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1일 오늘의 책
조해진 | 문학과지성사 | 2021.03
분류 :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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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뒤에 오는 가려진 진심들 끝난 자리에서 다시 떠오르는 삶의 시작점 호재와 함께할 미래는 방금 전에 취소됐다. 이제 내 삶은 이 커피숍의 반복적인 연쇄와 같을 거라고 뒤이어 생각하자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꾸부정히 앉아 혼자 커피를 마시는, 기차 칸처럼 연결된 수많은 밤의 커피숍들이 고독한 링을 벗어난 내 삶의 새로운 무대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러나 내가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이런 것인지도 몰랐다. _「흩...
읽는 내내 외로움이 온몸을 휘감았다. 마지막 책장을 덮자 각 단편들 속에 스며들었던 외로움의 파편들이 거대한 집합체가 되어 나를 덮쳤다. 외로움에 물성을 부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차가운 쪽에 속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책에서 나를 덮친 외로움은 왠지 모를 따스함이었다. 이 글은 그 따스함의 근원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할 수 있다.
《환한 숨》은 조해진 작가의 네 번째 소설집으로 2019년 김승옥 문학상 우수상 수상작인 〈환한 나무 꼭대기〉와 자전소설인 〈문래〉를 포함하여 총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각 단편은 세상에서 소외되고, 사회의 인정을 받으려고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인물과 그런 사회의 냉혹함을 그리고 있다.
〈환한 나무 꼭대기〉의 강희는 대학 동기 혜원의 간병인이다. “기댈 데가 없”는 혜원은 자신의 아들에게 매일 이메일을 보내는 조건으로 강희에게 홍천의 아파트를 넘겨준다. 강희는 집 근처 기도원에서 마치 혜원의 아들일 것만 같은 탈영병을 만나게 되고 그에게 먹을 것을 챙겨준다. 다음 날도 그를 위해 식사를 준비해 가지만 그는 나타나지 않았고, 이에 강희는 “외로움”을 느낀다. 탈영병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세상의 시선으로 인해 그녀의 외로움은 “불안감”으로 바뀐다. 기댈 곳 없는 외로운 이들은 그렇게 서로를 보듬으려 노력한다.
모든 외로움이 보듬어지는 것은 아니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제로의 상태”로 살아가는 〈흩어지는 구름〉 속 ‘나’는 조카의 돌잔치에 참석할 겸 동생을 찾아가지만, “각자의 외로움을 안고 끊임없이 빙글빙글 돌아야 했던 시절”을 보낸 두 사람은 서로를 보듬지 못한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외로움은 외로움을 알아보는 모양이다. 〈숨결보다 뜨거운〉의 ‘그녀’는 “지난 5년 사이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치매 진단을 연거푸 겪으면서” “절망에 가까운 외로움”을 감당해야만 했다. “촉망받는 시인”인 ‘나’는 사실 “그저 언제라도 이 세계에서 증발할 수 있는 임시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는 암환자다. 그녀는 나의 시를 읽고, “지구상에 살지 않는다는” 아들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들의 소통은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치유의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또한 소설은 “감각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경계선에 대해 이야기”한다. 인간소외의 현장에서 마주하게 되는 외로운 무기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묻는 것이다. 〈하나의 숨〉의 ‘나’는 현장실습을 나간 학생 하나로부터 전화를 받는다. 그러나 나는 “학교로부터 계약을 연장하지 않겠다는 통보를 받”아 “노동의 열도랄지 밀도를 유지하는 게 쉽지 않”은 상태였다. 그리고 하나는 결국 자살한다. 동료 교사는 나에게 “어설프게 나섰다가 나중에 감당 못 하면, 그게 더 못할 짓”이라고 충고한다. 나는 그녀의 말을 “모두가 공평하게 비정하다면 한 사람의 비정은 모두의 비정으로 희석된다고” 받아들인다. 아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경계선 사이로〉의 여진은 파업으로 해고된 선배 기자들 덕분에 신문사에 취직할 수 있었다. “씻고 먹고 마시는 행위조차 노동 같기만 하던 때”를 보내고 나니 자신의 자리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연진은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것을 그녀의 잘못이라고 할 수 있을까? 〈파종하는 밤〉에는 수은중독으로 죽은 “만 스무 살이 채 안 된 소년들”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중 가장 어렸던 M이 나의 꿈속에 찾아온다.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M의 이야기를 작품으로 완성”하려고 했으나, M의 이야기가 작품으로 만들어지기도 전에 공장은 철거되고 만다. 후배 경수가 이해하지 못한 “미안하다”는 말은 당연히 M에게 한 말이었을 테다.
그런가 하면 외로움은 자부심, 용서, 화해의 형태로 승화되기도 한다. 〈눈 속의 사람〉의 최길남은 6.25전쟁 때 자신을 “또 한 마리의 셰퍼드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지만 훗날 “미친 전쟁에서 적어도 한 생명은 살렸다는 자부심”으로 미소 짓고 〈높고 느린 용서〉 Y는 자신을 추행한 남자의 딸들에게만큼은 “우리 각자가 이 세상 어딘가에서 애쓰며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자신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서도, “당신의 삶은 그저 당신의 것이라고” 말해주며 용서에 한 걸음 다가간다. 〈문래〉의 ‘나’ 역시 어린 시절 자신이 살았던 문래에서 엄마가 일터로 나가며 “문을 잠그는 소리”, 지금의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두려움”, “기대와는 정반대로 흘러가는 생의 한계”와 화해한다.
소설 속 주인공들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상처에 빚을 지며” 살아간다. ‘빚지다’는 남에게 신세를 진다는 뜻이니, 우리는 상처에 신세를 졌단 말이 된다. 그 말은 즉 아무도 상처 없이 살아갈 수 없고, 상처 덕분에 우리는 언제나 조금씩 성장해간다는 말일 테다. 그렇게 조금씩 상처에 빚지며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 누군가로부터 “당신은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누구도 그 이상을 해낼 수 없었을 거라”는 말을 들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니 우리는 외롭지 않다고 믿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보넬'님은?
15년간 중국어 공부만 해오다가, 어느 순간 독서의 재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현재 한 독서 모임의 운영자로 활동 중이며, 매일 읽고 쓰는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