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6월 11일 오늘의 책
마르셀 프루스트 | 은행나무 | 2014.04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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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존재하는 곳은 작가가 아니라 독자의 마음속이다.” 유년기의 독서를 통해 예술의 절대적인 가치를 반박하다 프루스트는 대작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쓴 소설가로 기억되지만, 그에 앞서 번역가였으며 미술 평론가이기도 했다. 이 책은 프루스트의 예술론을 명확히 드러내는 역자 서문 두 편과 화가들에 대한 에세이 여섯 편을 소개한다. 특히 과 화가 에세이들은 국내 최초의 전문(全文) 번역 출간으로서 의미 깊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입체적, 감...
내가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아버지가 책을 읽어주셨다고 하니 그것까지 포함하면 나의 독서 시간은 23년쯤 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책을 읽었다. 세상엔 참 재미있는 게 많이 널려있긴 하지만 독서도 그에 못지않았고, 교양인 또는 지식인이 되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있었다. 그러다 불과 3~4년 전부터 심하게 회의에 빠졌다. 고민을 간단히 추려보면 다음과 같다.
- 읽어 봤자 며칠 지나지 않아 내용을 잊어버리고 중요한 정보 등은 곧잘 잊어먹기 일쑤인데 일부러 독서에 치중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 책을 읽을 때 글쓴이의 의도와 그가 전하려는 바, 또는 교훈을 잘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내가 알아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한가?
- 여러 책을 열심히 읽는 게 중요한가, 한 책을 깊게 파는 것이 중요한가?
그 외에도 독서에 관하여 자주 생각한다. 독서보다 경험이 중요하지 않은가, 책을 읽은 사람과 아닌 사람 간 실제로 차이가 있나,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하는 사람이 실제로 열심히 책을 읽었을까… ….
독서의 이유, 방법, 효율성, 결과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해 온 결과 스스로 결론 낸 바도 있지만, 여전히 거의 모든 문제에 답을 찾지 못했다. 찾을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에서 독서를 대하는 태도나 책을 읽는 방법에 내게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논어·맹자, 톨스토이의 책을 읽으며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은가 생각하기도 했지만, 『이방인』을 읽고 그보다 독자의 이해와 자신의 견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시카고 대학의 고전 읽기 프로그램 『시카고 플랜』을 보고 고전 읽기가 지성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되긴 하는구나 생각도 했다. 또 책을 읽을수록 그 너머에 읽어야 할 책이 수두룩하다는 막막함에 최대한 많은 책을 읽으려 노력했지만 그럼에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이해하기 어렵다고 생각하는 책이 있으면 여러 번 읽으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정리했지만 아무래도 독서에 관한 고민은 계속 이어지리라.
프루스트의 『독서에 관하여』는 번역서 서문의 제목이면서 그가 쓴 여러 산문이 엮인 책이다. 옮긴이가 프루스트의 예술론이 잘 드러났다고 판단한 산문이 엮여 있는데, 미술가에 대한 평가나 그림에 대한 글도 함께 실려 있다. 여기서는 다른 산문보다 ‘독서에 관하여’라는 글을 중점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프루스트는 이 글에서 독서 자체보다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묘사하는 데 중점을 둔다. 독서와 관련하여 부모님이 책 덮고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른 일, 책을 읽을 당시 주변 환경이나 주변을 돌아다닌 일, 그에 대한 단상 등. 우리는 책 속 주인공의 이야기를 더 알고 싶어 하고 그에 애정을 쏟지만 우리의 진짜 인생은 ‘내일이면 잊힐 페이지 위의 어느 이름에 불과한 존재들’과 격리되어 있음을 상기한다. 어린 시절 독서가 남긴 것은 그 책의 내용이 아닌 우리가 책을 읽었던 시간과 장소에 관한 기억일 뿐이라는 이야기도 덧붙인다.
