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1일 오늘의 책
남궁인 | 문학동네 | 2017.07
분류 : 시/에세이/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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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은 없다』를 쓴 남궁인의 두번째 책! 삶과 죽음이 거짓말처럼 교차하는 그곳 인간의 목숨을 붙든 또다른 인간의 마음 “운명을 마주한 인간의 슬픔과 두려움, 때로는 패배가 예정된 일일지라도 거기 맞서 싸우는 인간의 경이로움이 이 책에 엑스레이 사진처럼 선명하게 찍혀 있다” _요조(가수) 그의 하루는 지독하다. 매일같이 찾아오는 죽음의 공포가 지독하며, 죽음의 문턱까지 간 환자를 다시 삶의 영역으로 돌이켜야 하는 긴박한 과제가 지독하며, 어쩔 ...
평범한 사람이라도 몇 번씩은 입원하거나 병간호할 일이 생긴다. 병원의 침대는 몇 번을 누워도 차갑게 느껴진다. 병실에선 소독약 냄새와 함께 무엇인지 모를 쿰쿰한 냄새가 흐른다. 희미한 피 냄새 같기도 하고, 환자들의 체취 같기도 한 냄새는 꼭 질병 자체에서 풍겨오는 것 같았다.
몇 년 전인가 엄마는 병실 침대에서 가위에 눌렸다. 막 수술을 끝내고 마취가 풀려가는 찰나였다. 누군가 몸을 짓누른다는 이야기를 했고, 거짓말처럼 갑자기 손발이 굳었다. “엄마, 나 좀 살려줘” 엄마는 엄마의 엄마를 찾으며 살려달라 말했다. 그러나 움직이는 것은 입 뿐이었고, 방향을 잃은 팔은 그저 허우적 거릴 뿐이었다.
급히 달려온 간호사가 응급처치를 하고 난 후에도 한참 마사지를 했고, 그제서야 굳은 몸이 서서히 풀렸다. 얼마 전 디스크 수술 때문에 다시 병원에 입원한 엄마는 몇 년 전 가위에 눌린 일이 생각나 수술실 입구부터 눈을 질끈 감았다고, 말했다.
몇 년 전 갑상샘암을 앓았던 친구의 어머니는 수술을 받기 전 어디에 어떤 보험이 있고, 어떻게 받아야 한다는 걸 꼬박 일러 친구를 목메게 했다.
병원은 삶과 죽음이 교차하는 곳이라 말한다. 죽음의 목전까지 갔던 이가 기적처럼 살아나기도 하고, 이제 고비를 넘겼다고 안도를 내쉰 이가 갑자기 떠나기도 한다고. 보통 사람이라면 쉽게 경험하기 힘든 일들을 겪기 때문일까. 의사의 경험의 밀도가 농밀해 페이지가 가볍게 넘어가지 않는다. 책 『지독한 하루』는 『만약은 없다』를 펴냈던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두 번째 책이다.
‘그런 날 아침이었다’로 시작하는 어느 하루 이야기를 읽으며, 책의 제목이 왜 ‘지독한 하루’가 될 수밖에 없는지 실감했다.
근무를 시작하자마자 간암 말기 환자가 들이닥치고, 이내 악독한 폐렴으로 오른쪽 폐가 거의 사라진 할아버지가 의식을 잃은 채 도착한다. 급한 환자들에게 처치한 의사는 복수만 빼고 집에 보내달라며 치료를 거부하는 간경화 말기에 간신증후군인 환자와 씨름하고, 중환자실에 누운 어머니가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고등학생인 그녀의 아들에게 알린다. 그 사이 취기로 입원한 환자가 부르하버증후군(심하게 구토하다가 식도가 압력을 견디지 못해 터지는 병) 임이 밝혀지며 응급실에 한바탕 소통이 벌어진다.
어쨌든 하루를 끝내야 했다. 그래야 내일을 맞을 테니까. 나는 기운을 짜내 간신히 응급실 밖으로 나왔다. 오전의 바람은 매섭고 몸은 유난히 차가웠다. 수고했다고 위로해줄 사람도 없었다. 돌아갈 구멍조차 없는 느낌이었다.
…(중략)…
나는 내 목숨이 간신히 살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간신히, 하지만 온몸에 기운이 없어, 곧 죽을 운명인 것만 같았다. 아, 차라리 그 일이 미리 다가왔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나는 어둠만 보고 있는 동전의 뒷면처럼, 영원히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34쪽)
환자의 가족에게는 환자만 보일 뿐이어서, 병원에서는 의사의 삶에 관하여 관심을 기울인 일이 없었다. 그러나 시골의사 박경철의 에세이, 그리고 응급의학과 의사 남궁인의 에세이를 읽으면서 그들이 경험하는 하루가 얼마나 치열하고 지독한가를 실감한다.
책 속에 여러 에피소드가 담겨 있으나, 폭발 사고로 전신 화상을 입은 환자의 이야기는 한 글자 한 글자 읽어내기가 힘들었다. 너무 처참해서, 읽는 것만으로도 진이 빠졌다. 저 세상이 있다면 그곳은 부디 고통이 없는 곳이기를, 끔찍한 고통 속에서 죽어간 그가 편히 쉴 수 있길 바란다.
활뇌증을 앓는 열한 살 설희와 10년이 넘게 지극한 정성으로 돌본 할아버지의 일화도 가슴에 진하게 남는다. 죽음의 문턱에서 수차례 지켜낸 아이가 허망하게 세상을 뜨자 병동이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는 그의 절규도.
“나도 다 알았어. 우리 설희가 남들 보기에 불편하게 생기고, 이 병에 가망이라고는 없다는 거. 하지만 머리로는 이해되어도 마음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게 있어. 이 아이는 나에게 유일한 희망이었거든. 누가 자기 희망을 접을 수 있겠나.” (168쪽)
책을 덮으며 가혹한 운명에 끊임없이 맞서는 사람들의 모습이 짙게 남았다. 북한산 정상에서 벼락맞은 환자가 병원에서 사망하자, 정상부터 업고 내려온 구급대원들이 맥없이 돌아가던 모습이, 손녀를 잃은 할아버지의 절규가, 죽음의 아가리에서 삶을 건져내려는 의사의 사투가….
| Editor - 송보배
10rim@bn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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