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을 바쳐 이룬 꿈이 무너지는 마당에 아들이 무슨 소용인가!” 희빈 장씨는 죽기 전에 자신의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문정이 영조 초년에 지은 <수문록隨聞錄>에 그 사연이 자세히 나와 있지요. 장희빈이 사약을 받는 자리에서 세자의 국부를 잡아당겨 불구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 어머니로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었을까요?
장희빈, 그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의 행복이었지요. 그 행복을 무너뜨린 사람은 바로 남편인 숙종이에요. 장희빈은 아들을 성불구자로 만듦으로써 숙종과 왕실, 나아가 가부장 사회에 복수한 것입니다. 억울하게 죽는 마당에 아들의 왕위 계승이나 자신의 명예 회복 따위를 기대하지 않았던 것이지요. 이러한 행동은 인륜을 저버린 비인간적인 모습으로 비칩니다. 한데 그것이 장희빈만의 탓일까요?
이 책 <왕을 낳은 후궁들>이 주는 대답은 ‘아니오’입니다. 저자 최선경은 장씨의 발악이 사회에 대한 저항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당시 사회는 원인 제공자 숙종에겐 아무런 죄를 묻지 않았어요. 겸손과 덕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여성의 희생만 강요했을 뿐이지요. 저자는 스스로 싸워 쟁취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가질 수 없었던 여성의 삶을 기존과는 다른 시각으로 봐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일곱 여인은 모두 후궁이자 왕의 어머니에요. 왕을 낳은 것은 분명 행운이지만, 그네들의 삶은 화려함과 거리가 멀었답니다. ‘축첩은 허용하되 본처의 지위는 보장한다’는 사회에서 후궁이란 신분 자체가 비극의 씨앗이었지요. 그들은 당쟁의 권력다툼에 휘말려 이용당하기도 하고, 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직접 정치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어렵게 중전의 자리까지 올랐다 하더라도 왕의 변덕에 의해 다시 미천한 신분이 되기도 했구요.
여성의 적은 또 다른 여성이었습니다. 뒷전에 물러나 있는 남성을 두고 왕비와 후궁 혹은 후궁들 사이의 갈등이 끊이지 않았지요. 살아서는 정비의 질투심에 치이고 정치적으로 이용당했으며, 죽어서는 왕의 어머니 대접 또한 제대로 받을 수 없었던 여인들. 역사 속에 체계적인 기록으로 남지도 못한 삶들. 책은 그들의 이야기를 너그럽고도 객관적인 시선으로 조명하며 소외된 역사, 드러나지 않은 역사에 주목합니다.
오직 성종의 사랑을 얻고 싶었던 폐비 윤씨, 장희빈과 인현왕후에 가려 주목받지 못했던 숙빈 최씨, 친아들 사도세자를 죽이라고 요청해야 했던 영빈 이씨, 대한제국 건국을 돕고 황실 재산으로 공익에 기여했던 황귀비 엄씨… 이들의 삶을 쫓다 보면 기존에 알았던 역사의 폭이 훨씬 넓어집니다. 왕위다툼의 내막이나 당파싸움의 진상, 이에 얽힌 왕실관계 및 군신관계, 민심 등을 파악함으로써 조선사회의 자취를 보다 뚜렷이 확인할 수 있거든요.
책 속에 그려진 후궁은 우리가 알던 것 이상으로 입체적인 존재랍니다. 그네들을 돌아보는 것은 왕을 이해하고, 조선의 역사를 복원하는 또 다른 통로이지요. 남편과 자식을 뒷바라지하다 말없이 사라져간 여성, 그들의 역사를 조명하는 따뜻한 시선이구요. 이제 후궁들을 ‘당쟁의 희생양’이나 ‘질투의 화신’ 같은 이미지에서 해방시킬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 책은 남성중심으로 닦여온 역사 속에 기꺼이 후궁들의 자리를 내주고 있습니다. 반쪽짜리 기록의 나머지 반쪽을 찾아가는 작업은 곧 진실한 역사로 통하는 환풍구 아닐까요.
- 컨텐츠팀 에디터 고은경(mybandi@bandibook.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