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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68617605 / 280쪽 140 x 2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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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잔류된 자들의 서식지대는 어디인가
사회적 최하층을 발굴해내다
▶ 밀려드는 삶의 파도에 떠밀린 사람들
정갈한 옷 속에 드랙 퍼포머의 얼굴을 숨긴 사촌형, 3년째 ‘쉬었음’ 상태로 살아가다 수영장에서 삶의 활력을 찾으려는 중년 남성, 졸업한 뒤에도 모교 캠퍼스를 떠나지 못한 채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청년까지. 신종국 작가는 『잔류족 서식지대』에서 능청스러운 웃음과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뒤틀린 삶을 버텨내려 몸부림치는 이들을 그린다.
▶ 타인의 낯선 얼굴을 마주하는 법
「춤추는 젤렌스키」는 드랙(drag)?을 소재로 한다. 드랙은 성별 표현을 과장하거나 변형해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표현하는 퍼포먼스이자 예술 활동이다. 화장, 의상, 헤어스타일, 몸짓, 말투 등을 활용해 기존의 성별 표현에서 벗어난 모습을 연출한다. ‘나’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던 사촌형은 남몰래 드랙 퍼포머로 활동하고 있었다. 클럽 ‘퀸즈타운’에서 형은 점잖던 말투를 거친 반말과 은어로 바꾸고, 화려한 화장을 한 채 립싱크 공연을 펼친다. ‘나’는 처음에는 그런 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음악과 공연을 매개로 건네지 못했던 마음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기초수영반」의 ‘나’는 3년 전 직장을 그만둔 뒤 별다른 사회활동 없이 지낸다. 수영장의 노란 셔틀버스를 희망의 신호로 여긴 그는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을 되찾겠다며 수영 강습에 등록한다. 그러나 셔틀버스 기사, 관리사무실 직원, 초등학생 학부모와 차례로 언쟁을 벌이며 가는 곳마다 부딪힌다. 자신의 판단이 늘 옳다고 확신하는 그는 희망을 걸었던 그곳에서조차 타인을 쉽게 재단하고 무시한다.
두 소설은 타인을 쉽게 단정하는 우리의 시선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비춘다. 「춤추는 젤렌스키」의 ‘나’는 동경하던 형의 낯선 얼굴과 마주한 뒤 그를 외면하지 않고, 그 세계로 한 걸음 다가간다. 반면 「기초수영반」의 ‘나’는 끝까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다. 타인의 사정을 헤아리지 못한 대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말로 돌아온다. 누군가를 동경하거나 비웃기는 쉽지만, 그 사람이 어떤 공간에서 어떤 얼굴로 살아가는지 끝까지 지켜보기는 어렵다. 신종국 소설가는 두 소설을 통해 사람을 바라보는 우리의 익숙한 시선에 균열을 내고 그 틈에서 웃음과 함께 깊고 서늘한 슬픔을 끌어낸다.
▶ 문이 닫히고 남겨진 사람들
표제작 「잔류족 서식지대」의 ‘도후’는 졸업한 뒤에도 모교 캠퍼스 안팎을 떠나지 못하는 임용고시 준비생이다. 그는 해마다 학습계획표를 새로 쓰고, 무료 정수기와 화장실 온수, 학식에 기대어 하루하루를 버틴다. 캠퍼스에는 그와 같은 장기 임용고시생 두 명이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를 견디고 있다. 아버지의 병원비와 기약 없는 합격 앞에서 ‘도후’의 마음은 점점 무너진다. 그는 생계를 위해 기이한 알바를 전전하며 사회의 음습한 면을 마주하는 한편 뜻밖의 온기를 느끼기도 한다.
번듯한 회사원의 갑옷이 벗겨지는 퀸즈타운, 자기 기만이 되풀이되는 수영장, 해마다 같은 계획표만 쌓여가는 캠퍼스. 세 공간은 억눌린 이들에게 잠시 숨 쉴 틈을 열어주지만, 그 결과는 같지 않다. 누군가는 그 짧은 틈에서도 서로에게 닿지만 누군가는 스스로 문을 닫고, 누군가는 닫힌 문 앞에서 다시 열리기를 기다린다. 결국 신종국 소설가가 우리에게 남기는 것은 탈출의 서사가 아니라, 탈출구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 기억이 있기에 우리는 또다시 탈출을 꿈꾼다. 끝없이 되풀이되는 그 꿈이 곧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일 것이다.
