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 11일 오늘의 책
후지와라 신야 | 작가정신 | 2018.05
분류 : 여행/취미/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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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후지와라 신야는 1969년 여름 스물다섯 살 때에 떠난 인도 여행을 시작으로 ?이후 10여 년간 인도, 티베트, 중근동, 유럽과 미국 등을 방랑했다. 모국인 일본이 2차 대전 원폭 이후 서구 물질문명으로 인해 민족적 자의식을 완전히 상실했다 판단하고 이에 대한 타개책을 궁구하던 끝에 오른 방랑길이었지만, 그는 이내 끝 모를 무력감과 회의에...
후지와라 신야(78). 도쿄 예술대학 미술학부 회화과 재학 중에 중퇴, 일본을 뛰쳐나와 10년에 걸쳐 전 아시아를 방랑한 인물이다. 스물다섯 살이던 1969년을 시작으로 '버리기 그리고 준비하지 않기’ 오직 이 두 가지 준비만으로 혈혈단신 인도와 티베트, 유럽과 미국을 방황하던 청년은 이제 70세를 넘긴 지금도 여전히 여행하기를 쉬지 않고 있다. 개인적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 생수와 채소를 가득 싣고 방사선 피폭 현장으로 달려갔다던 기사 속 모습도 떠오른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젊은 시절 여행을 떠났던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내가 도쿄예술대학 미술학부를 중퇴하고 인도를 떠날 때가 1969년이었다. 그 당시 일본은 반체제, 반세계를 표방한 학생운동이 사회적 이슈였다. 젊은이들은 학생운동에 참가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친한 친구도 학생운동에 참가했다. 그 친구와 토론을 많이 했지만 맞지 않은 부분이 많았다. 그 친구는 일본의 안보, 교육제도, 정부정책 등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고, 의문도 많이 가지고 있었다. 그 친구를 이해는 했지만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은 세계적으로도 그렇고 일본에서도 거센 변화의 물길이 일고 있었다. 몸을 이용해서 생산하던 1차산업에서 다음 산업으로 넘어가는 시기, 즉 일종의 과도기적 사회였다. 난 당시 그런 현상으로 인간의 몸을 잃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학생운동 하는 학생들이 지녔던 문제보다는 더 깊은 차원의 고민을 했다. 이런 문제로 결국 여행을 떠나게 됐다. 시대적인 부분과 관련이 있었다. 한 마디로 나 자신과 시대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여행이었다. 지금 젊은이들의 여행과는 또 다른 부분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전 세계적으로 일고 있는 걷기열풍에 힘입어 많이 걷고 여행한다. 하지만 몸과 정신이 따로 노는 유체이탈 하는 듯한 현상을 자주 목격한다. 몸은 이것을 하는데, 정신은 딴 곳에 가 있는 모습이다. 우리 세대는 흙을 밟고 다니는 세대라 그러지 않은 것 같다.”
시대성과 인간성 회복을 위한 출발이었던 그는 인도와 티벳을 거쳐 『인도방랑』, 『티베트방랑』 이란 책으로 기록하고, 이후 동양의 전모를 파악하고자 길을 나선 400여일 간의 기록을 이 책 『동양방랑』으로 펴낸다. 약 40여년전의 여행기로 방랑 3부작의 완결편이다. 제23회 마이니치 예술상을 받았다. 국내에 소개되었다가 절판되었는데 이번에 다시 개정판으로 출간되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 시작해 시리아, 이란, 파키스탄, 인도, 티베트, 미얀마, 태국, 중국, 홍콩, 한국을 거쳐 일본에 이르는 기나긴 여정을 글과 사진으로 기록하게 된 배경에는 여행과 삶의 임계점에 도달해 인간이 귀찮아지기 시작하며, 정신과 육체의 쇠약상태에 시달리던 저자의 모습이 있다. 잃어버린 인간성을 회복하고 존재의 의미를 찾고자 선택한 것이 동양에서의 방랑이었다고. 500 페이지의 여행기 끝에 그는 이렇게 담담히 이야기한다. 그 글귀에 자꾸만 눈이 간다.
이 긴 여행에서 나는 인간을 만나는 것을 과제로 삼았다.
멍청한 인간이든 고귀한 인간이든 눈앞에 나타나는 모든 인간을 일생일대의 인연으로 여기고 소중히 대하기로 했다. 변두리 유곽의 창녀에서 심산에 틀어박힌 스님까지 그 어떤 인간이든 철저히 사귀기로 했다. 여행의 중반, 콜카타에 도착했을 무렵 갑자기 나는 회생했다.
또다시 인간이 한없이 재미있어졌다.
