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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입니다

2020년 5월 12일 오늘의 책

김지은입니다

김지은 | 봄알림 | 2020.03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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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은 씨에게

 

김지은 씨 안녕하세요. 봄의 한가운데서 잘 지내고 계신가요. 잠시라도 산책하면서 꽃을 보셨는지요. 저는 『김지은입니다』를 읽고 김지은 씨에게 감사와 연대의 의미를 담아 편지를 쓰고 있는 독자입니다.

 

김지은 씨가 덤덤하게 남겨주신 기록을 읽고 그간의 진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고통스러운 경험을 하셨고 그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셨는데도 사실과 극도로 절제된 감정만이 전달되어서 놀랐습니다. 멈추지 않고 계속 읽었습니다. 김지은 씨가 견디신 시간 내내 진실은 변함이 없었지만 그 진실에 가해진 핍박은 상상 이상으로 험난했습니다.

 

가해자를 보좌하며 일하신 기록을 읽고 정신적, 육체적으로 혹독했던 업무 강도와 성폭력 예방이나 처벌에 대한 감수성이 전혀 없었던 환경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합의’란 있을 수 없는 위력이 존재하는 업무 관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투를 결심하시고 심리적으로, 경제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신 기록을 읽고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역시 독립운동가의 자손이라는 농담을 듣고 힘이 났다고 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김지은 씨도, 그 누구도 투사로 태어나지는 않는다고 느꼈습니다. 개인은 모두 연약하지만, 모두 용기를 가지고 있기도 합니다. 극한의 상황에 몰려 내적 갈등을 겪다가 본인과 사회를 위하자는 옳은 결정을 한 번 내리시고 어느 날 갑자기 용기의 아이콘이 되셨지만,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지금까지 겪어오셨습니다.

 

2차 가해자들의 졸렬한 행태는 제 상상을 뛰어넘었습니다.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편견이 드러나는 언행을 마주하고 치를 떤 적이 많지만, 김지은 씨는 권력자의 세력까지 가세하여 ‘피해자다움’에 대한 강요가 극대화된 집약체를 마주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잇단 사법부 재배정, 칸막이 하나를 두고 가해자와 같은 공간에 있어야 했던 재판 현장, 그리고 판결문 공개 등의 재판 과정에 대한 기록을 읽고서 부조리를 느꼈습니다. 공권력의 중심에 있는 인물과 싸우기 위한 수단이 공권력을 신뢰하는 것뿐이라니, 그 모든 과정에서 극심한 두려움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재판 결과는 유죄로 확정되었습니다. 그러나 궤도를 벗어났던 김지은 씨의 일상은 아직 제자리를 찾아가는 중일 테지요. 싸움의 전제 조건으로 자신이 건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티셨다는 내용을 읽었습니다. 어쩌면 스스로를 위해서 살기 힘들 정도로 괴로우셨을 때, 재판에서 진실을 밝히겠다는 목적이 있어서 버티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김지은 씨가 재판이 끝난 지금 어떤 시간을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부디 자신을 의심하지도 재촉하지도 않으며 천천히 즐거움을 연습하고 계시길 바랍니다.

 

무엇보다도 시간이 흘러가지 않는 고통 중에서도 삶을 선택해주셔서, 그리고 이 책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모진 상황을 겪으면서도 진실을 듣고 믿을 사람이 있으리라고 여겨주시고, 다른 피해자들과의 연결을 생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저는 진실을 말하고 듣는 용기에 조금 더 가까워졌습니다.

 

다시 한번 힘주어 말하고 싶습니다. 피해자다움은 없습니다. 성폭력은 모두 가해자의 책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고 있습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편지들을 보며 마음이 움직였습니다. 편지는 선한 마음을 유독 잘 담아내는 매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이 편지를 쓰면 김지은 씨와, 저와, 또 다른 독자들 사이에 작은 연결이 형성될지도 모릅니다. 사회가 김지은 씨라는 개인에게 지운 지나친 고통은 누구도 되갚아드릴 수 없지만, 그저 약간의 이해와 위로를 받아주실 수 있을까요.

 

김지은 씨는 더 이상 어떤 지나친 요구도 받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언젠가 김지은 씨가 운영하시는 서점에 방문하는 상상을 합니다. 그리 큰 공간은 아닐 것 같습니다. 어둑어둑하고, 나무 냄새가 나는 공간에 있는 작은 책상에서 김지은 씨가 책에 푹 빠져 계시다가 저를 맞아주실 것만 같아요. 그런 상상과 비슷한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다시 한번 연대와 감사를 표하며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건강하고 평안하시길 바라며,
독자 HJ 드림

 

 

오늘의 책을 리뷰한 'HJ'님은?
심리학 대학원 다니고 시 씁니다. 꿈은 건강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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