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11일 오늘의 책
황성희 | 민음사 | 2013.09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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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못 말리는 이 나라 아줌마들의 수다에서 최신 공법으로 추출해 낸 시적 언어의 정수”-김기택(시인) 시시콜콜한 일상 속에 교묘하게 감춰진 삶을 통쾌?하게 버무리는 천박한 능청과 유머러스한 수다 2008년 『앨리스네 집』을 발표하며 “존재와 시간을 구체적, 일상적, 시적”(김혜순 시인)으로 구현한다는 평가를 받은 황성희 시인의 두 번째 시집 『...
창문 밖 허공. 눈만 뜨면 만나는 출구. 기꺼이 뛰어내리지 못하고. 눈등 위의 붉은 점이 혹시나 흉할까 불안한 나이를 서글퍼 하고. 짝눈 교정을 위한 쌍꺼풀 수술은 미적 성형과는 다르다며 발끈하고. 생리 혈 얼룩진 팬티를 버리면서 이 정도 낭비는 해도 된다며 울컥하고. 4층 여자에게 새로 한 파마의 이름을 묻지 않는 것은 질투보다 교양에 가깝다는 해석이나 하면서. 오늘의 연도와 오늘의 날짜와 오늘의 요일을 나란히 쓰는 일에 아무 두려움 없는. 지구 한 바퀴의 판타지와 동네 한 바퀴의 리얼리즘을 순순히 인정하는. 그러나 때로 청소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출구를 바라보는 포즈.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감명 깊게 읽은 죽음을 들고. 진정한 용기는 전쟁도 혁명도 변절도 아닌 오늘을 견디는 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다시 마침표를 찍는 손. 털끝 하나 떨리지 않는. (27쪽, ‘불감증’ 전문)
모든 게 그저 사실이다. 아침에 양치질을 하다가 잇몸에 피가 나거나 된장찌개에 넣으려고 냉장고에서 찾아낸 버섯에 곰팡이가 피었다거나 동네슈퍼에서 3500원에 주고 산 20개 들이 커피믹스를 대형마트에서는 훨씬 싼 가격에 팔고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된다거나 주인집 아저씨는 내 얼굴만 보면 집세를 올려달라고 뜬금없이 혹은 기다렸다는 듯 당당하게 말하고 그러나 그 말을 듣고 집에 돌아온 나는 쌓아놓은 옷가지들을 세탁기 속에 집어넣고 요란한 소리를 내며 세탁기가 돌아가는 사이 리모컨을 들어 TV를 틀고 막장드라마가 늘 그렇듯 나를 슬슬 어이없게 할 때쯤 세탁기에서 꺼낸 옷을 탈탈 털어 건조대에 걸다가 티셔츠 중 하나에서 지워지지 않은 얼룩을 발견하고 이 얼룩은 도대체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를 기억해내려다 원인을 찾기보다 제거하는 게 시급함을 깨닫고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를 고민하며 인터넷 창을 켜 지식인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 같은 거. 지극히 사소하고 그래서 무슨 의미라 말하기도 뭣 한데 사실상 이걸 빼면 남은 게 없는 그런 거. 이런 게 바로 생활이다. 이렇게 살면서 나는 “오늘의 연도와 오늘의 날짜와 오늘의 요일을 나란히 쓰는 일에 아무 두려움 없”고 “그러나 때로 청소기를 멈추고 우두커니 출구를 바라보는 포즈.” 취하면서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감명 깊게 읽은 죽음을 들고. 진정한 용기는 전쟁도 혁명도 변절도 아닌 오늘을 견디는 법에 있다고 생각하면서. 어제와 똑같은 자리에 다시 마침표를 찍”는다. 어느 시인이 그랬듯, 시인이 써놓은 그것들을 보며 그것을 내 것인 양 내 삶에 인용하고 참조하여 사실들로 가득 찬 이 생활로부터 그것과 한참이나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어떤 의미들을 발견하기 위해 4를 지키는 불가능한 노력을 통해서만 4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4를 지키는 노력》에 대한 감명을 한 손에 들고.
아무 행동이나 막 하면 어때. 시시콜콜 누가 안다고. 시간의 뒤편. 숨겨진 다락방. 부딪치지 않다록 조심했지. 오로지 내가 되기 위해. 달력을 넘겼어. 없는 어제의 후회. 없는 내일의 약속. 없는 기념일의 국기. 이거 내 연필. 이거 내 지우개. 이거 내 공책. 목청껏 고함지르다. 그 많은 나나나. 모두 꿈속에 가두겠어. 몇몇은 몸을 날리지만. 없는 추락, 없는 피. 옥상만 살아남는. 심드렁한 사후. 창문이 아니라 창문일 가능성. 활짝 열고 손을 흔든다. 면도날에 검지를 베는 분명한 사건. 후시딘 바른 손끝의 통증. 나는 점점. 누구나 읽을 수 이는 사실이 되어간다. (81쪽, '다락방의 후시딘' 전문)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