출판사 리뷰
신종국의 소설은 사회적 최하층을 이루는 군상들을 주목하지만, 결코 어둡거나 무겁지 않다. 작가 특유의 시니컬하고 해학적인 터치로 진한 맛과 감동을 준다. 이는 뛰어난 인물묘사, 비약적이면서도 통쾌한 비유, 흥미진진한 서사의 덕분이겠지만, 본질적으로는 작중인물들을 향한 작가의 따스한 시선에서 기인한다. 소설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고난의 늪에 잠긴 인간군상을 조금씩 조금씩 행복의 길로 이끌어내는 것! _김헌일(소설가)
우리는 사실 곳곳에서 절망이라는 이름의 잔류족과 마주치며 산다. 신종국 소설 속에 등장하는 잔류족들은 하나같이 그림자 같은 존재들이다. 이들은 기존 제도에 편입되지 못한, 진입하려고 혼신을 다하는 파편적인 불안정한 자들, 혹은 환영받지 못하고 지하에 위치한 비정형의 아이덴티티다. 작가는 현대 사회의 하부구조를 받치고 있는, 그런 음지족의 슬프고 불가해한 메시지를 밤 새워 수신해서 아주 귀한 소설을 쓰고 있다. _배이유(소설가)
p.40 “그 좁은 지하지만, 우린 같이 있으면 지상에 비가 오든 폭풍이 불든 아무 상관없어. 그냥 떠들고 화장 때리고 어설픈 드랙 흉내로 스테이지 올라 노랜지 비명인지 싸지르고…. 거긴 내가 누군지, 어디로 흐르는지도 모르고 떠돌다가, 그나마 겨우 내 발로 찾은 곳이다. 내가 무엇보다 내 심신이 편한 곳…. 그 퀸즈타운에서 이제 제대로 숨 쉰다. 거긴 물속이고, 난 뗄 수 없는 아가미가 이미 달려버린 놈이거든.” _「춤추는 젤렌스키」
p.49 도로와 면한 버려진 개활지에 차를 파킹하고 나는 잽싸게 달아났다. 밤공기가 차가워 멀미가 사라졌다. 불에 타다 남은 솔가지 잔향 비슷한 냄새가 바람에 실려 왔다. 눈앞으로 병풍처럼 거대한 검은 산들이 겹쳐 있었는데 어디선가 밤새 소리가들린다. 여기서도 멀지 않은 거리에 속리산이 있을 것이다. 진심 속세를 떠나고 싶다. 모든 게 괴이한 밤이다.
나는 심호흡을 한 뒤 논두렁을 향해 지퍼를 내리고 긴 소변을 갈겼다. 바지를 추스르다가 차 쪽을 보니 사촌형이 비틀비틀 검은 도로 위를 걷고 있다._「춤추는 젤렌스키」
p.55 사람은 대체로 남루하거나 비루해질수록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싫어하는 듯하다.
그것도 처지가 거의 바닥으로 떨어진 형편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어쩌면 상종할 생각은 조금도 없을 듯한데 그럼에도 묘하게 힘이 되어주는 경우가 있다. 무언의 격려와 비슷한 처지의 동류의식이랄까. 암튼 나 혼자만 이 지옥 같은 상황에 방치된 건 아닙니다 하는, 안온한 위로나 암묵의 여유까지 얻기도 하니 꼭 그렇게 사갈시 할 대상만은 아니기도 했다._「기초수영반」
p.71 사흘째부터 나는 한 단계 스텝이 올랐다. 이젠 난간을 두 손으로 잡고 엎드려 두 발로 번갈아 물장구치기였다. 이건 어릴 때 공중목욕탕에서도 많이 해본 거라 별로 힘들지 않았는데 너무 물을 밖으로 많이 쳐대는 통에 펭귄이 일부러 다가와 책망한다.
“그렇게 해서는 안 되고요, 두 다리를 수직보다 반원을 그린다는 마음으로 옆으로 저으면서 해보세요, 자요, 제가 시범 보일 테니 잘 보셔야 함다!”
내 옆에서 직접 그가 예를 보였다. 나는 그의 시연 동작보다 임산부처럼 엄청나게 부푼 그의 복부가 신경 쓰였다._「기초수영반」
p.113 내가 어디까지 흘러왔을까… 이 나이에. 눈을 뜨면 지금의 오늘인지, 이미 붙잡을 수 없는 지나간 날의 어느 아침인지, 혹은 세상의 빛들이 사선으로 흐려진 저녁이거나 늘 빠져든 한밤의 모호한 꿈속인지 도통 모르겠다. 혼자 캄캄한 우주를 구명줄 하나에 매달린 채 먹먹히 흐르고 있는 기분.
그렇다고 내가 달의 이면에 도착해 월석을 긁어모아 지구로 귀환하는 이상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암튼 제대로 작동된 내 기억이라면 얼마나 좋으랴…._「잔류족 서식지대」
p.117 그는 이마 위로 땀에 젖은 앞 머리카락을 풀럭이며 어느새 사회과학대학 아래 쭉 뻗은 아카시아 길을 내처 달린다. 비껴가는 언덕 위 로마네스크 풍의 거대한 본관 둥근 지붕이 새벽 일광에 씻은 홍시처럼 붉다.
속도를 올려 뛴다. 이른 아침부터 아는 후배나 강의 받은 교수라도 만나면 좀 난감하다. 그들은 그를 쉽게 알아보진 못하겠지만 도후로서는 그 반대가 아닌가. 졸업한 지 5년인데 아직도 모교 울타리 잡목 숲 언저리에 기생하듯 살고 있다니 _「잔류족 서식지대」
p.248 자취방으로 돌아온 도후는 임고생 사이트를 다 뒤져 밤을 새워 최신 합격수기들을 읽고 또 복기한다. 그리고, 한기가 푸르게 내리는 신새벽에 이르도록 자신의 새 연간 학습계획표에 그 하나하나의 노하우를 복음처럼 첨가해간다. 다시 끝에서 시작하기. 그 피의 수기들이 자신의 머리통을 최후의 일격으로 후려쳐주기를, 자신의 등짝을 힘찬 발길질로 차주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우주를 혼자 유영하는 도후가, 지구 어느 쪽에선가 발신한 메시지를 혼신을 다해 수신하는… 적막한 밤._「잔류족 서식지대」
춤추는 젤렌스키
기초수영반
잔류족 서식지대
해설 | 세 개의 코드가 가리키는 곳-황인규
작가의 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