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2월 13일 오늘의 책
이연식 | 휴머니스트 | 2011.10
분류 : 예술/대중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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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몸, 누드, 거기, 절정, 팜 파탈, 춘화, 포르노… 음란함을 둘러싼 소동과 논란의 미술사 미술은 애초부터 음란했고, 음란하기 위해 존재했다. 음란함을 매개하는 것이 미술의 중요한 구실이었다는, 조금은 도발적인 전제가 이 책 《아트 파탈》이 탄생하게 된 계기다. 미술은 음란한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매체였고, 음란함은 매체의 기본적인 속성이다. 예컨대 사진과 영화는 발생 초기부터 음란한 내용을 담았고, 비디오와 인터넷은 포르노를 접할...
음란함은 매개와 경계의 문제이고, 이 책은 매개와 경계에 대한 책이다. 저자가 밝힌 이 책의 저술 의도입니다. 목표한 바를 나름 성공적으로 달성한 책이라고 생각되네요. 음란함, 성의 표현 등이 보수와 진보 간의 쟁취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공식적인 영역과 비공식적인 영역이라는 인식의 틈바구니에서 형성되고 결정된다는 주장이 설득력 있게 소개됩니다.
알몸, 누드, 거기, 팜 파탈, 춘화 등을 키워드 삼아, 음란함과 성적 표현이라는 측면에서 미술사의 변천과 관련 작품들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일단 듣기만 해도 야시시한 자극과 내밀한 상상력을 제공하는 단어들이잖아요. 그만큼 인간 존재에 깊숙이 연관된 것이 바로 성이고, 또 음란함에 대한 호기심 혹은 욕망이지요. 그것이 미술 작품의 형태로 나타나 대중의 관심을 받고 하나의 고급 예술로 존중받는 과정은 결국, 그것을 예술이라는 공식적인 영역의 일부로 보느냐, 비공식적인 영역에서 감상해야만 할 은밀한 만족감에 귀속되는 일이냐, 라는 관점과 입장의 부단한 충돌과 조율의 과정임을 보여줍니다. 그러면서 관련된 많은 작품들을 소개하고 그에 얽힌 이야기들도 친절하게 설명해 주죠. 저자의 언변이 좋고, 문장도 가독성이 있어서 잘 읽힙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소재 자체가 독자의 관심을 확 잡아끄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겠고요.
음란에 대한 동서양의 관점 차이나, 한국과 일본, 중국 등 동아시아의 춘화에서 발견되는 성 인식과 성문화의 제작과 보급 방식의 차이 등도 소개하고 있습니다. 미술에 관심이 있다면, 이곳저곳에서 얼추 주워들어 알고 있을 법한 이야기들도 많지만, 워낙 은밀하게 회자되는 소재를 전면으로 끌어내 이야기를 풀어낸 덕분에, 그 자체로도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입니다. 아무도 이야기해주지 않아서 몰랐던 내용들도 새롭게 알게 되었고요. 한마디로 읽을 맛이 난다는 거죠. 미술사의 결정적인 논란을 불러일으킨 장면들 중 상당수가 기실 당대의 성 관념을 벗어나 대담한 표현을 선보인 작품들로 인한 것들임을 상기해보면, 성과 섹스라는 키워드가 미술과 나아가 예술 전반의 핵심 요소 가운데 하나라고 봐도 무방할 듯싶습니다. 그리고 그건 다시 말해, 인간이라는 존재를 규정하는 핵심적인 요소라는 이야기도 될 테고요.

책은 잘 읽히는데, 다 읽기까지는 시간이 제법 걸렸어요. 책에 들어간 도판이 선명하게 인쇄되어 있어 보긴 좋은데, 너무 두드러지니 공공장소에서 대놓고 읽기가 생각만큼 쉽지가 않더라고요. 제 독서 시간의 팔 할은 왕복 2시간의 출퇴근길 지하철 안인데 말입니다. 특히 ‘상상 그 이상의 춘화’ 편에서는 좀 심하죠. 사실 춘화는 옛사람의 성적 기호나 표현법을 알아보는데 의미가 있을 뿐이지, 지금에 와서는 그다지 야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말입니다. 서양화도 누드를 소재로 삼긴 했어도 결국은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정받은 그림들인데, 여전히 뭔가 드러내놓고 봐서는 안 될 것만 같으니, 말입니다. 독서하는 과정을 통해, 이 책이 말하려고 하는 공식적인 영역과 비공식적인 영역, 매개와 경계의 의미를 실로 체감하게 되더란 말이죠.
‘거기’라는 키워드를 다룬 장에서 소개된 쿠르베의 ‘세상의 근원’은 몇 년 전 파리에 놀러갔을 때, 오르세 미술관에서 직접 봤었어요. 공식적인 예술작품으로 세계적인 미술관에 버젓이 걸려 있다고 생각하고 떳떳이 보긴 봤는데, 뭔가 민망한 느낌이 들어 이내 고개를 돌리지 않을 수 없었죠.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공식적으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널리 알려진 그림”이지만 “‘이 그림을 보는 나의 모습’은 왠지 ‘도색 잡지를 들여다보는 나’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죠. 정말 공감이 팍 되더군요. 게다가 이 그림은 원래 개인의 은밀한 감상을 위해 제작된 것이라고 하는군요. 봐라, 이게 진보다, 하고 혁신을 부르짖으며 만든 건 아니었단 말이죠. 그런 작품이 공적인 영역으로 나오는 과정도 흥미롭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미묘한 갈등이랄까, 인간 내면에 불러일으키는 유사 반응 같은 것들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누드화 위주이긴 하지만, 좋은 예술작품을 많이 감상했습니다. 춘화는 좀 그랬지만, 소개된 그림들은 아름다웠어요. 특히 베르니니의 조각 ‘성 테레사의 열락’은 도판으로 보는데도, 그 절정감이 여실히 느껴질 만큼 황홀하더군요. 흥미로운 이야기와 아름다운 그림들, 그리고 미술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만끽한 재미난 책이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유쾌한 열대어'님은?
책과 함께 하는, 심플하지만 유쾌한 삶을 추구하는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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