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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BN : 9791141617776 / 272쪽 / 354g / 133 x 2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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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앤루니스 리뷰
편혜영 커리어의 새로운 지평, 5년 만의 신작 소설집
따뜻한 비관론자가 우리 삶을 바라보는 방식
* 2022 김승옥문학상 대상 수상작 「포도밭 묘지」 수록
편혜영 작가가 그간의 작품세계를 경신하는 매력적이고도 완성도 높은 새 소설집 『새들의 사회성』으로 우리를 찾아왔다. 한 편의 거대한 추리소설 같은 삶의 예측 불가함을 긴장감 넘치는 단문으로 담아낸 『어쩌면 스무 번』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소설집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변화가 감지되는 8편의 단편이 실렸다. 평범하고 고요한 일상이 돌연 우리의 마음을 조이는 선득함의 장소로 바뀌는 찰나를 포착한 짧은 소설집 『어른의 미래』를 포함해 서스펜스와 미스터리는 편혜영의 소설세계를 탐색하기 위해 필요한 중요한 키워드였지만, 이번 소설집에 이르면 우리는 그동안 보지 못했던 편혜영의 새로운 얼굴과 마주하게 된다. 심사위원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2022년 김승옥문학상 대상작으로 선정된 단편 「포도밭 묘지」에 부쳐진 심사평 “우리가 편혜영이라는 작가에게 경탄하게 될 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알려준다”는 말은 바로 이 새로운 얼굴에 대한 또다른 표현일 것이다.
『새들의 사회성』에 실린 8편의 소설은 인물들 저마다가 자신의 삶에 드리운 어려움을 안간힘을 써서 통과해가는 과정을 따라가는데, 그런 애씀의 시간을 통해서도 끝내 해결하기 요원한 삶의 벅참을,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미약한 희망과 우정을 그려냄으로써 그간의 편혜영 소설이 쉽게 허락하지 않았던 애틋함과 슬픔을 느끼게 한다. 인물들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온기와 더불어 유머와 느긋함으로 빛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번 소설집의 유의미한 특징이다. 국내외 수다한 문학상을 수상하며 굳건한 소설세계를 구축한 작가에게 『새들의 사회성』은 전혀 다른 변화로의 감행이라기보다는 그간의 세계를 지키며 소설의 품을 넓히는 확장에 가깝다. 고통의 바닥까지 내려가서야 비로소 삶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듯이, 비관의 눈을 통해서만 들여다볼 수 있는 일말의 희망이 있다. 그것이 따뜻한 비관론자 편혜영이 우리에게 선물하는 삶에 대한 감각이며, 이번 책이 태작 없는 작품들로 뛰어난 커리어를 쌓아온 작가의 소설 궤적에서도 우뚝한 성취를 보이는 이유이다.
출판사 리뷰
좀처럼 행운이 따르지 않는 삶의 어린 초심자들
그 취약함 속에서도 끝내 포기할 수 없는 우정과 살아 있음의 움직임
이번 소설집에서는 주로 사회적, 심리적, 경제적으로 취약한 위치에 처한 어린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려진다. 첫 단편 「우리가 가는 곳」은 그 취약함이 인물들로 하여금 과연 무엇까지 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흥미롭고 독창적인 소설이다. 삶의 막다른 길에 내몰려 ‘자발적 실종’, 즉 ‘증발’을 감행하는 것만이 ‘사는 길’이라고 여기는 여자가 있다. 그 여자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실종 대행업자라고 알려진 사람의 도움이다. 그 대행업자는 버스를 타고 귀가하던 학원 강사가 실종된 것처럼 사건을 꾸미거나 한 숲에서 추락한 차를 교통사고 차량으로 위장함으로써 지금의 삶에서 분리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들을 이 세상에서 사라지도록 도왔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오래전 이야기이다. 이제 대행업자는 사업을 접고 사무실을 정리하려는 상황이다. 그런 대행업자의 사무실로 여자가 찾아와 자신의 사정을 고백한 뒤 이렇게 말한다. “저는 죽고 싶지 않아요.”(26쪽) 언뜻 시니컬하고 매정해 보이던 대행업자가 여자의 제안을 물리치지 ‘못하면서’ 증발을 도모하려는 두 사람의 뜻밖의 여정이 펼쳐진다.