독서의 한계에 관해서도 서술한다. 책은 내가 특히 관심 있어 하는 분야를 더 보여주지 않고 그 필요에 따라 전개되어갈 뿐이며, 내가 ‘유급해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외교관이 되어야 하는지’ 답해주지 않는다. 즉, 책은 ‘작가에게는 결론이지만 독자에게는 시작인 것이다.’ 책은 독자에게 해답이 아니라 그 해답을 찾아가게끔 욕구를 불어넣어 주는 데서 그친다. 감상자는 안개를 꿰뚫어 보고 싶어 하나 그 안개는 화가가 예술에 남긴 최후의 단어다. 결국 ‘독서는 정신적인 삶의 도입부’고 안내자이지만, ‘그것을 구성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런 개입이 없다면 사람은 이것들을 망각한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독서는 ‘열쇠’로 존재할 때만 유익하고 정신의 개인적 삶에 눈을 뜨게 하는 대신 그것을 대체하려 할 때 위험해진다.
프루스트의 주장은 내용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굉장히 흥미롭다. 이 글은 프루스트가 러스킨(John Ruskin)의 『참깨와 백합』을 번역한 후 쓴 서문이다. 『참깨와 백합』은 러스킨의 독서에 대한 견해를 명확히 드러낸다. 러스킨은 삶 속 독서의 절대적인 존재감, 교훈적인 역할을 주창하는데, 재미있게도 프루스트는 역자 서문에서 이와는 반대되는 생각을 펼치고 있다.
프루스트는 이 서문에서 독서의 의미가 책의 내용과 교훈에 있지 않고 읽는 이의 주관적 상황과 개인적 의미에 있다고 말한다. 독자에게 더 많은 비중을 두는 셈이다. 프루스트는 독서란 일종의 우정으로서, 필요한 때만 꺼내 읽을 수 있으며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여러 피곤함과 염려가 전혀 개입되지 않기 때문에 순수성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책이 웃긴 만큼만 웃고, 아무리 저자가 유명하다고 해도 내가 지루하면 책장을 덮고 다시 책장에 꽂아 넣을 수 있지 않은가. 결국 프루스트는 저자보다 독자에게 방점을 찍는다.
프루스트의 생각은 현재에도 닿아 있다. 요즘에는 독자가 받아들이고 해석하는 그 자체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일단 이런 주장에 유보적이다. 그의 말대로 작가가 전하려는 핵심내용과 교훈을 제한다면 독자의 해석은 공허해지지 않을까?
수업시간에 푸코를 다루다가 니체 이야기가 나왔고, 니체의 관점주의 인식론과 반정초주의 해석학이 다루어졌다. 관점주의 인식론은 대상에 대한 지식은 주체의 이해관계나 관심을 버리고는 얻어질 수 없다는 관점이다. 즉 관찰자에 따라 대상은 다르게 인식된다는 이야기다. 한편, 반정초주의 해석학은 '독자는 선입견을 버리고 텍스트에서 원저자의 의도를 투명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정초주의 해석학에 대한 반발이다. 독자의 능동적 성격을 강조하고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한다. 저자란 곧 주체이자, 강고한 휴머니즘이다. 따라서 '저자의 죽음'은 인간의 종언이며 반인간주의로 연결된다. 이에 기반을 두어 니체는 오랜 기간 서양철학사가 다루어 왔던 본질과 진리를 파훼하는데 몰두했다. 니체 이후로 이어진 논의는 여기서 파생된 이야기들이다. 이제야 강신주가 왜 '철학vs철학'에서 그리도 본질을 강한 어조로 부인했는지 이해가 간다.
수업 내용을 듣다 보니 갑자기 이 책이 기억났다. 저자의 죽음을 이야기하고 독자에게 힘을 주는 일련의 과정은 이런 철학적인 큰 흐름의 일면이었다. 존재론의 인식 틀을 부정하고 변화 그 차제가 존재라는 니체의 발언. 논리적으로는 꽤 설득력 있지만 그 끝은 어딘가 불안하다. 언제나 드는 생각이지만 더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다짐한다. 그와 더불어 독서도 당연히 이어지겠지만, 와중에 읽는 행위에 관한 고민도 계속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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