얼어붙은 여행이 녹기 시작했다. 나 자신을 되찾았다.
누구에게나 ‘빙점’은 있다.
반드시 찾아온다.
인간의 빙점을 녹이는 것은 인간이다. 인간의 체온이다.
(515쪽)
그 모든 것의 빛과 그림자에서 ‘성’ 과 ‘죽음’을 보았다는 지중해의 도시에서 스스로를 한 마리의 발정난 곤충이라 칭하며 음란 서적 표지의 여자를 찾아나선 여정( 결국 그 여자는 트랜스젠더로 지중해에 수장되었다고 ) , ‘스님’이란 별명을 가진, 목을 매는 게 특기인 치앙마이의 실성한 매춘녀의 이야기 등 무엇인가 끈적거리고 노골적인 날 것의 풍경들은 그에게 인간의 본성과 욕망을 더 절실하게 자각하게 해주었던 것일까.
호주머니에서 다시 여자가 인쇄된 종이를 꺼냈다. (중략)
남자가 여자로 변하려고 할 때의, 일종의 광기 같은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러자 갑자기 교태가 고뇌의 표정으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하산은 신을 거역한 것이다. 신이 부여한 조형을 거부하고 여자라는 성을 손에 넣으려고 했다. 어쩌면 이 사진 속의 여자가 발산하는 광기, 미칠듯한 여성성은 신을 향한 저항의 증거일지도 모른다. (중략)
그리고 문득 나를 450킬로미터나 내달리게 한 것은 그런 감미로운 광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137쪽, 지중해/앙카라)
- 살고 싶어서 목을 맸을 수도 있어요. 어쩌면 남보다 자신을 더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들이 자살을 하는 건지도 몰라요.
- 맞는 말이에요. 깨오파는 다른 여자들보다 외로움을 많이 탔어요. 죽겠다고 난리를 피우면 사람들이 보살펴주고 챙겨주니까 금방 좋아서 헤헤거리고 다니죠. 하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면 또 저러나보다하고 사람들도 심드렁해져요. 그러면 또다시 반쯤 죽을 작정으로 목을 매는 거죠.
(353쪽, 치앙마이)
이렇듯 작가가 책 속에서 ‘혈액이 요동치는, 선악과 미추가 뒤섞인 세계’라고 일컫는 동양의 모습은 마냥 아름다운 모습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동양은 '존재들이 무르익고, 썩어가고, 그것이 거리를 이루고, 또는 발효되어 대지의 냄새처럼 발산하고,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온 세상을 덮어버리는 저 뻔뻔스러운 냄새를 간직한 공간'이다. 그리고 그 공간 속의 우스꽝스럽기도 하고 때론 어리석고 못나보이는 사람들의 생활 속에서 남루한 '일상'을 건져내며 삶을 이야기한다. 그들은 '변두리 유곽의 창녀에서 심산에 틀어박힌 승려'까지 다양한 군상의 모습이다. 그 모습들을 구성력이 뛰어난 필력으로 엮어내었다. 게다가 어둡고 촛점이 맞지 않음에도 눈길을 끄는 사진들은 그 글들과 절묘하게 어울린다. 물론 '방랑'이라는 단어와도 매우.
그가 만난 사람들은 삶을 견뎌야 한다는 명제 앞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들이 가득했다. 뒷골목, 시장, 유곽의 사람들이라 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조금은 무겁고 쓸쓸하다. 1944년생이니 30대 말에 이런 여행을 하고 이런 글을 써냈다는 건데!! ( 난 그 즈음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더라....? ) 여행을 통한 깨달음은 저마다 다르겠지만 섣부른 동정같은 감정의 군더더기 없이 서술한 그의 여행기를 읽다보면 조금은 그의 기분이 느껴지는 것 같다.
사람 사는 세상의 거짓 없는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던 그는 이제 "여행을 할 때 눈으로 얻는 정보를 경계하고 본질을 알려고 노력하라" 라고 말한다. '관광지' 에 도착하여 '포토존'에 도착하여 인증샷을 찍고 그 다음으로 이동하기 바빴던 여행에 익숙한 나로서는 그의 책을 읽으며 이런 여행을 위한 삶의 계기는 나에게는 어떤 것일까 생각해보게 된다. 아마 나는 그동안 볼거리에 매혹당하는, 그리고 남에게 '보이기 위한' 여행을 해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이 책이 내게 다가온 것도 그 ‘계기’ 중에 하나이려나.
오늘의 책을 리뷰한 'hillsea'님은?
반디앤루니스 월간 서평 이벤트 “6월의 리뷰어”에서 ‘참좋은리뷰’에 선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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