함께 길을 나서는 또다른 한 쌍이 있다. 「새들의 사회성」에는 오랜만에 재회한 고등학교 동창 두 사람이 등장한다. 하지만 둘의 만남은 대개의 재회가 자아내는 뭉클함과는 거리가 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곳이 경찰서이기 때문이다. 제약회사 마케팅팀에 겨우 인턴으로 취직한 ‘나’는 정규직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거의 없는데도 꿋꿋이 회사를 다니는 상황이다. 문제는 잦은 회식에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고 회식비 또한 예외 없이 나눠 내야 한다는 것. 그날도 ‘나’는 은행 자동화 코너에 돈을 뽑으러 갔다가 ATM기에 놓인 빨간 지갑을 보게 된다. 시간이 지나도 지갑의 주인은 돌아오지 않고, ‘나’의 통장 잔액은 고작 십일만원 정도이다. 아무도 없는 틈을 타 ‘나’는 지갑에서 삼만원을 슬쩍 꺼낸다. “삼만원이 없다고 당장 망하지는 않으니까. 그저 재수없는 셈 치면 되니까.”(56쪽) 그리고 ‘점유이탈물횡령죄’로 신고를 받아 경찰에 도착하고서야 ‘나’는 자신이 함정에 걸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고자가 피식 웃으며 지갑에는 ‘삼만원’이 아니라 ‘백만원’이 있었다고 말했기 때문이다. 그 신고자가 바로 ‘나’의 고등학교 동창 ‘신도’이다. 피의자와 피해자 신분으로 재회한 두 사람은 ‘빚’으로 서로 묶인 채 ‘어쩔 수 없는’ 동행을 시작하게 된다. 그 동행은 두 사람을 어디로 이끌까?
책의 표제이기도 한 ‘새들의 사회성’이란 표현은 취약한 처지에 있는 인물들이 약해 보이지 않기 위해 마치 하늘을 브이자 대형으로 나는 새떼처럼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을 가리킨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어쩔 수 없이 터득할 수밖에 없는 이 사회성은 과연 새들의 연약함에서만 비롯되는 것일까? 「포도밭 묘지」는 상업고등학교 시절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까지 함께 겪으며 서로의 좌절과 안간힘의 순간을 모두 지켜본, 그렇기에 영원히 친구일 수 있는 네 사람의 이야기를 다룬다. 네 사람 중 유일하게 대학을 다닌 사람은 한 명뿐이고 그마저도 은행 일을 하며 야간대학을 병행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부모는 “형편이 좋지 않으니 고등학교까지 가르치면 족하다는 식”의 단순한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이들은 “최소한의 미래에 순응”(82쪽)해야 하는 처지이다.
그럼에도 인물들은 미래의 가능성을 조금이나마 넓히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데, 「포도밭 묘지」는 그런 움직임이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흔들림 없는 문장으로 한 자 한 자 써내려간다. 그리고 이야기의 끝에 다다르면 우리는 새들의 사회성을 만든 사회 그 자체에 눈을 돌리게 된다. 문학평론가 인아영이 “노동자의 감춰진 고통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 사회운동의 일이라면, 그 고통에 이야기를 부여하는 것은 문학의 일이 아닐까”(해설 「살아남은 삶을 살리는」, 259쪽)라고 말했듯 편혜영의 이번 소설집은 매일의 노동을 반복하며 사회 안에서 살아나가는, ‘생계와 노동이 한 번도 웃음거리였던 적이 없는’(「아파트먼트」, 154쪽) 사람들의 이야기로 두터워진다.
“삶에 냉담해질 이유가 많았지만
그렇게 되지 않은 것은 그 기억 때문이었다.”
다리에 화상을 입어 끔찍한 통증에 시달리는 「남은 사람」의 ‘그녀’는 “인생은 그렇게 여기지 않을 게 분명하지만 언제나 가져간 것이 더 많”(230쪽)다고 생각한다. 「자매들」의 ‘정서’는 어떠한가. 정서는 보호자처럼 믿고 따르던 언니에게서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을 때 크게 놀라기보다는 언니에게 심각한 일이 벌어졌으리라 확신한다. 그것이 어린 시절 내내 억압적이면서 무관심한 부모 밑에서 자란, ‘불행하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기 어려운 정서의 삶에서는 자연스러운 생각의 흐름이므로.
하지만 놀랍게도 『새들의 사회성』은 자신 앞에 펼쳐진 상황을 그저 비관하거나 감내하는 인물들의 이야기에 머물지 않는다. 「목욕」의 ‘나’는 영업 실적에 압박을 느끼며 회사생활의 녹록지 않음을 매 순간 체감하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그전에는 전혀 몰랐던 아버지의 면모를 새로이 알게 되면서 노동과 삶을 대하는 또다른 시각 하나를 얻는다. 그것은 식량이 넉넉지 않은 전쟁 상황에서 수프를 끓여먹으려 보리를 갈던 용도로 쓰인 수동 커피밀을 바라보며 “사람은 그처럼 별거 없다고, 그저 실용적인 존재라고, 언제나 먹고사는 일을 제일로 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그렇다니까요. 그렇게 대단하잖아요”(187쪽)라고 순순히 감탄하는 일이다.
