는 뜻이다. 바쁜 세상에 심신이 초췌하다. 한가로움의 의미를 풀이한 이덕무의 원한(原閒)에 "마음이 한가로우면 몸이 절로 한가롭다"고 말하는 대목이 있다. 결국 마음이다. 이 1편의 끝은 설니홍조(雪泥鴻爪)이다. 눈 진흙 위에 난 기러기의 발자국이 무슨 뜻인가? 사람의 인생이란 것이 기러기가 눈 쌓인 진흙 밭에 잠깐 내려앉아 발자국을 남기는 것과 같다는 거다. 기러기는 후루룩 날아갔건만 어디로 갔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의 삶도 그렇다. 숨 가쁘게 살아가고 있건만 돌아보면 덧없다. 한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들이 오늘도 천년 근심을 지닌 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마음의 표정을 평안히 해야 한다는 거다. 모든 것에 마음이 시작인 것이다.
이 책은 일반 소설이나 여타 인문 책처럼 주욱 읽어가는 책이 아니라서 하루에 두어 개의 사자성어를 이해하고 사유하는 게 적절하지 않나 싶다. 사실 정민 선생의 이번 글은 조선일보 오피니언의 '정민의 세설신어' 코너에서 즐겨본 내용인지라 정겹기만 하다. 읽는데 얼마 걸리지도 않는 짧은 글 속에 하루 종일 자기성찰의 생각거리를 담아내는 필력은 선생의 학문적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저 감탄할 따름이다. 차고술금(借古述今)이라 해야 하나 박고통금(博古通今)이라고 해야 하나….어쨌든 옛 글에 비추어 오늘을 읽어내는 이런 간결하면서도 긴 여운을 주는 책은 그저 보배롭기만 하다. 항상 곁에 두고 한 편씩 읽고 생각하는 이 재미를 그 누가 알랴. 한문에 약한 젊은 세대에겐 고리타분하게 느껴질지도 모를 책이지만, 나에겐 오랜만에 품격 높은 책을 가까이하게 된 기쁨만이 있다. 한자에 그렇게 부담이 없다면 강추! 하고픈 책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eunbi'님은?
남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동백꽃 동박새를 유달리 좋아하는 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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