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8월 10일 오늘의 책
노암 촘스키 외 | 인간사랑 | 2011.08
분류 : 사회/정치/법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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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서평 동서고금을 통 털어 기록된 역사에서 대국이 제국주의를 추구하지 않은 경우가 없고, 제국이 영역을 확대해갈 때 고상한 도덕과 이념을 내세우지 않은 적이 없다. 1차대전을 거치면서 신세계 미국은 구세계 유럽에 대한 채권국으로 성장하였고 2차대전을 거치면서 미국의 경쟁자와 동맹 모두가 유럽과 아시아에서 몰락한 데 반해 미국은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올라섰다. 미국은 2차대전 후 사회주의 진영을 제외한 나머지 세계에서 옛...
노암 촘스키의 “<반(反)혁명의 폭력>은 학살을 “건설적인 학살”, “자비로운 학살”, “사악한 학살”, “가공의 학살”(사악한 학살의 하부유형)이란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미국 자신이 자행하거나 미국의 주요 이익에 즉각적인 도움이 되는 것은 건설적인 학살, 미국의 동맹이나 종속국이 수행한 것은 자비로운 학살, 미국의 적대국이 저지른 것은 사악한 학살과 가공의 학살이다.” (27-28쪽)
재미있는 것은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에서 침공범죄가 “국제적 범죄일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모든 악의 집합체로서 다른 전쟁범죄와 구분되는 최고의 범죄” (37쪽)라고 하면서도 1991년 이후 13년간 지속된 미국과 영국의 경제제재로 인한 대량사망은 인도주의적인 전쟁과 보호책임이라는 당위성에 의해 치장되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03년 3월 전쟁이 시작된 이후 이라크 민간인의 인명손실은 98,000명에서 100만 명 이상으로 늘어났으며, 인명손실의 절대 다수가 폭력적 행위에서 비롯된 것임이 밝혀졌지만 미디어와 지식인들은 (간접적이든 직접적이든) 침공-전쟁의 결과라는 사실도 인정한 적이 거의 없다.” (65-66쪽)는 점에서도 이러한 미국과 그 동맹국의 이중잣대는 잘 드러나 있다.
미디어들은 이에 그치지 않고 있다. ‘다르푸르 사태’의 경우에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인 “크리스토프가 “아예 처음부터” 다르푸르 (사태)를 “’수단의 아랍계 지배층’과 ‘아프리카계 흑인 수단인’사이의 갈등”으로 진단” (80쪽)하였는데, 이는 분쟁의 과정에서 미디어들이 계속해서 잘못된 관점을 주입하여 벌어진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즉, ‘다르푸르 사태’의 “근본원인을 살펴보면, 최소한 부분적으로 기후변화 때문에 생긴 생태위기, (즉) 물 부족과 농업생산의 감소가 (폭력사태를) 촉발” (82쪽)시켰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가해자와 피해자를 바꿔놓는 경우도 있다. ‘르완다 사태’가 그 대표적인 예인데, <학살의 정치학>에서는 기본의 상식과 달리 미국과 그 대리인인 우간다의 조종을 받아 소수부족인 투치족이 다수부족인 후투족을 학살한 것이라고 한다. 물론 <내일 우리 가족이 죽게 될 거라는 걸, 제발 전해주세요! >처럼 기존의 상식에 따라 다수부족인 후투족이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학살했다고 주장하는 책도 적지 않게 존재한다.
하지만 소수부족인 투치족을 학살하였다는 다수부족인 후투족이 정권도, 재산도, 심지어 목숨마저 빼앗겼다는 주장은 상식적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게다가 전범으로 재판에 선 후투족 출신 고위장교들이 무죄판결을 받았다는 사실도 소수부족인 투치족이 다수부족인 후투족을 학살했다는 입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따라서 보다 확실한 증거가 밝혀지기 전까지는 이 책의 주장을 믿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생각되며, 이는 곧 미국과 그 동맹국의 영향을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받은, 미디어들이 진실을 왜곡했다는 또 하나의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점을 볼 때, 학살도 전쟁처럼 정치의 또 다른 수단인 셈이다. 아마 번역자도 그렇기에 학살의 유형과 사례를 설명하는 이 책의 제목을 <학살의 정치학>이라고 정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런데, 이 책을 읽으면서 마음 한 구석이 슬며시 불편해옴을 느꼈다. 진실을 위한 폭로가 필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소수의견에 대한 존중이 ‘소수는 늘 의롭고 진실되다.’라는 잘못된 편견과 오만에 빠져 타락하지 않도록 늘 조심해야 한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흙탕물을 뒤집어 쓰면 그나마 진실을 폭로하는 역할조차 못할 수도 있으니까.
결국 무기력한 우리들은 그저 이 책 표지에 쓰인 대로 “우리 편이 저지른 가혹행위가 무죄라면 적이 저지른 학살도 무죄이다.”라는 말만 되내이며 진실을 위한 소중한 불씨를 보존하였다고 자위할 수 밖에 없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러한 점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세월의 흐름에 따라 무뎌지겠지만, 아프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세월이가면'님은?
책을 좋아하지만 아직까지 "박학다식(博學多識)"이 아닌 "박학잡식(博學雜識)"의 단계에 그치고 있는 직장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