우정과 사랑에 연이어 실패하며 관계 맺기에 두려움을 느끼던 「초록 스웨터」의 ‘나’ 또한 엄마와 엄마의 친구들이 서로 멀어졌다가도 어떻게 용기를 내어 서로에게 다시 다가가는지를 바라보며 관계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어긋나더라도 다시 조율하며 매만질 수 있는 것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그것은 스웨터를 “잘못 뜨는 걸 겁내지 말라고”, “틀리면 다시 뜨면 되고 잘못되면 풀어버리면 된다”(133쪽)는 조언과 포개지는 것이기도 하다. 엄마의 친구가 다음에 집에 또 놀러오라며 ‘나’의 손을 꼭 잡을 때, 그 접촉은 오랜 병환 끝에 세상을 떠난 엄마가 응급실에 실려가기 전 잡아주었던 손의 감촉을 상기시킨다. 그렇듯 이번 소설집에는 어느 때보다 많은 삶과 죽음이 한 손 안에 깃들어 있다. 원했으나 끝내 가지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삶에서, 동경했으나 가닿지 못한 것이 더 많은 삶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슬픔만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 삶에 냉담해지지 않도록 손을 잡아주는 것. 그것이 『새들의 사회성』이 어렵게 도달한 성취이자, 우리가 오랫동안 기억하게 될 편혜영의 새로운 얼굴이다.
*
이번 책에 담긴 소설들을 살펴보면서 내가 전보다 이야기 뒤에 덜 숨는다는 걸 깨달았다. 인생의 태반을 소설을 쓰거나 읽어온 덕에 소설의 아량과 포용을 배우며 조금 달라졌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용감해진 것이라면 소설 덕분이다. 대범해졌거나 뻔뻔해진 일면도 소설 덕분이다.
책을 내는 해는 언제나 그 책의 이름으로 기억에 남는다. 올해 여름은 푸른 하늘을 어울려 나는 작은 새들을 그리며 보내게 될 것 같다. 약하고 작은 존재들이 서로 연결되어 허공을 나는 모습은 아름답기만 하다. 책을 읽는 독자분들께도 그 아름다움이 가닿기를 바란다. _‘작가의 말’에서
정확한 디테일, 적절한 상징, 공감어린 시선, 깊은 여운이 어우러진 이 소설은 우리가 편혜영이라는 작가에게 경탄하게 될 순간이 아직 많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놀랍게 알려준다. ‘시험능력주의’와 ‘학벌신분사회’라는 말로 요약되는 우리 시대를 향한 작가의 회고적 응답이라고 할 만한「포도밭 묘지」에, 동시대 청년들의 삶에 드리워진 그늘에 누구보다 예민했던 김승옥의 이름을 딴 소설상이 주어지는 것은 몹시 합당한 일로 보인다. _김승옥문학상 심사평에서
책 속으로
내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사라지지 않았지만 사라진 듯 보이게 만드는 일, 일종의 실종 대행업. (…) 실종을 어떻게 대행하나 싶겠지만 몰라서 하는 소리다. 자발적 실종, 즉 증발이야말로 충동적으로 숨기만 해서는 안 된다. 능숙한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신중히 감행해야 성공 확률이 높아진다.
---「우리가 가는 곳」중에서
철새들이 커다란 브이자 형태로 늘어서서 하늘을 날고 있었다. 와, 나는 낮게 감탄하는 말을 내뱉었다. 남자가 우리 쪽을 힐끔 돌아보고 웃으며 말했다.
“약하니까요. 약한 것들은 저렇게 몰려다녀야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죠.”
---「새들의 사회성」중에서
우리는 일단 최소한의 미래에 순응했다. 대학을 가거나 사회적으로 주어진 몫과 다른 사람이 되려면 응석을 부리는 대신 자립심을 키우는 편이 나았다. 자립심이 마음이나 용기가 아니라 돈에서 비롯된다는 게 문제였다.
---「포도밭 묘지」중에서
그애가 떠나고 한동안 무척 자책하는 시간을 보냈다. 이제껏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거리를 두며 상처를 주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정이 시간과 더불어 저절로 지속되지 않는다 싶어지면 금세 포기해버렸다.
---「초록 스웨터」중에서
가장 친밀했던 존재가 한순간 낯을 바꿔 경멸 섞인 무관심을 드러내자 나는 금세 위축되었다. 무엇을 하든 나를 탓하고 의심했다. 한때 사랑했던 사람들과 어떻게 헤어져야 하는지 조금도 아는 바가 없었다.
---「초록 스웨터」,중에서
생계와 노동이 엄마에게 웃음거리였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아파트먼트」중에서
김한수는 줄곧 그런 게 궁금했다. 남들은 아버지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드는 연민을 어떻게 견뎌내는지.
---「목욕」중에서
그녀는 마음놓고 아팠다. 더는 통증을 의심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아파야 할 때는 기어이 아프고 지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남은 사람」중에서
때로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 잘 알기 때문에 못 본 척했다.
---「남은 사람」중에서

우리가 가는 곳 007
새들의 사회성 041
포도밭 묘지 075
초록 스웨터 107
아파트먼트 137
목욕 165
자매들 193
남은 사람 221
해설|인아영(문학평론가)
살아남은 삶을 살리는 247
작가의 말 267




































